바람, 난 / 윤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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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230회 작성일 17-07-24 13:52본문
바람, 난
윤지영
바람이 분다.
오랫동안 잠가 두었던 괄호가 덜컹거린다.
괄호를 연다.
자꾸 바깥을 기웃거리는 내 그림자를 놓아준다.
그래 가렴. 야트막한 언덕배기를 지나, 고만고만한 키의 잡목림을 빠져나가,
그 너머 저수지로 이어진 신작로까지, 깨금질하고, 뜀박질하고, 깝죽거리며
뒹굴다가, 다시 발딱 일어나 네가 가고픈 곳으로 가보렴. 가다가 한번쯤은
뒤를 보고 내게 인사나 해주렴.
나는 열려진 오른 쪽 괄호에 기대서서 그림자가 떠나간 쪽을 바라본다.
얇게 덮이는 어둠 뒤에 숨어 뒤도 안 돌아보는 그림자에게 손을 흔든다.
적막이 넓어진다.
-윤지영 시집 『물고기의 방』(황금알, 2006년)에서
1974년 충남 공주 출생
서강대 국문과와 同 대학원 국문과 졸업(국문학 박사)
199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물고기의 방』 『굴광성 그 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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