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술의 방식 / 심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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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472회 작성일 17-12-13 16:26본문
서술의 방식
심강우
개미를 낱말로 개미들을 문장으로 아무 데나
펼쳐진 개미집은 구멍 난 책으로 읽는다
여왕개미의 혼인비행은 표지를 장식한 제목이다
첫 문장의 고비를 넘기면 문장이 문장을 물고 나가는 법,
잉크병에서 듬뿍 찍어낸 낱말들이 길바닥도 모자라
나무와 새의 몸통까지 적어 나가는 왕성한 필력
아파트 화단이며 담장이며 경계 너머
창틀과 침실까지 서술하는 바람에
주제를 벗어났다는 비판에 시달린다
낱말을 쿡 찍는 지적보다 신발밑창 단위의 어절로
지워지는 현실, 그래도 마침표를 찍지 않는 건
분량 제한이 없어서일까
당신과의 만남을 제목으로
내 몸에서 빠져나간 문장을 생각한다
처음엔 내가 말할 수 있는 영역, 만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가지런히 써 내려갔었다 연애와 혼인엔 수식이 많았고
아이를 키울 땐 각주가 많았다 변명과 책임만으로
다 쓰지 못한 본문은 늘 빈약했지만 금박 장정,
베스트셀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구름은 그래서 과중하다 싶으면 비를 내리고
강과 바다는 뜨거운 태양과 거래를 했던 것이다
체중을 줄여 나갔던 것이다
오타로 찍혀 찾아온 공원 벤치
풀린 구두끈을 타고 구겨진 바짓단을,
그 위의 보푸라기까지 설명하려 드는
저 문장의 행갈이를 선뜻 털어버리지 못하는 건
적정한 매수枚數를 잊고 살아온 까닭이다
상투어를 버리고
군더더기를 버리고
아직 묶지 못한 나란 원고를 퇴고 중이기 때문이다
- 심강우 시집 『색色』(2017. 현대시학 시인선 41)
2013년 수주문학상 수상으로 등단
2014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시부문 당선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2012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동시집 『쉿!』 시집 『색色』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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