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어증, 싫어증 / 홍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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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727회 작성일 17-07-06 08:44본문
실어증, 싫어증
홍철기
날개를 잃은 파리는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 한다고
엎드려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엎드린 숫자들이 늘어간다
잊기 위한 싸움에서 나는 늘 진다
지기 위해 스파이가 되고 싸우는 것을 싫어하는 스파이가 되고
말을 잃어버린 평화주의 레지스탕스
내려앉지 않는 파리는 무섭지 않다
붕붕 날아다니기만 하는 파리는 없을 테니까
분명 어두운 골목에서 만나지 않았다는데 한 표
파리가 날 때 소리가 나지 않는다면
죽이려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말
소리 없이 사는 파리는 싫어증에 걸린거야
말을 잃어버린 게 아닌 날개 짓을 하기 싫어하는 너
날개가 젖어 있거나 아예 없거나
그 둘 중의 하나
젖어 있는 것과 아무것도 없는
내 앞에 놓인 둘 중의 하나
머리꼭지부터 머리카락이 빠지듯 허전한 일
빠진 머리카락을 쓸어 모아 태우면서 생각했지
죽음을 앞에 두고 젖은 날개를 말리고 새로운 날개를 달아 볼 용기
저 날개의 소리가 죽음을 물게 하는 미끼
나는 파리에게 말했다
나의 싫어증과 너의 실어증이 우릴 살렸다
- 2017년《시와표현》신인상 당선작 중에서
전북 익산 출생
2012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7년《시와표현》신인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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