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하안거 / 고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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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46회 작성일 18-06-01 00:59본문
닭의 하안거 (夏安居) / 고진하
이 오뉴월 염천에 우리집 암탉 두 마리가 알을 품었다
한 둥우리 속에 두 마리가 알도 없는데
낳는 족족 다 꺼내 먹어버려 알도 없는데
없는 알을 품고
없는 알을 요리조리 굴리며
이 무더위를 견디느라 헉헉거린다
닭대가리!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부르진 말아다오
시인인 나도 더러는
뾰족한 착상의 알도 없으면서
없는 알을 품고
없는 알을 요리조리 굴리며
뭘 좀 낳으려고 끙끙거릴 때가 있나니
닭대가리!
제발 그렇게 부르진 말아다오
그러고 싶어 그러고 싶어 꼭 그러는 게 아니니!
* 고진하 : 1953년 강원도 영월 출생, 1987년 <세계의 문학>등단
김달진 문학상, 제13회 영랑시문학상 수상
# 감상
부처님이 이 세상 나와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天上天下 唯我獨尊,
하늘 위에 하늘 아래 오직 나(사람)만이 홀로 존귀하니, 존귀한 몸
잘 보존했다가 깨끗한 몸으로 내(부처님)게로 다시 오라는 말씀이라
승려들은 이 말씀 따르느라 항상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불경을 공
부 하면서 수행 정진 하는데, 특히 여름에는 夏安居, 겨울에는 冬安居
지정하여 모여서 좌선 수행에 전념한다
화자도 닭의 알 품는 행위와 자신의 시 짓는 행위를 하안거에 비유 하는데,
딱하게도 닭은 인간이 다 꺼내먹은 빈 둥지를, 화자는 떠오르지 않는
시상을 끙끙거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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