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 오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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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69회 작성일 18-06-22 22:39본문
6월 / 오세영
바람은 꽃향기의 길이고
꽃향기는 그리움의 길인데
내겐 길이 없습니다
밤꽃이 저렇게 무시로 향기를 쏟는 날,
나는 숲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님의 체취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기 때문입니다
강물은 꽃잎의 길이고
꽃잎은 기다림의 길인데
내겐 길이 없습니다
개구리가 저렇게
푸른 울음 우는 밤,
나는 들녘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님의 말씀에
그만 정신이 황홀해졌기 때문입니다
숲은 숲더러 길이라 하고
들은 들더러 길이라는데
눈먼 나는 아아,
어디로 가야 하나요
녹음도 지치면 타오르는 불길인 것을,
숨막힐 듯, 숨막힐 듯 푸른 연기 헤치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강물은 강물로 흐르는데
바람은 바람으로 흐르는데...
<현대문학>에 朴木月의 추천으로 등단 .
서울대 명예교수
詩集으로 [시간의 뗏목], [봄은 전쟁처럼], [문열어라 하늘아],
[무명연시], [사랑의 저쪽], [바람의 그림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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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 생각>
산다는 건 참, 고뇌스러운 일
(사는 게 마냥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사람들은 빼고)
흔히 쉽게들 말하길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찬 마음을
깨끗히 비워내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세파(世波)에 시달리며 살다보면
그게 어디 그리 수월한 일이던가
삶의 매 순간, 끈질기게 따라 붙는 무명(無明)과 욕망에의 집착은 또 어떻고..
시인은 6월의 푸른 신록(新綠)이 말해주는, 싱그러운 자연의 모습에서
날이 갈수록 첩첩한 미로(迷路)가 되어가는 人生의 길이 참담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나보다
하여, 차라리 어머니 같은 자연(自然)에게 자신이 가야할 길을 묻나보다
차갑게 메마른 세상의 들녘에서 문득 길을 잃은 밤,
순연(純然)한 님(자연)의 체취와 말씀에 황홀해진 정신으로...
- 희선,
<덧붙여 보는 사족이라 할까>
언어의 정련(精練)을 통한,
서정(抒情)에의 접목이 빼어난 詩 한 편이라는 느낌
특히, 소개된 이 시에서는
인간존재의 실존적 고뇌를 서정적으로 노래하고 있는데,
6月이란 신록의 계절이 말해주는
그 순연(純然)한 님(自然)의 길에 비하여,
무명(無明)의 번뇌와 욕망의 망집(妄執)에서 방황하는 우리네 삶은
날이면 날마다 첩첩한 미로(迷路)가 되어감을 자탄(自嘆)하고 있다.
시인의 시에서,
본질적(本質的)인 인성(人性)의 고향으로 가는 길은 바로
그 원융무애(圓融無碍)한 <자연의 길>을 닮아가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실상, 자연만큼 모든 생성과 소멸의 존재들을
원환적(圓環的)으로 둥글게 품고 있는 (어머니 같은)
넉넉하고 푸근한 가슴이 어디 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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