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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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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낱말과학수사원 /함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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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37회 작성일 18-07-13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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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낱말과학수사원


함기석




부검될 변사체〈없다〉가 보관된 곳은 1연이다
1연은 지하 4층에 있다
빛과 음이 차단된 탈의실에서 부검의 y는 흰 가운으로 갈아입고
황급히 2연으로 이동 중이다
2연은 1연에서 엘리베이터로 1분 거리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2연이다 9층 복도를 따라 환자복을 입은 낱말들이
휠체어를 타고 지나다닌다 간호사 둘이
두개골이 함몰된 또 다른 변사체〈있다〉를 실은 침대를 밀며
복도 끝의 5연으로 뛰어간다

y는 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3연을 걷는다
사각문을 열고 들어가니 잔디가 깔린 튤립 정원이 나온다
공중으로 알파벳 새들이 날고
목련나무 밑의 벤치에서 외국 검시관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사체의 인적 사항, 사건명, 사건 번호, 사건개요와 일시 등
의뢰서에 적힌 세부 사항들을 확인하는 사이
법의학과 회전문이 반시계 방향으로 돌기 시작한다
도대체 오늘의 부검 대상은 누구야? y는 투덜거리며 침을 뱉고
범죄 분석실 좌측에 대리석으로 지은 4연으로 들어간다
바닥에 어제 부검한 〈보다〉의 핏덩이 혈흔이 엉켜 있고
〈쓰다〉의 손가락 하나가 떨어져 있다

y는 손가락을 집어 비닐에 넣고 5연으로 이동한다
금속 침대에 〈있다〉와 〈없다〉가 부부처럼 나란히 누워 있다
y는 메스로 〈있다〉의 복부를 가른다 물컹거리는 창자를 만지는데
커튼 뒤에서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가위를 들고 나온다
y의 옷을 갈가리 찢고 질식시켜 6연으로 끌고 간다

짙은 안개로 뒤덮여 있는 과학수사원 뒤편의 숲이다
y는 계곡에 버려진 채 누구도 발음할 수 없는 낱말이 되어간다
살을 파먹는 모음 벌레 o와 u가 들러붙어 즙을 빤다 며칠 후
한 등산객에 의해 사체는 우연히 발견된다
오늘 부검될 변사체 〈you〉가 보관된 곳은 1연이다



☆땡감☆


말놀이 형태를 취하고 있으므로 시가 다소 난해하게 느껴진다. 우선 층상 구조가 비약적이다. 1연은 지하 4층, 2연과 5연은 지상 9층에 있고 3연은 옥상에 위치해 있다.
6연은 숲이다. 4층은 부검실... 그렇다면 한 건물에 산재된 6개의 연이라는 방房이 있고 이곳에 부검하거나 부검하려는 자, 혹은 낱말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가지런한 배치가 아니라 무분별한 산재다.
'없다' '있다' '보다' '쓰다'는 시의 몸과 보는 독자의 눈, 혹은 시를 분석하고 쪼개는 비평가 등이 연상되지만, 시에 뭐가 있느냐 없느냐는 우문이다. 시는 유무의 존재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다. 해체하면 그저 부속들, 낱말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그래서 분해한 시의 부속들은 '있다'와 '없다'를 나란히 가질 수도 있겠다.
시인은 지하4층, 지상9층, 옥상을 아울러 13층 규모의 시 해부실, 언어부검실을 묘사하고 있는데, '국립'과 '환자복을 입은 낱말들'과 '외국검시관', 'y라는 부검의' 등으로 유추하자면, 요란한 외국어를 도용하고 있는 풍속에 대한 자조도 엿보인다. 그렇게 차용한 언어엔 아무것도 '없다'란 생각도 끼어 있다. 시가 우리말 우리혼 우리정신의 작용이니 재료도 모국어여야 하겠다는 비유도 숨어 있다. 그러나 그런 우리말 애호만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시의 정체성을 묻는 분석과 자르기와 부검. 혹은 시가 가진 고유한 존재성을 다 해부하고 해체했을 때, 시가 남을까 하는 질문도 담고 있는 듯하다.
전형적인 말놀이지만, 시인은 시쓰기의 형태와 시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시는 시란 고유한 영역이 있고, 그 고유한 영역은 짐승이 마치 자기 영역을 표시하려 오줌을 지리듯, 시인은 고유한 영역을 확보하려는 의지가 있을 법한데, 우리는 그 개성적인 문체를 얼마나 염탐하고, 또 없었던 무언가를 찾고 읽으려 했을까. 시인의 건축술은 얼기설기한 듯하지만 정밀하다.
시를 끌고가는 묘한 재미가 엿보인다.
쓴다와 보다 사이엔, 손가락이 떨어져 있고, 또 핏덩이 혈흔이 보인다. 쓰는 것이나 읽는 것이나, 다 생각의 한 조각들 아닐까... 죽은 언어는 벌레가 파먹을 뿐이고, 또 죽인 언어는 다시 부검이 될 악순환적 알레고리를 가진 것이니, 시란 몸이 해체되고 분해되고 각자의 낱말로 나뉘어질 때, 결국 시인이 온밤을 몸서리친 공허만 남겠다.
집도의 y가 모음 o나u로 살을 파먹은 자리에 마지막 놓인 건 당신(you)이다. 당신이 무언가를 분해하고 해체했으므로 이제는 당신을 부검할 차례다.
딱 한가지 분해되고 해체될 수 없는 것은 시를 쓰는 정신일 것이다. 시를 맴돌았던 마음일 것이다.
나는 이 시를 경쾌하게 재미있게 읽었다. 우선 낯선 기법, 그리고 비껴서 말하기, 묘사도 진술도 묘하게 풀어놓은 즐거운 시다.

활0ㅕ
      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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