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 이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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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91회 작성일 18-08-15 04:30본문
그늘 / 이상국
봄이 되어도 마당의 철쭉이 피지 않는다
집을 팔고 이사 가자는 말을 들은 모양이다
꽃의 그늘을 내가 흔든 것이다
몸이 있는 것들은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아내는 집이 좁으니 책을 버리자고 한다
그동안 집을 너무 믿었다
그들은 내가 갈데가 없다는 걸 아는 것이다
옛 시인들은 아내를 버렸을 것이나
저 문자들의 경멸을 뒤집어쓰며
나는 나의 그늘을 버렸다
나도 한때는 꽃그늘에 앉아
서정시를 쓰기도 했으나
나의 시에는 먼 데가 없었다
이 집에 너무 오래 살았다
머잖아 집은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철쭉은 꽃을 버리더라도 마당을 지킬 것이다
언젠가 모르는 집에 말을 매고 싶다
* 이상국 : 1946년 강원도 양양 출생, 1976년 <심상> 으로 등단
시집 <동해별곡> 등 다수
# 감상
누구나 사는 평화로움을 깨뜨리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 내는 것이 그리 만만치가 않아 그 평화로움이
깨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문학이나 철학 등 학문에 전념하는 사람에게 그런 경우가 많은
데, 참 아타까운 현실이다
학문은 금전 만능주의로 척박해 가는 우리 사회에 단비 같은 것,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진리 탐구의 길 학문, 화자도 그런 현실을
넌짓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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