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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내부 / 천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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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53회 작성일 18-08-21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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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내부 / 천융희

                    -알츠하이머

 

 

 

     오래된 마을에는 오래된 사람들로 헐렁하고

     그들은 같은 속도로 늙어 가고

 

     대부분 최초의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방향을 잃은 새떼로 텅 빈 공중에는

     흩어진 길들을 바삐 찾아 나선 바람만 무성하고, 어느 날

     주름진 골목 어귀에 기우뚱한 회전의자가

     정물처럼 낯설게 놓여 있다

     삐걱,

 

     갑자기 친절해진 방문객들은 매우 공손하게 그들을 안내한다

     한 번 내디딘 발은 결코 되돌리지 못한답니다

 

     더욱 깊어진 더욱 높고 더욱 단단한 고립의 벽

     대체 바람은 얼마를 더 삐거덕거려야 모서리가 닳을 것인가

     둥글어질 것인가

     몸의 각도가 등과 바닥을 중심으로 집중한

     기억의 내부가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고

     최초의 것들에 이르는 당신

 

     당신이 앉았던 자리 또 다른 당신이

     빛바랜 등받이와 움푹 팬 바닥 사이로

 

     당신이 앉았던 자리 또 다른,

     어느 날

 

 

 

鵲巢感想文

     이 시를 읽으니 사회의 고령화, 특히 농촌은 심각한 정도다. 한 마을에 젊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어떤 마을은 노인이 하나둘씩 떠나간 후, 폐허가 되다시피 한 곳도 있다. 그러니까 한 마을이 없어진 것이다.

     詩 기억의 내부는 시의 시적 묘사로 보면 아주 탁월하다. 한 단락씩 읽고 곰곰이 생각하면 그럴싸하다. 아니, 내 머리에 어떤 기억 한편을 지우개로 지워가며 마치 탁본을 뜨듯 명징한 습자지 한 장 건져 올린 것처럼 시원한 느낌마저 든다. 비석처럼 탁본한 그것은 분명 겠다.

     그러니까 오래된 마을에는 오래된 사람들로 헐렁하고 그들은 같은 속도로 늙어 간다. 이미 하나의 돌에 새긴 문장과 문장은 세월 따라 함께 늙어가는 법이다.

     대부분 최초의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그것을 읽다가 보면 시가 어떻게 출발했는지 마치 원인규명을 하듯이 말이다.

     방향을 잃은 새떼로 텅 빈 공중에는, 인식에 혼잡한 세계를 그린다. 마치 텅 빈 공중에 방향을 잃은 새떼처럼 衆口難防이다. 하나의 공통된 관점을 찾기에 매진하는 단계로 보면 좋겠다.

     흩어진 길들을 바삐 찾아 나선 바람만 무성하고,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아무런 목적도 없이 어떤 세계에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 내가 뭐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지, 사람은 태어나 값진 일을 하여야 하는데 인생의 그 목적을 잃은 것처럼 다만, 희망만 무성한 것처럼

     주름진 골목 어귀에 기우뚱한 회전의자가

     협착과 다급함, 답답함과 융통성이 없는 세계에 마치 회전의자에 앉아 있듯 빙빙 돌고, 이러한 묘사는 인식의 전초전으로 알츠하이머를 아주 잘 묘사했다고 나는 본다. 물론 알츠하이머에 걸려봐야 알 수 있는 문장은 아니지만, 탁월한 시적 묘사다.

     정물처럼 낯설게 놓여 있다. 이는 꽃이나 화병처럼 아주 낯선 곳에 저 홀로 피어 있는 것과 같다.

     갑자기 친절해진 방문객들은 매우 공손하게 그들을 안내한다. 까만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넣어 라떼아트가 되는 순간이다. 알츠하이머가 걷히고 분명한 선이 주어진 곳 시는 스스로 그들을 안내하기에 이른다.

     한 번 내디딘 발은 결코 되돌리지 못한답니다. 를 읽고 감상문 쓰기까지 구름을 걷은 하늘을 볼 때 무언가 쓰고 싶은 충동이 일 듯 시는 그렇게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끈 없는 노끈처럼 접착부위가 없는 반창고처럼 어데 한 구석에 묵직하게 결박한 것처럼

     더욱 깊어진 더욱 높고 더욱 단단한 고립의 벽, 알츠하이머()의 진실을 알았을 때 어쩜 그렇게 묘한 사색의 벽을 만들었는지 하늘에 사다리를 놓고 걸어가 확인할 때 대체 바람은 얼마를 더 삐거덕거려야 모서리가 닳을 것인가 둥글어질 것인가, 시인들은 모서리라는 용어를 자주 애용한다. 이는 굳고 더는 움직이지 않는 세계관이자 침묵의 공간이다. 시인 이해존의 시 을 보면 이제 모서리가 필요하다. 벽을 따라간 대치 끝에 너와 악수하고 또 다른 모서리에서 만난다. 모서리가 향한 곳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거리라고 표현한 부분이 있다. 모서리는 무엇을 제유한 것인가? 모서리처럼 각진 세계이자 시인의 무덤이다.

     몸의 각도가 등과 바닥을 중심으로 집중한다. 알츠하이머() , 기억의 내부에 좀 더 가까워진 것을 말한다. 여기서 각도라는 말이 재밌다. 전에 모 시인의 시 거미의 각도를 읽었지만, 각도는 각도覺道. 진리를 깨닫는다는 말로 불교에서는 오도悟道라고도 한다.

     기억의 내부가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고 최초의 것들에 이르는 당신, 는 참 묘하다. 사람마다 읽고 느끼는 점은 다르겠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뇌 속은 마치 전등불 하나 없는 밤거리나 마찬가지다. 여기서 순간 불빛을 하나둘씩 켠다고 생각해보자. 머릿속은 환하다. 독자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어떤 명상에서 빛을 보는 순간이다. 이러한 모든 주술적呪術的 행위는 나를 찾기 위한 궁극적 목적도 된다.

     당신이 앉았던 자리 또 다른 당신이 빛바랜 등받이와 움푹 팬 바닥 사이로 행 가름하고 당신이 앉았던 자리 또 다른, 어느 날

     어느새 알츠하이머에서 이탈한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하루 / 鵲巢

 

     알츠하이머처럼 나는적었다

     지워나간하루가 대숲같았다

     밤이면만월처럼 떠오른하루

     민낯에다가죽죽 그어나갔다

 

     그을수록대숲은 나를지웠다

     지운건분명했다 다음날이면

     아주맑고깨끗해 홀가분했다

     또일은마디마디 이어나갔다

 

     오늘도유골처럼 바람이분다

     댓잎같은하루가 소리가난다

     하루는유성처럼 스쳐가므로

     과거에도현재도 묻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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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융희 경남진주에서 출생 2011년 시사사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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