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 / 김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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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30회 작성일 18-09-04 13:37본문
풍선 / 김길나
여기, 풍선이 있어요
풍선은 하늘과 땅이 맞붙은 지평선들로 가득 / 파동치고 있어요
달려온 두 마음이 지평선에 닿아 종소리로 떨고 있어요 / 그러나 종소리는 접혀져 들리지 않아요
납작하게 접힌 구름 아래 수련은 연못을 마시고 / 수련 이전과 이후를 두릿거리다가 수련을 떠나갔어요
지평선을 넘어가고 넘어온 내 만 년 고독을 / 접힌 창공이 눌러 놓았으나
만 년 동안의 내 슬픔은 사랑으로 가지 못했고 / 사랑은 아직 태어나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누가 풍선을 불기 위해 푸른 날숨으로 오고 있군요
막 안에서 시간이 팽창하고 우주 풍선이 부풀어 오르는데요
펴진 강물이 휘늘어지는 버들가지를 적시고 / 점으로 떠돌던 새가 날개를 펴들어 풍선에 실려 날아가고 있군요
어디로, 어디로 날아가는 걸까요? / 우주풍선의 막이 저토록 얇은 것이라면...... / 그러면, / 지금 여기는 풍선 안일까요 밖일까요
밖이라면, / 이곳은 또 어느 우주일까요 / 꽃으로 펼쳐진 목련이 어리둥절해 제자리를 자꾸 두리번거려요
鵲巢感想文
가을이다. 오늘 아침은 더욱 가을을 느꼈다. 우주 한 끝자락에 풍선 같은 지구에서 어느 한 국밥 집 평상에 앉아 아침을 먹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眺天則星光寫, 聆地則蟲音滿. 李子張燈於星光蟲音之中, 讀楚國之騷, 以洩秋氣
眺조, 바라보다 살피다. 寫사 베끼다. 聆령 듣다. 騷소 떠들다. 離騷(근심을 만남) 楚國 굴원屈原이 지은 賦(한시체의 하나) 洩설 퍼지다 훨훨날다, 예 퍼질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빛이 쏟아지고, 땅에 귀를 기울이면 벌레 소리 가득하다. 나는 별빛과 벌레 소리 가운데서 등불을 켜 들고 굴원의 “이소離騷”를 읽으면서 가을 기운을 덜어본다고 했다. 조선의 실학자 이덕무의 말이다.
靑莊(이덕무의 호)은 굴원이 지은 이소를 읽으며 가을을 보냈다. 하나의 미물인 벌레도 세월 다 가고 있음을 느꼈던 가을에 정치적 모함에 의해 조국을 등지며 떠나야 했던 굴원의 글을 읽었다.
시대는 바뀌었다만, 가을은 2천 년 전이나 2백 년 전이나 다름없는 계절을 우리는 맞보고 있는 셈이다.
이 계절에 풍선을 본다. 풍선의 의미는 원시적이라고 보기에는 미끈하고 단순하기보다는 복잡하게 닿는다. 모성애를 담은 시어 같기도 하지만, 어떤 용기를 대변하기에는 적지 않은 미흡함이 있다.
우리는 어떤 상상을 원하며 이 상상에 어떤 현실을 반영할 것인가! 온갖 만물이 번창하고 하루도 끊임없이 이는 소객騷客 속에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수련은 작가를 대변한다. 연못이 수련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수련이 연못을 마시고 그 이전과 이후를 두리번거리다가 수련을 떠나갔다고 했다. 寫다.
우리는 자연을 그대로 베끼며 우리의 모습을 읽는다. 그러나 종소리는 접혀져 들리지 않아요. 접은 종소리는 들리지 않다고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 뻔했다. 접힌 구름보다는 접은 구름이 낫고 접힌 창공보다는 접은 창공이 더 좋지 않을까! 납작하게 접힌 구름은 납작한 구름이 더 좋겠다. 반복적인 시어는 아니다만, 뜻은 중복되는 느낌이라 그렇다. 소통의 단절과 성찰의 미찰이다.
풍선은 한 생명의 자궁이다. 날숨으로 오는 족장은 들숨으로 닿는 精氣를 느낄 때 생명의 구원이자 창조의 세계를 이끄는 원동력을 갖는다. 예측불허의 축구를 보는 것과 같다. 각본 없는 상상에 오직 이 가을을 이겨야겠다는 심념으로 툭 풍선을 읽는 것과 같다.
초조, 불안, 불면증, 두려움 같은 것을 버리고 협력과 양보,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조직력에 우리의 미래를 걸어야 한다.
이제는 두리번거리지 말자.
아름다운 풍선을 보면서 또 생각하면서 이 가을 이 하루를 이겨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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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나 1996년 문학과 사회 가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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