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장소에서 기다리다 / 장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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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18회 작성일 18-11-17 04:44본문
다른 장소에서 기다리다 / 장정욱
앞문의 햇볕을 보지 못한 채
비가 내리는 뒷문으로 내려왔다
후렴구가 긴 노래처럼
정류장 의자는 자주 먼 생각에 빠졌다
구름은 어느 정류장에서 시동이 꺼지는지
기다렸던 비를 태우고 어디로 사라지는지
수신과 발신 사이에 서 있는 공중전화기
막 도착한 빗방울들은
아무도 두 개의 문에 대해 애기하지 않았다
공터의 풀잎들은 내일까지 젖어들었다
빗줄기는 날짜 없는 차표를 들고 한없이 길어졌다
문과 문 사이에 놓여있는 횡단보도, 가로수가 일렬로 길을 건널 때
낡은 햇볕의 앞문과
비에 잠긴 뒷문이 서로 마주치지 않게
정류장 표지판은 여름의 노선을 슬쩍 지웠다
* 장정욱 : 인천 출생, 2015년 <시로 여는 세상> 으로 등단
< 감 상 >
독자들이 생각나는데로 생각하라는 듯, 화자가 말하려는 중심 모티브가 무엇인지
좀처럼 짐작이 가지는 않지만,
- 정류장 의자는 자주 먼 생각에 빠졌다
- 구름은 어느 정류장에서 시동이 꺼지는지
- 기다렸던 비를 태우고 어디로 사라지는지
아마도 화자는 어느 정류장에 혼자서 언제 올지도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며 온갖 상
상에 빠지면서 주변의 사물들과 진지하게 내통(자연과 자아의 일치)을 시도하고 있다
- 버스의 앞문에는 낡은 햇볕이 있고 뒷문에는 비에 잠긴다
화자가 처해진 서사는 초라한 정류장이나, 버스의 앞문과 뒷문 사이가 천리 인듯, 천 년
인듯, 화자의 상상력은 우주적이고 낭만적인데,
시인은 누구나 네러티브의 내용보다도 시가 풍기는 신비스럽고 멋진 이미지를 먹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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