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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화장(化粧)법/김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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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6회 작성일 18-11-2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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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화장(化粧)법 


-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바닥/ 오선덕

한 장의 정오/ 장정옥

비밀/ 혜성

 

  아름다운 여인을 지칭할 때 화용월태 또는 침어낙안 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문자 그대로 화용월태는 꽃다운 얼굴과 달 같은 자태를 말하는 것이며 침어낙안은 미인을 보고 물고기가 숨고 기러기가 땅으로 떨어졌다는 장자의 (제물론)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본래의 얼굴도 아름다운 얼굴이겠으나 어쩌면 화장을 통해 그 아름다움이 더 돋보였을지도 모른다. 화장 본래의 뜻은 몸을 청결하게 하거나 미화하는 행위이나 현대적 의미로 생각하면 아름다운 부분은 돋보이게 하고 가리고 싶은 부분은 수정하거나 좀 더 곱게 다듬는 행위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본래 일제 강점기 이후에 도입된 일본말이 어원으로 알려져 있다. 비슷한 말로 이용(冶容)이 있다. 하지만 이용은 본래의 아름다움을 꾸미는 말보다는 위장, 분장 등 화장과 좀 더 다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화장은 기초화장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용은 색조 화장이라고 정리하면 맞을 것 같다. 화장의 기원은 비교적 오래되었다. 상고시대, 신에게 경배 등을 하기 위하여 얼굴에 치장하는 행위가 그 기원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대개념의 화장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엽이라고 볼 수 있다. 자연 유래부터 화학적 성분이 가미된 화장품의 발달로 인하여 화장기술이 발전하고 현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화장의 기원은 삼국유사,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문헌에 많이 언급되어있는 것을 볼 때 화장은 삶에 있어서 필요불가결한 조건임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근래는 화장은 여성만의 전유물이 아닌 남성 역시 화장을 하는 시대라고 한다. 방송 출연 등 부득이한 경우에도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도 옅은 화장을 한 남자를 종종 볼 수 있다는 것을 격세지감이라 언필칭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화장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신의 모습을 꾸미고 가꾼다는 점에서, 그것이 어쩌면 자기애 또는 자기만족이라는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매우 적절한 수단이라는 점은 수긍이 간다.

 

시를 논하는 자리에서 뜬금없이 화장에 대한 서설이 길었다. 가령 시의 기초 작업을 민낯이라고 가정할 때 퇴고하는 행위는 화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이번 달의 주제를 시의 화장법이라는 부제로 시작하게 된 배경이다. 물론 민낯이 더 아름다울 때도 있다. 하지만 때에 따라 적절한 화장을 거친 얼굴은 좀 더 아름답다. 시에서 말하는 진정성이라는 부분은 민낯이라는 말과는 좀 더 다른 의미를 가진다. 반대로 화장을 한 얼굴(시)은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말과는 맞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적절)이라는 단어다. 좀 더 철학적으로 말하면 중용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일 것이다.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보는 관점을 시적 포착점이라고 하면 그 관점에 옷을 입히는 행위를 언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언술에 기초화장과 색조 화장을 잘해서 잘 어울리는 작품을 출품할 때 우리는 그것을 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장과 문장을 섞고 그 안에서 시인의 메시지를 산출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는 말일 것이다. 현상을 본 것은 누구나 같은 지점, 같은 각도, 같은 자리일지라도 현상의 배후에 있는 또 다른 경계 너머의 것에 대한 생각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 예를 들어 어머니에게 과일 깎을 과도를 달라고 했는데 어머니가 손잡이를 내 방향으로 하고 칼날을 어머니 방향으로 해서 준다면(이런 내용의 시가 있다.) 누구나 칼의 손잡이를 내 방향으로 주는 것은 같을 것이지만 시로 표현한다면 (칼날은 늘 어머니를 향해 있었다.)이 한 줄이 주는 공감의 영역과 감동의 시적 영역은 아름답게 채색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시를 들은 시의 제목과 작가가 기억나지 않아 사죄드린다.)시에 있어서 화장법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누구나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행동이나 행위에서 삶의 한 단면을 성찰하고 그 시적인 발화점에 자기만의 눈으로 채색한 메시지를 독자에게 던질 때 독자는 침어낙언의 미인을 본 듯한 희열과 공감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가령, 너무 짙은 화장이나 나이나 환경, 상황에 적정하지 않은 화장은 때론 보는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듯 화장의 방법은 시인 나름의 기준에 보편타당한 시선을 버무려 낼 때가 아름다운 법이다. 스모키 화장이나 펑키 화장은 록 콘서트장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그 장소에서는 매우 잘 어울리고 콘서트의 분위기를 상당히 높일 수 있고 그곳에서 참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일상에서 진한 펑키, 스모키 등의 화장은 자칫 마니아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다소 불편함을 주게 될지도 모른다. 필자가 계속 언급하는 문장의 비만화 현상이다. 과도한 수사에 바탕을 둔 시는 수사를 쫒아 가다 보면 본질을 호도하게 될 때가 왕왕 있다. 또한 너무 많은 메시지를 담게 되면 본래 말하고자 하는 의도조차 잘 모르게 될 때가 있다. 마치 장례식장에 조문 온 분의 펑키 화장이 안 어울리는 것처럼 시의 화장법은 시인 자신의 개성도 중요하지만, 대중의 눈도 무시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한다.

 

화장을 외면의 화장과 내면의 화장 두 가지로 구분할 때. 모두를 아우르는 시의 적절한 화장법과 관련해 천양희 시인의 낯설게 하기의 아름다움이라는 기고문에서 일부를 인용해 본다.

 

*어린애가 첫 세상을 보듯 시 앞에 앉을 때 


어떤 신인이 나한테 시를 보여주는데 소쩍새가 겨울에 울고 있더라구요. 소쩍새는 초여름부터 웁니다. 그래서 내가 없는 것을 상상력으로 만드는 것은 정말 좋지만 실제로 있는 것을 왜곡시키는 것은 안 됩니다. 여름에 우는 소쩍새를 겨울에 운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마음속에 생물을 넣고 다녀야 합니다. 살아있는 식물, 새소리 등 생물을 넣고 다녀야지 역동적인 시를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변화에 민감해야 합니다. 계절의 변화나 날씨의 변화에 민감해야 합니다. 비가와도 그만, 달이 떠도 그만, 눈이 와도 그만 종소리를 들어도 아무 감흥이 없으면 생각이 죽어버립니다. 죽은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있는 시를 쓸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도 연애를 하지 않아도 연애 감정을 좀 가져 보세요. 그리고 자기를 살려보세요. 그러면 시를 쓰는데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낯설게 하기를 해야 합니다. 낯설게 하기라는 단어는 러시아의 형식주의자들이라고 일컫는 문학 이론가들이 있었는데 '시의 기능은 사물의 낯설게 하기'라고 쓴 데서부터 기인했다고 합니다. 낯설게 하기의 본보기의 시로는 김광균의 [추일서정]의 첫 구절에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는 대목이 있는데 얼마나 새로운 인식입니까. 또 영국 작가 체스터튼은 가로수를 가리켜 '노상 누워 있던 땅의 일부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벌떡 일어선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새로운 인식입니까. 관습적인 인식에서 완전히 벗어났지요.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앞으로 좀 써야 합니다. 남의 시를 읽되 자기가 쓸 때에는 보지 마세요. 그러면 비슷비슷한 시를 쓰게 됩니다. 그때는 떠나 보내버리세요. 완전히 자물통을 채워놓고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쓰는 게 좋습니다. 


다음은 동심적 발상을 해라. 왜냐하면 어린애가 처음 세상을 보았을 때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신선합니까. 시인은 그런 발상을 해야 합니다. 맨날 나이만 먹다가 나는 늙었는데 하면서 왜 자기를 빨리 늙게 합니까. 주름살이 늘어서 늙는 게 아니고 영혼이 깜깜해질 때 늙는다고 했습니다. 나이가 많이 든 사람이라도 마음이 늘 살아있고 마음에 언제나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겠다는 사람은 얼굴이 훨씬 젊어 보입니다. 화장을 해서 젊게 보이는 게 아니고 마음을 색칠하라는 얘기입니다. 마지막으로 현실을 직시해라. 아무리 시를 잘 써도 자기 인생이 들어가 있지 않거나 존재의 그런 게 없거나 현실과 너무 분리된 시나 음풍영월조의 시는 가치가 없습니다. 


이런 방법을 써도 시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우울하고 죽어야 되나 살아야 되나 하면서 새벽시장도 가보고 미친 듯이 다닙니다. 낯선 곳도 가보고 어디 가다가 노을을 보고 앉아서 펑펑 울어보기도 하고 나를 자꾸 닦달을 해야 됩니다. 고목도 바람이 흔들어주지 않으면 죽습니다. 저는 거실에 풍경을 달아 놓았습니다. 풍경 밑에 물고기가 달려 있는데 왜 물고기를 달았을까요.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뜨고 잔답니다. 그래서 용맹정진하는 수도자처럼 물고기가 눈을 뜨고 자듯이 정신이 깨어 있으란 뜻으로 물고기를 달아 놓았다고 합니다. 


우리 시인도 눈을 뜨고 자는 물고기처럼 정신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남이 잘 때 잘 것 다 자고 남이 먹는 것은 다 먹고 배가 불러서 정신은 어디로 가고 배부를 때 시가 됩니까. 하루에 두 끼만 먹어도 죽지 않습니다. 꼭 세 끼를 먹어야 합니까. 그 한 끼를 아껴서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시가 안될 때는 하루에 몇 번씩 풍경을 칩니다. 아마 옆집 사람은 스님이 와 계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겁니다. 나는 그럴 때 정신이 바싹 듭니다. 물고기한테 부끄럽습니다. 


그 미물도 잘 때 눈을 뜨고 자고 스물다섯 번을 허물벗기를 하고 공중으로 아주 멋있게 나르고 짝짓기를 한 다음 하루를 살다가 죽는답니다. 하루를 살다 죽는 그 미물도 성충이 되려고 천 일을 물속에서 보내고 스물다섯 번의 허물을 벗는데, 오관을 가진 인간이 허물도 하나 벗지 않고 고통도 받지 않고 고뇌도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어려운 시를 쓸 수 있을까요. 그래서 나는 미물한테서 시인의 치열성을 배웁니다. 그 미물의 치열함이 나의 새로운 가치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 치열한 깨우침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만들면서 그 시가 정신의 밥이 되거든요. 그리고 나를 잘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잘 산다는 거는 시로 된 정신의 밥을 먹으면서 살아야 잘 사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함민복 씨의 시 [긍정적인 밥]으로 강의의 결론을 대신하겠습니다. 


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들어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굶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낯설게 하기의 아름다움/천양희 시인』부분 인용

 

화장이라는 말은 시적 외모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의 본질을 포함한 모든 시적 대상물, 관찰점, 외연, 내연 등 시의 모든 부분에 대한 화장을 의미한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만져지는 그대로 시를 쓴다면 시는 어쩌면 자기만족에 그치는 그들만의 리그에 딱 들어맞는 문학이 될 것이다. 그것에 무엇을 더하고 그리고, 마스카라를 그리고, 긴 속눈썹을 붙이고, 붉은 립스틱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얼굴 본래의 바탕, 빛깔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을 다스리고 정갈하게 수련하는 사람의 민낯은 색조 화장의 컬러풀보다 더 광채가 난다. 그것은 함민복 시인의 말처럼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게 하는 것이다. 독자에게

 

독특한 화장법은 없다. 특히 시에서는, 시인 나름의 방법을 찾고 또 찾고 모색하는 것이 화장이다. 하지만 그 화장이 공감을 얻을 때 비로소 한 편의 시는 침어낙안, 화용월태가 되는 것이다. 요컨대 얼굴과 마음이 다 예뻐야 진정한 미인이 될 것이다. 민낯도 화장이다.

 

모던포엠 12월호에서는 각자의 특색 있는 화장법으로 잘 단장된 시 편을 선정하여 감상해 보기로 했다. 첫 번째 작품은 오선덕 시인의 [바닥]이라는 작품이다.

 

바닥

 

오선덕

 

떠나보낸 빈자리가 너무 고요해서 발자국 소리마저 숨어버렸다

 

ㅓ,ㅓ 밖에 소리 내지 못하는, 그나마 그것마저 잊어버린 작은 짐승이 되어 갔다.

 

잔뜩 메마른 화분에 물을 주었다. 파도 소리가 들렸다.

-너는 그나마 말을 하는구나.

 

옹알이처럼 파도소리를 흉내 내는 날들이 많아졌다.

 

문장들은 바닥을 모르는 활자들이 만든 블랙홀이거나 펜트하우스이거나.

 

아스팔트에 달라붙어 종이딱지처럼 질기디 질긴 빈자리엔 바닥이 없다.

 

오선덕 시인의 시는 비교적 단문 형태로 구성되어있다. 행과 행, 연과 연을 이어주는 말과 말의 연결방식이 아닌, 말에 이미지를 입히는 방식의 단문이다. 그래서, 이래서, 그렇게 등을 철저하게 배제한다는 것은 감정의 절제라고 볼 수 있다.

 

잔뜩 메마른 화분에 물을 주었다. 파도 소리가 들렸다.

-너는 그나마 말을 하는구나

 

시의 배경이나 환경은 충분히 알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절제라는 말이다. 슬프거나 기쁘거나 아프거나를 직접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화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너는 말을 하는구나/ 혹은 그나마 말을 하는구나/로 이어가면 그저 독백이라고 오독할 여지도 충분하다. 하지만 화분이라는 매개체에 파도를 끌고 와 [잔뜩 메마른]이라는 주어의 기능을 극대화한 것이다.

 

잔뜩 메마른 = 너는 그나마= 화분 의 등식으로 자신의 모습에 대한 개연성을 풀어 가고 있는 듯하다.(그나마)라는 단어는 묘한 어감을 준다. 좋지 않거나 모자라기는 하지만 그것이라도, 또는 그것마저 라는 의미는 화자의 상태를 에둘러 표현하기에 적절한 화장법이라는 말이다. 나는 그나마 그것조차 못하고 짐승이 되어 갔고, 자음 또는 모음밖에는 낼 수 없는 불완전한 성대의 상태, 그 상태는

 

옹알이처럼 파도소리를 흉내 내는 날들이 많아졌다.

 

파도 소리, 그나마 말을 하는 화분을 흉내 내는 일이 많아졌다는 의식의 전이 내지는 의식의 변형을 꾀하는 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결구 부분에서 시인은 그 상태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사람과 사람의 일이 아닌 글과 시인의 문제, 글에 대한 시인의 심경을 고백한다.

 

문장들은 바닥을 모르는 활자들이 만든 블랙홀이거나 펜트하우스이거나.

 

아스팔트에 달라붙어 종이딱지처럼 질기디 질긴 빈자리엔 바닥이 없다.

 

때론 시를 짓다 보면 영 헤어 나올 수 없는 블랙홀에 빠진 느낌일 때가 많다. 첫 줄, 단어 하나가 떠오르지 않아 몇 날을 밤새우는 불면의 날들, 비로소 시제가 (바닥) 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오선덕 시인의 바닥에 깊은 공감을 하게 된다. 단문 형태로 구성한 부분이 오히려 더 많은 절제된 감정을 읽게 만드는 것 같다. 충분히 상황에 잘 어울리는 화장술을 갖고 있다. 오선덕 시인의 (바닥)이라는 작품은 마치 창백한 민낯에 옅은 기초화장만 한, 그래서 더 매력적인 작품이다.

 

두 번째 작품은 장정옥 시인의 (한 장의 정오)라는 작품이다.

 

한 장의 정오

 

장정옥

 

빗방울로 스케치를 했다

 

너와 만나기로 한 지점이 우체통에서 몇 걸음, 꺾어진 해바라기 그림자에서 또 몇 걸음이었는데

모두 번져 들었다

 

주머니 속 손가락이 헤진 구멍 속 연락을 뒤적일 때

한 장의 정오는 먼 훗날 기억을 이어붙이며 보도블록을 걸었다

 

바람이 축축한 걸음으로 옆을 스치고

우기를 간지해 둔 옆구리가 더 깊어졌다

 

천천히 색을 잃어가는 빗소리

우연이란 말 속에 흘러들고 싶었다

 

느려진 풍경을 꺼내와

푸른 펜으로 그린 창문을 열고

눈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그 지점에 닿고 싶었다

저 혼자 떨어지는 빗방울은 휘어진 전생에서 시작되었다

 

필자가 이 작품을 읽으며 가장 중요하게 읽은 지점이 결구다.

 

저 혼자 떨어지는 빗방울은 휘어진 전생에서 시작되었다

 

본문의 모든 비유와 은유와 사유가 좋지만 가장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빗방울, 휘어진 전생이라는 시적 은유의 포착점이다. 비는 사선 혹은 직선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누구도 저 혼자 떨어지는 빗방울의 전생이 휘어져 있다는 것은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 빗방울이 당신이든, 나든, 우리는 모두 휘어진 전생을 갖고 태어나 저 혼자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1연에서 결구까지 이르는 과정은 저 혼자 떨어지는/ 휘어진 전생에 초점을 두고 이어져 왔다.

 

빗방울로 스케치를 했다/

 

주머니 속 손가락이 헤진 구멍 속 연락을 뒤적일 때

한 장의 정오는 먼 훗날 기억을 이어붙이며 보도블록을 걸었다/

 

우연이란 말 속에 흘러들고 싶었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방향을 따라 몇몇의 행과 연에 주목했다. 오후라는 한 장의 캔버스에 시인이 바라본 풍경이 번져 들었고, 색을 잃었고 보도블록을 걸었다. 그 반대편에서 우연이라는 또 다른 캔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시인은 또 다른 빗방울이 되어 우연이라는 캔버스, 한 장의 오후에 번져 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군데군데 시적 완성도가 높은 (화장술이 돋보이는) 몇 부분을 인용해 본다.

 

1. 느려진 풍경/

2. 푸른 펜으로 그린 창문/

3. 스케치 = 모두 번져 들었다/

 

이 모든 화장은 결국,

 

우연이란 말 속에 흘러들고 싶었다/

 

이 얼굴을 완성하기 위한 마스카라, 속눈썹, 립스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귀결점은 시의 완성형이라는 말이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화장술에도 순서가 있을 것이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화장을 해 본 적이 없는 필자는 모른다. 하지만 꽤 능숙한 솜씨로 화장을 한 아름다운 여인을 보는 느낌이다. 느낌은 순서와 큰 관계가 없을 것이다. 시제 (한 장의 오후)가 마치 붉은 립스틱을 예쁘게 바른 듯 썩 잘 어울린다.

 

마지막 작품은 혜성 시인의 (비밀)이라는 작품이다. 본문을 소개하기 전에 필자가 주목한 것은 쉿 이라는 단어 하나다. 쉿 이라는 말은 시에서 많이 사용되는 단어이며 동시에 주의를 환기하는 작용에 탁월하다. 사전적 의미는 소리를 내지 말라는 뜻으로 급하게 내는 말이다. 시제 (비밀)과 본문의 (쉿)은 피동태가 아닌 능동태의 본문을 매우 적절하게 이어주는 청각적 공감을 준다.

 

비밀

 

혜성

 

구멍 난 사람들이 어둠을 더듬다

하나둘 안경을 벗고 나오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좀, 밝아지셨나요

 

코가 막혀요

향기에 도취된 콧구멍이 죄악인 게지요 의사는 말한다

하얗고 빨간 아기의 천공을 주세요 그러면 숨을 쉴 수 있을까요

 

쉿 조심 하세요

주인여자의 입 속에 아흔아홉 개의 꼬리가 자라요 누가 귀띔을 해 준다

마른 손톱이 자꾸 부서지는 캔 뚜껑을 입으로 딸 수 있지요

 

귀가 아파요 귓속의 고슴도치를 꺼내 주세요

고슴도치가 움직일 때마다 달팽이관에서 피가 흘러요

성이 나면 울고 마는 고슴도치를 달래 줄 수 있나요

 

배설을 하는 구멍도 있어요

구멍이 많은 여자가 구멍 난 시를 노래하고 구멍 난 가슴을 울리고

굴속으로 숨어들어가 십자가를 그어도 아이를 낳을 순 없어요

 

변기가 막혔네요

땜장이 영감님 노래가 막혀도 걱정 뚫려도 걱정

 

일반적인 상식에 어긋나는 표현 내지는 사유의 영역을 독보하는 듯한 시인의 시는 매력적이다.

 

코가 막혀요

향기에 도취된 콧구멍이 죄악인 게지요/

 

굴속으로 숨어들어가 십자가를 그어도 아이를 낳을 순 없어요/

 

하얗고 빨간 아기의 천공을 주세요/

 

분명한 것은 콧구멍이 죄악은 아니라는 것이며, 십자가를 그어도 아기는 낳을 수 있다는 것이며, 아기의 천공은 숨을 쉰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식의 글은 주제를 모호하게 만드는 비틀림이 되기도 하지만 더불어 무척 감각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감각은 다의적이다. 안팎의 자극을 느끼거나 알아차리는 것, 무엇에 대하여 민감하게 느끼거나 인식하고 반응하는 능력,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지니는 특정한 인상이나 느낌 등을 말한다. 하지만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전달되는 감각은 어떤 의미에서 비 감각적일 때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에서만큼은 그 감각의 전달 경로가 주체와 객체를 뒤바꿈으로 인해 도드라지게 보인다는 점이다. 혜성 시인의 시가 그렇다. 비정상적일 수 있는 경로를 만들고 그 통로 속에서 시인이 체득한 감각을 생성하고 포집하여 배출하는 것이다.

 

귀가 아파요 귓속의 고슴도치를 꺼내 주세요

고슴도치가 움직일 때마다 달팽이관에서 피가 흘러요

성이 나면 울고 마는 고슴도치를 달래 줄 수 있나요

 

독자가 받아들이는 감각기관을 송두리째 뒤집어 독자로 하여금 마치 비정상이 정상인 것으로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는 문장이다. 전위(前衛)하고는 개념의 출발선이 다르다. 선구적이거나 실험적인 문장이 아닌 감각적인 문장이라고 표현하면 정확할 것 같다. 이는 시인이 의도했든 안 했든 독자의 몫이라고 남겨두기로 한다.

 

이달의 주제어는 시의 화장법이다. 어쩌면 세 편의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한 형태의 화장술 중 가장 신선한 화장이 혜성 시인의 화장술로 보이는 것은 필자의 독특한 심안 때문인지도 모른다. 5연이 시를 쓰는, 혹은 읽는 우리에게 매우 강하게 다가오는 문장이라는 생각에 인용해 본다.

 

배설을 하는 구멍도 있어요

구멍이 많은 여자가 구멍 난 시를 노래하고 구멍 난 가슴을 울리고/

 

12월이다. 한 해가 바로 어제 시작한 것 같은데 오늘이 12월이다. 인생이라는 일수 장부에 서른 개 남짓 도장 찍을 칸이 남았다.

 

필자는 어려운 말로 어려운 것을 표현하지 못한다. 아니 어려운 평론 자체를 모른다. 필자의 빈약한 평론에 대한 지식과 인식으로 인해 한 해 동안 좋은 시인들의 뛰어난 작품에 자칫 누가 되지 않았을까 심히 저어된다. 하지만 구차하게 변명한다면 최소한 시를 주신 시인들의 가슴 속을 후벼 파고 그곳에 들어가 그와의 동질성을 갖고자 노력했음을 지면을 빌어 밝힌다. 한 달에 한 번, 해당 작품의 작가가 되어본다는 것, 충분히 매력적인 일이다. 삶의 대부분을 민낯으로 살아온 필자의 화장술은 딱 거기까지다.

 

한 해 동안 읽어주신 독자님들에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매일, 내일까지만 딱 내일까지만 따듯해지길 바란다.


월간 모던 포엠 2018.12월호 기고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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