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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문학동네 신인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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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392회 작성일 18-10-18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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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문학동네신인상 시 당선작

                                                                                             

 

뚱한 펭귄처럼 걸어가다 장대비 맞았어 (4)

 

   박세랑

 

 

 

난 웃는 입이 없으니까 조용히 흘러내리지

사람들이 웅덩이를 밟고 지나가

더 아프려고 밥도 꼬박꼬박 먹고 알약도 먹어

물처럼 얼었다 녹았다 반복되는 하루

친구라도 만들어야 할까? 우동 먹다 고민을 하네

무서운 별명이라도 빨리 생겼으면 좋겠다

 

약 먹고 졸린 의자처럼 찌그덕삐그덕 걷고 있는데

사람들은 화가 나면 의자부터 집어던지네

난 뾰족하게 웃는 모서리가 돼야지

살아본 적 없는 내 미래를 누가 부러뜨렸니!

약국 가서 망가진 얼굴이나 치장해야지

뒤뚱뒤뚱 못 걸어야지

 

난 은밀한 데가 조금씩 커지고 있어

몸은 축축해 곰팡이가 넘치는 벽이 되려고 해

사람들이 깨트리기도 전에

계란프라이처럼 하루가 누렇게 흘러내리고

탱탱하게 익어가는 구름들아 안녕

누가 좀 만져주면 좋겠지만

 

뚱하게 걷다보면 장대비가 내리고

집에 뛰어들어가도 계속 비를 맞는다

 

터진 수도관을 고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 난 자꾸 흘러넘치는데 바닥을 닦아낼 손이 안 보이는데

 

갈 데가 없어 혼자 미끄럼틀을 타면

곁을 지나가던 어깨들이 뭉툭 잘려나가지

떨어진 난, 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겠지만

 

 

 

뾰족한 지붕들이 눈을 찌르고 귀마개를 뺐더니 아무도 나한테 말을 안 걸고

 

 

 

세면대 속 출렁이는 비명을 씻어내자

앞니가 두 개나 달아난 내가 뚱하니 서 있네

누구한테 자꾸 털리고 다니니?

내가 나를 털었는데요 어젯밤에 발작이 있었거든요

더러워진 손바닥과 구린내 나는 발가락을

우리집 마녀에게 내민다

젖꼭지 캄캄한 엄마가 냄새를 맡고 뛰쳐나와

불심검문처럼 내 몸을 구석구석 더듬다

내일쯤 잡아먹으면 끝내주겠지?

먼지 쌓인 악몽이 내 피를 한 차례 휩쓸다 간다

생각이 엉킬 때마다 머리카락은 무서운 속도로 자라고

검은 수초가 되어 발목을 넘어뜨리고

고무줄처럼 질긴 얼굴을 누가 잡아당기면

늘어나고 찢기는 나의 일상들

불안을 쪼그맣게 오려서 알록달록 꾸민다

미모를 갱신한 내가 약국으로 놀러간다

내 인생 하류를 통과하는

소화제를 한 움큼씩 집어삼키면

우와 시원하다! 몸에 찍힌 발자국들이 욱신거리고

눈 코 입 깨진 자리마다 후후 불면서

하트 모양 스티커를 붙이면 자신감이 생긴다

예쁜 건 내 잘못이에요!

열등한 건 더 열등한 것들을 만나 해결하라고

화장실 물을 시원하게 내려주면

가난하고 뻔뻔한 걸 낳아놓고

미역국을 사발로 퍼먹은 게 누구더라?

마녀에게 빠진 이를 드러내며 비웃어야지

굴러다니는 깡통처럼 신나게 밑바닥을 보여줘야지

 

 

 

뒤에서 오는 여름

 

 

 

여러 방향으로 꺾이는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흔들리는 풍경이 다가오는데

 

여름 안에서 나 혼자 걷고 있었다 여름이 무성하게 이파리를 뿜어내고 그늘을 만든다 삐뚤빼뚤 자라난 내가 징그럽게 언덕을 뒤덮고

 

생각을 길게 이어서 하면

 

펼쳐놓은 들판이 넘어간다 웃음과 비명으로 풀들이 찢겨 있었다 이파리는 떨면서 바닥에 엎드려 있고, 문장들이 따라붙는 건 모르는 사람의 불행들이지 남의 고통은 문장에게 최고로 인기가 많고

 

글씨들은 다정한데

감당할 수 없어서 조금 미쳐 있었고

 

살기 위해 나무는

 

줄곧 상처 입고 있었다 문장을 오래 들여다보면 전부 징그러웠다 겹겹의 렌즈들로 징그러운 내부를 읽어낼 수 있었다 무서울 게 없었다 두려움을 지나칠 수 있는 슬픔이 더 커져버려서

 

뭉개진 새를 곳곳에 심어두었다

 

더는 혼자서 버티지 않아도 돼, 라는 말을 들었다 그동안 얼마나 오래 버려졌던 거니 서늘하게 등뒤가 젖어 있던 날

 

지나오던 길목에서 죽은 새 한 마리를 본다

 

익숙한 문장은 겪어본 일들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의 인기는 날마다 치솟고 너희는 약 맛을 좀 아니

 

 


나사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어

불안이 피부 위로 돋아났어

 

그림자를 주워 입고 노을을 구경하는데

나는 왜 멀쩡한 걸까?

 

무서운 말도 장난처럼 찍찍 내뱉을 줄 아는데 의사는 맨날 망가질 거래 조롱하는 입술처럼 젖꼭지가 점점 더 삐뚤어질 거며 나에 관한 어떤 얘기도 꺼내지 않는다면 뒤집힌 물고기처럼

밤낮으로 불안에 시달릴 거래

 

혀를 쑥 내밀고 가로수에 매달려 지나가는 사람이나 깜짝 놀래키고 싶은데! 날개를 쫙 펼치고 찢어진 흉터처럼 날아다녀야지 시퍼런 가위처럼 살아있는 것들은 전부 오려내야지 목말라서 헐떡이는 사람을 목매고 싶게 만들어야지 켜놓은 가스불처럼 온 집안을 잿더미로 뒤덮어야지 앞만 보고 똑바로 걸어가도 삐뚤어지고

 

버텨야 할 중력이 내 인생을 흙탕물에 풍덩! 빠뜨리는데

 

더 추워지기 전에 나를 봉인하러 가야지 누가 베어간 콧대를 이어서 붙여야지 입은 왜 달린 건데? 거대한 감옥에 뚫려 있는 쪼글쪼글한 구멍이 무슨 소용인 건데? 갇혀 있던 소문만 새어나와 사방을 더럽히는데 수술대에 오르면 의사들은 링거 색이랑 오줌 색이랑 똑같다고 킬킬거리고 깨어나면 사람처럼 우스운 것들은 절대로 안 믿어야지! 겨울밤이 어두워져 사람이 사람을 닮아가는 줄도 모르고

 

번호표가 길어지는 병원 앞에서

 

회복해서 또 사는 게 무섭지도 않니? 알약은 어디서 녹고 있을까 눈을 떴는데도 난 아직 깨어날 줄 모르고 시체 냄새 나는 향수나 칙칙 뿌리고 놀러 가야지 아무하고나 사랑할 땐 흥청망청 뒤로 해야지 표정이 안 보이는 자세가 훨씬 아프고 재밌으니까 나보다 더 망가진 애들만 보면 심심하게 뒤가 간지러워서

 

너덜너덜한 웃음이나 뒤집어쓰고

다 같이 모여서 수다나 떨래?

 


 

물속에서

 


 

나는 쭉쭉 뻗어나갈 거야 해파리처럼 서너 토막 난 식물처럼

목소리가 길게 자라고 있어

 

혀가 잘려나간 불장난을 앨범 속에서 끄집어낸다 종교를 버리고 밑바닥으로 도망치는 건 어때?

 

때수건으로 머릿속을 밀다 찜질방 문을 열면

문어처럼 불어터진 여자가 다리 건너 한 명씩 사내들을 끌어안고 허벅지 살을 씹어댈지도 모르지

그 여자 발바닥에 침이라도 뱉으며

여편네야 밥은 언제 줄 거야? 냉장고 밑구멍 속에서 집어삼키는 뻣뻣한 치모

계집애야 그건 네 아빠나 좋아했던 청춘이지 미역줄기가 아니란다 목이라도 매달고 싶은 거니?

 

나는 가위질을 잘하고

사랑을 하고 싶지만

 

매일 밤 직장(直腸)에서 튀어나와 젖꼭지 빨아대는 뱀을

엄마에게 빼앗기고 말았지

 

(흉터투성이 우연이 깡패 같은 우연이 내 거웃에게 떼인 돈이나 받으러 온다면 덜 지루하려나?)

 

벌겋게 달아오른 강철 팬티를 벗어던지고 목욕탕 문을 나서는데 브래지어도 깜박하고 안 했는데

소용돌이 물살처럼

하필 네 자지가 털털거리는 오토바이가

불가마 장수탕 앞에서 뒤집어지는 신기루란

 

오 분 뒤로 뒷걸음치는 입술

오 분 전에 발생한 사고들은 나를 물귀신으로 만들고

 

어제도 그제도 한 달 전의 일도 오 분 앞에서 꼴까닥 자궁을 찢기고 말았잖아 (내 인생 흔적도 없이 달아나버린 보통명사들이 어때? 용수철을 심장에 박고 완급조절에 실패한 쾌감이지? 죽음보다 싱싱한 치욕이지? 몸밖으로 튕겨나간 너를 붙잡을 곳이 아무데도 없지? 억울해진 혀로 똥구멍을 긋고 달아나고 싶은데)

 

목소리는 가랑이를 벌린 채

우리에게 일용할 음부를 오르락내리락

 

(이제 그만 물속에서 슬그머니 놓친 척해줘)

 

양칫물 위에서 발버둥치는

옛 애인의 자지는 잘라먹었어야 했지

 

 

----------

박세랑 / 1990년 경남 진해에서 하나님의 러블리한 자녀로 태어났다.  2018문학동네신인상으로 시가 당선되어 등단.




 

   | 시 부문 심사 경위 |

 

   2018년 문학동네 신인상 시 부문에는 총 1,023명이 5,931편을 응모해왔다. 지난해에 비해 응모자는 160, 편수는 900편 가까이 증가한 수치였다. 응모자가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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