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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입

페이지 정보

작성자 서피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8건 조회 122회 작성일 18-10-11 08:49

본문

행복한 입



가방끈 짧아도 입담 하난
명문대 담장 부럽지 않은 동네 누이가 있어
한번 열었다 하면
좔좔 쏟아지는 수돗물에 온 동네가 흠뻑 젖기 일쑤였고
찬바람에 뒷산 가지의 잎들 다 떨어진 계절에도
동네 귀들이 한가롭지 않았던 것은
펄펄 살아 동네 팔방 돌아다니던 누이 입 덕이었는데
그런 누이가 뜬금없이 학벌 번듯한 집안으로
시집가던 날
동네 입들은 죽은 듯 침묵했으니
살아 있는 입에 보내는 따스한 응원이었다

누이의 소문은 한동안 듣지 못하다
이듬해 우연히 입을 보았다는 사람 말에 의하면
입은 옅은 매니큐어를 머금었으며
입꼬리는 간조름하게 모아져 있었는데
활짝 벌리는 모습은 도무지 보기 힘들고
거기다 손은 왜 또 한 번씩 가리는 것인지
아주 적응하기 민망한 노릇이었다 했으며
목소리도 귓바퀴에 닿을락 말락 한 것이
세상에 입이 달라져도
그렇게 쉽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인지
혀를 끌끌 차는 것이었는데

다시 누이를 만난 건 개구리 우는 어느 봄밤
동네 느티나무 평상이었다
시집가서 오 년 만에 온 친정
도무지 잠이 안 와 마실 나왔다고 말하는 입술에서
그만 알싸한 향내가 나고
근질근질 입 사이로 반가운 웃음이 번지는 것인데
누이의 사연은 수 천의 울음 속에서도
독보적으로 선명하였고
그날 밤 개골개골 살아있는 입들은 도무지
합창을 멈추지 않는 것이었으니
어쩌자고 저리 재미나게 우는 것인지,
누이도 울고 입술도 울고 둥실둥실 둥근달도 울고 내 귀도 덩달아
밤새 울고 말았던 것이었다


댓글목록

스펙트럼님의 댓글

스펙트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슬픈 사연이네요, 시인님.
어찌해야 그 누님이 다시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요??
어찌해야 시인님도 마을 사람들도 예전처럼 맑게 웃어 줄 수 있을까요?
모두다 사연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지만
그 누님의 사연은 마음을 아프게 하네요

암튼 시인님의 시는 어떤 시든 정겹고 아름다워요

오늘도 환한 하루 되세요

서피랑님의 댓글의 댓글

서피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너무 진지하게 읽어주셔서
좀 민망하네요, ^^;;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행복해지는 것 같습니다.
시와 함께 즐거운 날, 되시길요.^^

香湖김진수님의 댓글

香湖김진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문벌 있는 집에서 입다물고 살아야 했던 그 누님
아직 4년은 더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그렇게 입다물고 살아야
경칩날 개구리 입떨어지듯 입 떨어지겠네요
막 연락이 닿았네요
4년이 지나자 그 동네 시끄러워 못 살겠다고 마을 사람 다 이삿짐 싸 폐촌이 되었답니다요 ㅎㅎ
이 일을 어쩌면 좋데요?
괜한 오지랖입니다요

건강하시게 잘 지내시지요?

임기정님의 댓글

임기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가방끈이 짧아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그 자체가 행복 아닐까요
근질 근질한 입
다물고 있는내내 삶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으리란
산적 생각

라라리베님의 댓글

라라리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하루를 살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일텐데
많은 인내에 울 수도 없는 시간들
그렇지만 너도나도 지나온 시간들

어쩜 이렇게 잘 표현해 주셨는지
몇번을 읽어봅니다 감사합니다^^~

서피랑님의 댓글의 댓글

서피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래서,
라라리베님은 계속
시를 쓰야 한다는 말씀 ㅎㅎ

날씨가 갑자기 내려가네여, 감기조심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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