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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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386회 작성일 18-11-14 09:00본문
상록 유감 / 백록
우리 동네는 터줏대감격인 송松씨를 비롯하여 동冬씨 종棕씨 향香씨 녹綠씨들이 대세인데
이들은 늙어도 늙은 줄 모르는 평생 청춘인 족속들이다
간혹, 추워질수록 홀라당 벗어버리는 벌거숭이들
황량한 거리로 객기를 부리며 정신머리를 흘리고 한없이 나돌아댕기던 한때의
나와 같은 나裸씨들 듬성듬성 얼씬거린다
갈수록 흐릿해지는 각막이 더부살이로 빌붙은 후회의 눈살을 물어뜯는데
보면 볼수록 볼썽사납고 괜스레 낯 뜨겁지만
그 깊은 속내를 알고 나면 사실,
울긋불긋하던 제 살마저 다 살라버린 저들의 희생이 곧
허기진 계절에 양분을 보시하는 거룩한 심상이므로
오히려 부처님 전 오체투지로 큰절을 올려야 마땅치 않을까
다만, 요즘 따라 불쑥 예민해진 신경으로 불 쑤시듯 화륵 건드리는 화두가 하나 있다면
늘 푸르다 여긴 우리 조상의 혼과 같은 어느 씨족이 느닷없이 붉어진다는 것인데
천년만년 마냥 소낭이고 싶은 나의 소망을 찰나에 무너뜨리는 근심
할락산* 만큼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다들 꽃 지는 계절에 꿋꿋이 꽃 피우고 싶은 동씨들
내 심장 같은 혈기 잔뜩 웅크리고 있어
아직은 살 만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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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산의 제주방언
댓글목록
두무지님의 댓글
두무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주에서 삶은 모진 풍화 같은
시인님의 그려 내시는 시상이 남다릅니다
깊은 생각에 잠시 머무르며 풍습을 헤아려 봅니다.
건필과 평안을 빕니다.
김태운님의 댓글의 댓글
김태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울긋불긋하던 심상들이 다 벗어버리면 어떨까싶지만
아직 상록들이 곁에 있어 그나마 살만한 세상입니다
감사합니다
정석촌님의 댓글
정석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지난 했던 여름이 위대했다더니
오는 철은 얼마나 휘황찬란 할런지 지레 까무러질 지경입니다
상록이라시니 적이 안심되긴 합니다마는
계절에 변태에
귀뚜라미만 켰다 껐다 해봅니다
석촌
김태운님의 댓글의 댓글
김태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귀뚜라미가 시끄럽게 울 줄만 알았는데 따뜻하게도 해주는 군요
아무튼 고마운 놈입니다
요즘 몸값도 잘 나가더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