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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전용)

 

☆ 시마을 문학상은 미등단작가의 창작작품을 대상으로 엄정한 심사과정을 거쳐 매년말 선정, 발표됩니다


2006년 제 2회 시마을 문학상 수상작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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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2,738회 작성일 15-07-01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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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시마을 문학상(시부문) 심사평



추천작 전체로 볼 때 소재나 이미지, 주제 등이 기존 방식에 기댄 채 대부분 익숙한 것들이다. 습작기에 흔히 나타날 수 있는 모방의 한 단계가 이런 거라면, 그보다는 정면 돌파를 권하고 싶다. 사막을 건너는 고통을 기꺼이 맛볼 것. 춥고 어두운 암흑기를 기꺼이 참고 견딜 것. 이런 뒤에 찾아진 것이라면 조금쯤 서툴고 거칠어도 좋을 것이다.

11편의 작품 가운데 나름대로 거론할만하다고 여겨지는 작품 몇 편을 우선 골라봤다. 달수니의 「팽팽히 돌던 일상이 깨지다」외 1편. 정채운의 「어떤 해바라기」한병준의 「설거지 잘하는 男子 혹은 女子」최윤정의 「흉터」허영숙의 「집 한 채」등이다.

우선 2편이 본선에 올라온 달수니의 작품을 살펴보기로 한다.「식탁위의 고동하나」는 사소한 고동으로부터 우리네 인생살이까지의 진술을 끌어낸 것만 봐도 예사롭지는 않다. 그러나 가만히 따지고 보면 그만큼 허점도 많이 보인다. 3연과 마지막 연이 지나치게 설명으로 치우친 점이라든가 군데군데 감상이 끼여든 점. 이밖에 맞춤법을 무시한 것 등이 눈에 거슬린다. 시인의 특이한 정감이나 미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 부득불 사용하는 것을 ‘시적 자유’라 치더라도 제목의 띄어쓰기를 이런 식으로 무시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또 하나의 달수니 작품인「 팽팽히 돌던 일상이 깨지다」는 마지막까지 침착성을 잃지 않는다. ‘팽이와 한 남자’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가로수 옆에 쓰러져 있는 한 남자를 팽이로 치환해 낸 솜씨는 마침내 ‘하늘 팽이’(해)까지도 유감없이 돌려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대에 중심을 잃고 쓰러진 사람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양말 사이로 비집고 나온 문드러진 발톱은/그가 맞은 매의 이력이다” “탯줄을 끊고 나와 이 땅에 휙 던져지며 울음 울던” 등등 돋보이는 이미지를 통해 잘 형상화해냈다고 보여진다.

다음엔 이와 유사한 소재로 「어떤 해바라기」를 살펴보았다. “인도와 지하도 사이 꺾어진 관절” “그의 키는 늘 계단 아래에 있다” 는 진술로 미루어 그 잡초는 대단히 고단하고 힘겨운 존재다. “봄 가운데를 지날 때 잠시, 푸른 화색이 돌았을 뿐”이었던 잡초는 우루루 발길질 부려놓고 가는 무심한 보폭과 빛을 차단하는 경계의 턱 사이에서 기생하는 일조차 위태롭기 그지없는데, 여기서 ‘그’라는 말이 슬쩍 끼여들면서 잡초가 비로소 걸인으로 치환된다. 아무도 눈치를 못 챌 정도로 자연스럽게 탈바꿈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에 있어서 만큼은 그 재주가 크게 돋보이지 않는다. 지하도의 잡초와 걸인은 너무나도 쉽게 연상 지어지는 등식과도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잡초를 보여주는 솜씨는 친절하고 섬세했지만 그만큼의 감동과 여운을 끌어내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최윤정의 「흉터」를 살펴본다. 어릴 적 감나무를 가진 아이가 부러워 사다리를 밀어서 그 아이에게 상처를 만들어줬던 기억. 여승의 정수리에 난 상처를 보면서 “가을의 정수리/찢겨져 곧 잎들이 붉게 물들었”던 친구의 정수리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하는 친절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도 한 셈인데, “이제는 용서했다는 듯/부처님의 눈매를 닮아있네”라는 진술로 미루어 결국은 화자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거듭 읽을수록 여승의 흉터가 오히려 진정성을 방해하는 것은 왠지 모를 일이다.    

허영숙의 「집 한 채」1연은 신체적 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긴장미와 이미지의 재미도 제법 느껴진다. 2연은 신체검진을 통해 확인해보는 정신점검쯤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마지막 연이 그만 애매모호하다.  일테면 오래 방치해 둔 몸에 전원을 넣는 것을 뒷받침해줄 만한 진술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빈 벽에 걸릴 그림과 아랫목이 따뜻해질 수 있는, 발가락까지 피가 돌게 할만한 충분한 사유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했던 것이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나 싶다.

한병준의 시는 밝음과 어둠을 대비하는 솜씨가 좋다. 설거지하는 방식과 보육원 아이들 씻기는 일이 이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니. 한마디로 보육원 하면 어둡고 불행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낯설게 하기에 성공을 한 것이다. 경쾌하고 발랄하기까지 한 보법. 툭툭 차는 듯이 가볍게 나아가고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질량이 또한 들어있다. 그러나 작품 전체로 본다면 설명으로 기울어진 부분이 상당수 들어 있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운문이 가져야할 숙명적 과제가 긴장과 탄력이라고 여긴다면 이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

이상으로 다섯 분의 시를 놓고 다시 한번 꼼꼼하게 읽었다. 아무래도 달수니의「팽팽한 일상이 깨지다」가 마음을 잡아끌었다. 첫눈에 쏙 빨려든다는 말이 있듯이 이 시는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게 읽히기도 했다. 이미지의 생산과 조합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느껴졌으며, 텍스트를 떠올리기 위한 사유의 흔적도 깊이 느껴졌고, 시를 운영해나가는 솜씨가 이 정도라면 최우수작으로 뽑아도 좋겠다는 결론을 냈다. 수상자에게 큰 박수를 보내며, 그밖에 분들에게는 이번 기회가 한층 분발할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믿고 싶다. (심사평 : 한혜영)

                                                                                심사위원 : 한혜영, 박선희, 양현근
                      


<시부문 문학상 수상작>

팽팽히 돌던 일상이 깨지다
- 팽이와 한 남자

달수니


한낮,
가로수 옆에 오십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쓰러져 있다
양파껍질처럼 몸에서 빠져 나온 구두 한 짝 만이
주인의 대변인 마냥 이따금 툭 툭,쏘아대는 세상의 눈들을
흘기며 투덜댄다. 저 햇살은 정말 지독하군,
남자는 지난 밤 중심을 잃고 쓰러진 팽이다,
빛을 등지고 돌아누운 저 등허리
팽팽한 긴장으로 돌던 관성의 흔적이
꾸깃해진 옷자락에서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얼핏 드러나는 목 줄기의 터져 나올 것 같은 굵은 실밥과
구멍 난 양말사이를 비집고 나온 문드러진 발톱은  
그가 맞은 매의 이력이다  간당간당
남자의 손끝은 가로수의 뿌리에 닿아 있다.

그도 한때 신명나게 돌았을 것이다,
쉼 없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자 일년을 하루같이
시계바늘의 꽁무니를 쫒아 정신없이 돌았을 것이다
탯줄을 끊고 나와  이 땅에 휙 던져지며 울음 울던  
그날 이 후부터 그는 얼마나 많은 날들을 쓰러지고
다시 일어섰을까  돌고, 돌고, 또 돌았지만  지금 그를
안스럽게  쳐다보는  가로수처럼 근사한 뿌리한번
내리지 못하고 여기 쓰러져 있는 것이다  이제 누가,무엇이,
그를 일으켜 세울 것인가  아니,
어떤 힘으로 그는 다시 일어나 돌수 있을 것인가
지친 그도 딱 한번만 더,돌고 싶을 게다,
평생을 돌고 돌아야 하는  팽이의 생애가 그러하므로
궹한 마음 접으며 발걸음을 돌리려다 문득 하늘을 보니
뜨거운 팽이 하나, 헉헉 거리며 돌고 있다



경남 통영 출생
시마을 동인
시마을 2004.12월, 2005.6월 창작시부문 최우수작가
시마을 작품선집 <봄비 속의 작은 명상> 등 다수


2005년 시마을 문학상(산문부문) 심사평


  2005년 한 해 동안 ‘따듯한 세상 詩마을’에 투고된 작품들 중 매회 우수작으로 선정된 작품을 대상으로 다시 심사를 거쳐 1년간의 최우수작을 가려 뽑는 제2회 詩마을문학상 심사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은 모두 7편이었다.

  나름대로 글을 쓰고자 하는 의욕들이 보였고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힘도 보였고 표현력도 보였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사이버공간이란 특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언어의 구사 곧 표현의 적정성 및 언어사용의 적합성에서 보다 신중을 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이버 공간의 글도 오프라인과 같은 입장인데 이를 읽고 지나치는 것처럼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7편 중 다시 선별한 결과 최종으로 툇마루님의 <엄마의 뜰> 마음길님의 <비오는 날의 마음 한 자락> secreti님의 <별 헤는 밤> 등 3편으로 압축되었다.

  툇마루님의 <엄마의 뜰>은 구성력과 표현력에서 상당히 돋보인다. 제목도 무언가 있을 것 같다는 호기심을 창출하고 있으며 독자로 하여금 가슴을 열게 하는 마력을 내뿜는다. 특히 엄마의 우물과 할머니의 석류나무가 묘한 갈등의 대비를 보이면서 글의 긴장감을 끌고 가다가 엄마의 석류나무로 극적 전환을 하면서 화합과 동화를 추구한다.

‘엄마에게서 우물은 엄마 팔자타령의 동무 같은 것이었고 할머니에게서 석류나무는 삶의 동반자 같은 것,’

‘엄마는 우물을 좋아했고 할머니는 석류나무를 좋아했기 때문’

‘할머니가 쪽쪽 단물 빼 먹고 뱉어내던 씨앗은 표독한 할머니의 잔소리처럼 날카로워 엄마의 가슴에 박히곤 했다.’

‘엄마의 주장에 따라 주저함 없이 석류나무가 베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는 두꺼운 콘크리트가 덮여졌다.’

‘언제부턴가 엄마의 뜰에는 다시 석류나무 꽃이 피기 시작했다.’

‘엄마는 날마다 마음의 우물을 퍼 올려 그 석류나무를 키우고 가꿔서 할머니가 그토록 좋아하던 석류열매를 맺게 한 것이다.’

‘어느새 엄마자리를 차지한 며느리들 입에서도 엄마의 썩은 이빨 같은 석류 씨앗 툭툭 뱉어 내고 있었다.’

<엄마의 뜰>은 구성과 전개에서 보듯 ‘할머니-어머니-나와 며느리들’로 이어지는 3대의 이야기를 석류의 이미지로 ‘엄마의 뜰’이라는 삶의 너른 광광으로 이끌어 내어 오밀한 혈연의 따듯한 방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마음길님의 <비오는 날 마음 한 자락>은 아파트 2층에 살고 있는 작자가 같은 높이와 가까운 거리 곧 베란다 창가에서 만나는 단풍나무, 소나무, 잣나무들과 나누는 삶의 이야기다. 소녀적 감상으로 깊이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심경을 편안하게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모진 태풍을 견디지 못하고 꺾여나간 가지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것조차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수용의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가지치기란 이름으로 잘려나간 가지들과 대조되며 작자의 심정이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의 주제가 명확해 지지 않는 것은 제목부터 추상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수필은 구체적인 감동으로 읽는 이에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구성이 필요한 것이다. 설계도를 작성하여 치밀한 구성으로 작품화 할 때 작품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secreti님의 <별 헤는 밤>은 삶에 쫒기고 살다 어쩌다 보게 된 별을 보고 삶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별에 대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에서 별로 나아간 것이 없는 더도 덜도 없는 평이함이다.

  나만의 별, 나만이 아는 별, 별을 통해 아무도 갖지 못한 오직 나만의 추억이거나 사건 같은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수필의 소재는 일상적인 것들이 될 수 있지만 그 일상적인 것이 바로 수필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문학화의 어려움이다. <별 헤는 밤>이란 제목에서 먼저 연상되는 것은 바로 윤동주의 시요 별이다. 그렇다면 독자는 이미 한 발짝 더 앞서 제목만 보고도 윤동주의 시와 별에 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읽어보니 자신의 예측과는 전혀 다르게 작품 속의 또 다른 별 헤는 밤이 있게 되는 그 별 헤는 밤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밤길의 심부름과 그 밤 별과의 만남에서 그걸 끌어낼 수 있어도 좋을 것이다. 글의 맛은 재미요 극적이고 감동적이면서도 가슴에 저며드는 무엇 같은, 그런 글맛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이상 세편의 수필 중 툇마루님의 <엄마의 뜰>을 장원작으로 올린다. 그리고 <별헤는 밤>과 <비오는 날 마음 한 자락>을 그 다음으로 정한다. 취미로 글을 쓰는 것은 즐거움이지만 정작 글을 쓰고자 해서 글을 쓸 때에는 뼈를 깎는 아픔일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새로운 작은 우주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우연히 좋은 글이 씌어질 수는 없다. 노력과 쏟는 열정만큼, 그리고 사랑하고 고뇌하는 깊이만큼 좋은 글이 태어난다. 수상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더욱 정진하여 좋은 수필가로 큰 발전 이루기 바란다.  (심사평 : 최원현)

                                                                     심사위원 : 최원현, 박광록, 홍이선



<산문부문 문학상 수상작>

엄마의 뜰

툇마루


  내가 살던 고향 집 우물가에는 석류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석류나무가 언제부터 그 곳에 있었는지 정확히 모른다. 다만 소작농이었던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물려준 초가삼간이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 할아버지의 아버지, 즉 증조부 때부터 살아온 집이었다고 하니 그 집의 역사와 같이 하는 늙은 나무이었을 것이다. 키는 작았지만 굵은 둥치로 보아 적잖은 그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내 눈에 비친 할머니와 엄마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딱히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한다 해도 흔히들 고부간의 사이가 그렇듯 엄마가 하는 일을 줄곧 못마땅해 하는 할머니에게서 비롯되는 것도 같았고, 가난한 형편에 층층시하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엄마의 불만에서 비롯되는 것도 같았다. 할머니와 엄마가 사소한 시비로 말다툼이 일 때면 나는 어느 편에 서지도 못한 채 그 기류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며 우물가로 갔다. 그 옆에 점잖이 서 있던 석류나무에 두레박 가득 퍼 올린 우물물을 퍼붓곤 했다. 석류나무에게는 애꿎은 짓이었다. 그런 내 행동의 표출은 할머니와 엄마, 누구에게도 기울지 않은 어린 나의 정당한 중립적 자세 같은 것이었다. 엄마에게서 우물은 엄마 팔자타령의 동무 같은 것이었고 할머니에게서 석류나무는 삶의 동반자 같은 것이었다고  제법 그럴싸하게 믿은 어린 나의 자위적 판단에서였다. 그것은 단순했다 엄마는 우물을 좋아했고 할머니는 석류나무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언제고 화가 치밀면 우물물을 퍼 올려 벌컥벌컥 마셨고, 할머니는 쩍 벌어진 석류 알갱이를 한 줌 가득 훑어 넣어 합죽한 입으로 우물거리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으니까. 우물물맛은 시원했고 석류의 맛은 달았던 것이다.

  석류는 가을이 되면 벌건 속을 드러내고 익었다. 알이 굵고 실했다. 할머니는 그 석류를 즐겨 먹었다. 치아가 다 빠져버린 입을 합죽거리며 단맛을 훔치고는 씨앗을 톡톡 뱉어 내었다. 엄마는 그 모습을 보기 싫어했다. 할머니의 석류나무에 대한 애정은 집착에 가까웠다. 그럴수록 엄마는 석류나무가 못마땅했다. 그 석류 열매는 엄마를 타박하는 할머니의 심술궂은 입매와 꼭 닮았었다. 할머니가 쪽쪽 단물 빼 먹고 뱉어내던 씨앗은 표독한 할머니의 잔소리처럼 날카로워 엄마의 가슴에 박히곤 했다. 그래서 엄마는 석류를 먹지 않았다. 어쩌면 마음 깊이 벼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우물물의 자양분을 축내는 저 석류나무를 베어버리고 말 것이라고. 시집살이 고되어 할머니가 미워질수록 그 기회를 더욱 노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엄마도 할머니 살아계실 때는 어찌하지 못하더니 기회를 맞았다. 세월을 거스를 수 없는 법, 세상사 이치가 그러하듯 엄마보다 한 세대를 앞질러 사신 할머니가 세상을 뜨시고 시대도 변해가면서 자연스럽게 와 닿은 기회였다. 작은 농촌 마을도 수도 개설 사업이 한창인 때가 되었다. 엄마의 주장에 따라 주저함 없이 석류나무가 베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는 두꺼운 콘크리트가 덮여졌다. 말끔하게 정리된 우물가에는 수도가 설치되었고 꼭지만 돌리면 산언저리 저수지에서 이어온 배수관을 통해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장성한 자식들인 우리는 하나같이 그 우물을 메우자고 주장했다. 더 이상 필요가치를 상실한 우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엄마는 우물을 메우지 않았다. 그 속에서 사는 집 지킴이(일종의 수호신)로 잉어가 산다고 믿는 엄마의 고집에서였다. 가끔 우물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잉어인지 붕어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팔뚝만한 물고기 한 마리가 유유히 헤엄치는 것을 본 일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자식들의 뜻을 만류할 엄마의 핑계거리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할머니 가시고 그 석류나무를 베어낸 지 십년이 훌쩍 지난 어느 순간 할머니의 그 나이가 된 엄마에게서 우물은 곧 할머니였는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석류나무에서 느끼던 삶의 애환이 그러했듯 엄마는 우물에 할머니가 살아온 생과의 동질감을 묻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자식들이 자라 새 가정을 만들고 저마다의 인생을 챙길수록 뒷방 늙은이 자리로 밀려나는 엄마는 곧 할머니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엄마에게서의 우물도 수명을 다하는 날이 왔다. 농업용수용 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어 이주의 벽에 부딪힌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수몰의 범위를 벗어난 땅을 찾아 번듯한 집을 지어 이사를 하고 보니 할머니가 누워계시는 선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아늑한 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엄마의 등산은 그 때부터 시작 되었으니 벌써 일곱 해째다. 말이 등산이지 그 곳에서 할머니를 만나는 것이었다. 간밤 꿈자리가 시끄럽거나 사나웠다면 할머니 산소를 찾아 살아생전 좋아하시던 담배 한 개비 얹어 놓고 다 타들어 갈 때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다녀오는 날은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 가볍고 일이 잘 풀린다는 엄마의 믿음이었다. 어린 시절 앙숙으로 보이던 할머니와의 관계를 기억하는 내겐 참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에게서 할머니의 존재는 어떠한 것일까. 그 세대의 여인네의 한이듯, 더 멀리 한 인간으로서의 운명이 그러하듯 할머니 세상을 뜨시고 많은 세월 흘러 다시 그 자리에 할머니로 선 엄마에게서 할머니는 비로소 말로 표현해 낼 수 없는 깊은 공감대의 우물을 만들었던 것이다.

  언제부턴가 엄마의 뜰에는 다시 석류나무 꽃이 피기 시작했다. 그 꽃은 심기가 잔뜩 뒤틀린  당신 며느리의 젊은 주둥이 같이 생긴 꽃받침을 달았고 빛깔은 너무나 고와서 서러웠던 엄마의 젊음을 닮은 선홍색 꽃이었다. 그 꽃잎 하나, 둘 떨어진 자리에는 어김없이 오래전 우물가에 있던 그 석류와 똑 같은 열매가 열렸고 때가 되면 속을 쩍 벌려 뽀얀 알갱이를 드러냈다. 아, 그렇다. 엄마는 날마다 마음의 우물을 퍼 올려 그 석류나무를 키우고 가꿔서 할머니가 그토록 좋아하던 석류열매를 맺게한 것이다.

  작년 가을 추석이었다. 어느새 늘어난 엄마의 핏줄들이 모였다. 탐스럽게 열린 석류를 보고 모두들 탐을 낸다. 엄마는 그 중 잘 익은 몇 개를 따와 거실바닥에 내려놓았다. 질펀하게 둘러 앉아 고만고만한 손주들에게 시범을 보인다. 한입 성큼 베어 물어 단물을 쪽쪽 빨아먹고 뽀얀 씨앗은 뱉어 내라고. 그 모양새가 재미있어 보였던지 녀석들은 하나같이 한입  베어 물고 할머니를 따라하더니 입안을 감싸고도는 달콤함에 연신 씨앗을 뱉어내기 바빠졌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며느리들도 틈새를 비집고 끼어들었다. 그 옛날 할머니가 그랬듯이 엄마의 입안에서는 뽀얀 씨앗이 튀어나왔다. 어느새 엄마자리를 차지한 며느리들 입에서도 엄마의 썩은 이빨 같은 석류 씨앗 툭툭 뱉어 내고 있었다.



본명 : 박경희
시마을에서 필명 ‘툇마루’로 활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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