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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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1건 조회 505회 작성일 18-07-13 00:05본문
성,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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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길따라님의 댓글
꿈길따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명심보감 계선편 중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하늘이 복으로써 갚으며,
선하지 못한 자에게는
하늘이 이를 화로써 갚느니라.”]
[인과응보] 나 [사필귀정]과
일맥상통한 사자 성어적인
보편적으로 일상에 휘 젖고
다니는 이야기 우리네 얘기
심 중에 복 받을 언어의 씨앗
심겨 져 싹 나고 잎이나 꽃이
활짝 피고 핍진한 후의 열매
[식물을 바다 위에 던져라
던진것 훗날 도로 찾으리라]
성경말씀처럼 그리 산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이련만
우린 뭔가에 홀려서 살다가
제 정신이지 않을 때 많기에
문제를 달고 사는 건 아닌지
늘 반성하는 맘 갖게 하는 시
우리 모두 돌아보게 합니다
힐링님의 댓글
힐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속과 성을 정교하게 파고들어
한 두름으로 엮어내어 이렇게 걸어두니
속에 속한 우리는 언제나 벗어나지 못하고
성에 속하고자 하나 너무 먼 길이라서
다가서지 못한 것을 이렇게 꿰뚫어
속과 성을 한 손에 쥐어 주니 비로소
세상 안과 밖을 보는 눈이 생깁니다.
활연 시인님!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양을 치거나 목탁새를 키우거나
세상엔 사람을 위한 믿음이 많지요. 전쟁 중에서도
종교전쟁은 끝이 없고 지독하고
인류 역사 중 가장 많은 살인을 범하고
그러나, 신성하지요.
삶을 바른 길로 이끌고자 하는데 그 이면에는
서로 배척하고 적대시 하고,
한국의 양치기기 일부는 경제성장 모드를 그대로 답습해
붉은 등을 지붕에 거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나라를 만들었고요.
산속이나 시내나 청아한 목탁 소리가 그치지 않지만,
글쎄요. 여전히 선과 악의 반대급부가,
우리 곁에는 있지요.
신성이 위선이 될 때는 상대적으로 더, 가혹한 잣대가 생기지요.
우리는 결코 물질로 구원 받을 수 없을 것인데,
정치, 사회, 경제, 여타 인프라가 돈의 위력으로 작동하는
것도 사실이고, 강남의 대형교회는
극우적 성향으로 민중보다는 벼슬아치를 양산하거나 아부하기 바쁜
곳도 있지요. 가난하고 서러운 자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부와 권력의 편에서 앵무새가 되는 경우도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런 현상은 지극히 작은 일부의 일이지요.
이런 인식에서 일반화의 오류는 생긴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의 경우가, 전체를 모독하거나 오염시키는 사례는
많은 것 같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관념의 집단화,
군중 심리, 마녀 사냥 등등과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시는, 미문을 위한 미문이 아니라,
생과 삶에 대한 발의이며, 관찰이고 의미를 형상화하는
작업일 수 있는데, 더러는 현학이거나 지적교만이거나
언어를 가지고 춤추는 경우도 있겠지요.
저 또한 그런 상황에서 자유롭거나 예외는 아닌 듯합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시는,
진실성과 연계하고 사람에게 즐거운 소리, 개인들의
고뇌 깊은 사유의 결과물이고 잉여물이 아니라
필요충분을 위한 언어적 노력이겠지요.
그러니까 시는 자본의 논리와는 좀 거리가 있고
그 힘에 눌린 자들을 위로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돈이 세상을 말할 때, 잘 정제된 정금의 시로
오히려 잘못된 길을 저지하고 좌절하거나 왜곡된,
모퉁이에 깃들어 중심이 되지는 못하는 상황을 위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쓴다라고 하면, 그 행위가 타자에게 건너가
악덕일지 선행일지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탐구하고
또 다른 경우의 수도, 놓친 감각이나 감성도
환기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니까, 종교가 그 선의에서 밀려났을 때 서글퍼지듯이
시가 수단화되어서 우리를 들썩이게 하고 선악호오의 수단이
된다면, 그것도 좀 생각해볼 문제라 여겨집니다.
시를 왜 쓰는가 자주 묻게 되는 나이기를 바라며
아직은 산문의 형식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좀 웃자는 뜻으로 올렸습니다.
좋은 말씀 주신, 꿈길따라님, 힐링님
고맙습니다.
麥諶님의 댓글
麥諶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색, 다른 성, 스러운 글
공감으로 읽습니다
예전 몸소의 행동거지로
요즘의 생각거지로
명심보감과 함께
대단한 필력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과연, 살아있는 시마을의
귀한 인연입니다
감사합니다
최경순s님의 댓글
최경순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활연 시인님의 논리 정연한 필력에 늘,
놀란 토끼의 귀처럼 쫑긋합니다
필력을 이해하려
눈알은 씨뻘겋게 상기된 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성, 스러움에 찬사를 보냅니다
공감합니다
활연이란 갱 속에서 금광을 캐고 또 캐내어
배우고 또 배우고 아주 많이 배우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혜량하소서^^
잡초인님의 댓글
잡초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역시 활은 빗나가지 안나봅니다. 저는 시인님이 활대에 걸어서 켕기는 줄에 걸려 등 부러질것 같은 멋진 시에서 침만 흘리고 갑니다
한뉘님의 댓글
한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활연 시인님의 시를 대하는것이
인상적인 경험이다^^
이 말뿐 놓을 말이 없습니다
빈약한 제 토지에 넣을 토지 한줌
가져갈 뿐입니다ㅎ
추영탑님의 댓글
추영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절에는 가도 백팔 배는 해 본적이 없습니다
학창시절 친구따라 몇 번 교회를 갔는데, 앞으로 점점 다가오는
잠자리 채가 두려웠습니다.
주머니를 아무리 만져봐도 돈은 없고, 해서 그때 바로 그만 두었습니다.
두드리면 열리는 문이 몇이나 될까?
성스러움에 분탕질은 몇 번 해보았으나, 세 평 방에서
회고록에 눈두덩이 탱탱 부어서
타의로만 남 앞에 나서는 일보다는 조금 성스럽지 않을까? 생각을 한참 해 봅니다. ㅎㅎ *^^.
책벌레정민기09님의 댓글
책벌레정민기09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인생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합니다.
삶이 녹아있는 좋은 시,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임기정님의 댓글
임기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호랏
눈 씨뻘거케 읽었다 다시 올라가 또 읽었습니다
이러면
이러시면
또 읽었습니다
모니터가 흔들릴때까지
오마낫 하면서
애구 애구 하면서
맛나게 읽었습니다
활연이 성 잘 읽었습니다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농담에 다녀가신 분들 고맙습니다.
한 마디씩 나누면 이곳은 훨씬
즐거워집니다.
그것이 시를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일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