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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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운영꽃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409회 작성일 18-11-02 00:02본문
한밤 중 원두막에 비린 풋콩냄새 떠돈다. 달빛보다 어둠이 더 소란한 밤이었다.
차곡차곡 두텁게 쌓인 어둠의 퇴적층 속
원두막 하나 질식하고 있었다.
외밭에서 오이들 일어서거나 벌거벗은 몸 길게 뻗고 있었다.
달빛을 두렵게 하는 것은, 오이들 우툴두툴한 퍼런 이빨이었다.
오랑캐꽃 멀리 돌아눕는 소리.
누워도 감은 눈으로
외발 너머 졸졸 개울물 소리.
그 너머 벌판에는,
엎드린 채 죽어 버린 몸뚱이들 배가 가스로 부풀어 터지는 소리.
펑 !
펑 !
펑 !
먼 산 모롱이 빽빽한 적송숲 달밤 도와 험준 고개 넘노라면
고개 하나마다
이 드러낸 호랑이며 살쾡이며 늑대가 떼 지어 마중 나왔다는 전설 대신에,
산더미 되어 그 속에서 헤어진 팔 다리 조각조각 짜맞추느라
그리운 얼굴도 낯선 얼굴도 한 데 섞여 빨갛게 부풀어 올라 다시 파란 솜털 세우고 일그러진 미소 사방으로 홀씨처럼 날린다는.
숨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았다. 나 또한 숨 죽여 귀 기울이고 있었다.
벌판 가득 넘실거리는 팡이꽃들 위로
붉은 팔 다리 조각들 달빛 속에서 떠올랐다 가라앉았다가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 있다 다시 보아도
누구 하나 자세 바꾸지 않았다.
비린 풋콩 냄새 때문인지 여름밤은 유달리 적막했다.
** 학생 시절 선생님이 해 주셨던 육이오경험담을 시로 써 보았습니다. 원두막에 앉아 있으면
전쟁으로 죽은 시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는데 그 시체들 배가 가스로 부풀어 펑하고 터지는 소리 들려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읍내로 가려면 시체들이 쌓여 있는 길을 지날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에는 시체는 안 무섭고 오히려 살아 있는 사람들이 무서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댓글목록
프라인님의 댓글
프라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살아있는 이빨들...참 무섭죠
전쟁은 끝났어도 아직도 남아있는 할로윈 이빨들...
자운영꽃부리님의 댓글의 댓글
자운영꽃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저는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선생님의 그 떨리던 목소리는 기억합니다. 수십년은 지난 일이었을 텐데 그래도 목소리는 여전히 떨리시더군요. 죽음의 그로테스크하고 아름다운 이미지 정도로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