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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 소리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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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김영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2,278회 작성일 17-09-16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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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고 소리 / 김영채

                                                          

    소리가 들려왔다. 낯익은 소리를 따라 계곡으로 빠져들어 간다. 소리는 계곡을 벗어나더니 넓은 들판으로 이어졌다. 꿈속에서 깬 나는 소리, 장고 소리를 좇아가고 있었다. 유년시절 내가 살던 신태인읍은 이삼 년마다 초가을 쯤 되면, 장날에 맞춰 장터에서는 사오일 동안 난장을 튼다난장을 트는 날이면 읍내는 온통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꽃술 달린 고깔을 쓰고 삼색 무늬 띠를 두른 농악대는 꽹과리를 치는 상쇠를 선두로, 태평소, , 장고, 소고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깃발을 앞세워 읍내를 한 바퀴 돌라치면, 아이들, 어른 할 것 없이 온통 흥분으로 발칵 뒤집히는 북새통을 이뤘다.        

    그날 장터 한가운데에 마련된 난장 터, 동그란 모래판에서 농악놀이가 시작됐다. 어른, 아이, 노인 할 것 없이 꽉 들어찼다. 아이들은 앞자리에 둘러앉아 싱글벙글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열 두발 상모돌리기 재주를 가장 보고 싶어했다.

   그런데 장고를 치는 소녀가 너무 예쁘게 보였다. 고깔을 쓴 얼굴로 살며시 웃음 짓는 모습으로 혼자 장고를 치면서 사뿐사뿐 발놀림으로 나오다가 가락에 맞춰 뒤로 손놀림과 함께 어깨선이 흥겹게 움직였다. 장고채로 장고양편을 빠른 손놀림으로 가락에 맞춰 치다가는, 좌우로, 뒤로 휘돌아 숨 가쁘게 움직이는 가 싶더니, 둥근 모래판을 장고와 함께 빙글빙글 도는 소녀의 율동에 넋을 놓았다. 그 가냘픈 몸으로 장단에 맞춰 장고를 치는 멋진 가락과 날렵히 춤추는 소녀는, 마치 선녀와 같은 예쁜 꽃이었다.    

    아침 등굣길이었다. 농악대가 올 때마다 묵곤 하는 동네 여관에서 장고잡이 소녀를 슬쩍 엿보고 싶었다. 뭘 하나? 하는 호기심과 함께 예쁜 얼굴도 다시 보고 싶었다. 큰 방문 틈새로 방안을 엿보려고 할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어제 보았던! 그 예쁜 소녀였다. 둥그런 눈동자는 해맑게 빛났다. 그리고 생긋 웃는 얼굴로 달래듯 말했다.  

어린 학생이 이런 데 오면 안 돼? 시방 학교 가야제!”    

    나도 모르게 급히 도망치듯 나오는데, 안에서 소희야!” 하고 부르는 어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 소녀 이름이 소희’ 초등학교 오학년인 나보다 삼 사세 많아 보였다. 나는 누나 같은소희이름을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부르면서 가슴 속에 꽃 한 송이를 간직한 채 학교로 바삐 갔다. 오일이 지나자 난장은 막을 내렸다. 농악대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농악대가 어우러져 흥겹게 울리는 소리는 소희 누나와 함께 멀리 떠나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읍내에서 철길로 팔십 여리나 먼 익산시 고등학교로 매일 증기열차를 타고 통학하던 때였다. 아침마다 이른 시간이면 산허리를 돌아 동진강 철교를 건너온 증기열차는 잿빛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묵직한 굉음과 함께 기적 소리를 드높게 울렸다. 나는 플랫폼으로 도착한 통학 열차에 급히 몸을 싣고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익산역에 도착하여 등교하곤 하였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가는 가을, 소슬바람은 옷깃을 여미듯 불어왔다. 하굣길에는 늘 역 개찰구를 거쳐 플랫폼으로 나갔다. 오늘따라 개찰구 앞에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대합실도 사람들이 혼잡스럽게 붐볐다. 잠시 기다릴 양으로 긴 나무 의자에 앉았다. 그때 내 앞에 비친 여자는 스무살 정도 돼 보였고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맛자락은 허름했다. 손수건을 둘둘 감은 손으로 힘없이 벽을 두드리더니 히죽 웃었다. 약간 실성한 여자 같았다. 그런데 그녀가 스러지듯 주저앉아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에 나도 무심결에 쳐다보았다. 둥그런 눈동자에서 비치는 해맑은 눈빛은 내 시선을 멈추게 했다. 언뜻 오래전에 만난 것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자 개찰 안내방송이 들려와 통학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녀에 대한 생각이 뇌리에서 쉽게 떠나지 않았다. 그럼 그 어릴 적 만난 농악대 장고잡이 소희 누나와 닮았단 말인가아니다! 잘 못 보았을 것이다. 그 누나는 이젠 고수가 되어 전국을 순회하며 멋지게 장고를 치는 장고잡이가 되었을 것이다. 나름대로 믿음을 갖고 이런 생각에 도달하니 마음이 홀가분하였다. 한편 내 가슴 속에 잠자던 한 송이 꽃, 희미하게 떠오르는 소희 누나가 보고 싶어졌다.  

    여느 때처럼 하굣길은 익산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왠지 실성한 여자가 궁금했다. 가을햇살 드리운 역전에는 통학생, 어른, 노인, 봇짐 장사꾼까지 빙 둘러 웅성거렸다. 언뜻 구성진 장고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미심쩍으면서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예감을 느꼈다. 그 장소에 다가섰을 때 어떤 환희 같은 벼락이 내리치는 전율은 온몸으로 스쳐지나갔다. 장고를 치고 있는 사람은 분명 그 실성한 여자였다. 놀랍기도 하고 한편 장고를 어디서 구했을까? 과연 장고를 잘 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의문은 쉽게 풀리기 시작했다. 시골 동네 어른들이 마을 농악놀이 때 쓸려고 사 온 장고였다. 열차를 기다리며 쉬는 사이, 아마 그 장고를 치게 된 것 같았다. 

   장고 소리는 가락에 맞춰 절제와 힘이 느껴졌. 비록 허름한 검은 치마였지만 날렵히 발놀림할 때마다 치마폭은 고이 날렸다. 그녀는 능숙한 솜씨로 장고를 다뤘다가늘고, 느린 가락으로 장고를 치면서 가벼운 발놀림을 하는가 하면, 움직이는 몸짓은 흔들리는 버들잎같이 곡선을 그렸다. 휘모리장단으로 장고를 신명 나게 치는 소리는 구경꾼들 혼을 사로잡았다.

    사로잡힌 혼은 절로 흥이 솟아올라 장고 소리 가락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며 휘어지는 춤을 연신 춘다. 장고를 치는 그녀는 다시 태어난 소희 누나, 내 가슴 속에 오래도록 간직한 한 송이 꽃, 이제는 찬 서리 속에서 피어난 들국화였다. 구경꾼들은 좋아서 손뼉을 치기도 하고 큰소리로 외치며 흥겨운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그녀는 내 시선과 마주치자, 갑자기 모자를 달라고 했다. 나는 당황하여 줄 수 없다고 손짓을 했으나 막무가내로 모자를 낚아채듯 빼앗아 웃더니 고깔 쓰듯 깊게 눌러썼다. 다시 느린 가락으로 장고를 치기 시작했다. 장고 소리는 낮은 울림에서 큰 울림으로 역전광장에 퍼져나갔다.

    그때 열차 출발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점차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나도 하는 수 없이 모자와 장고 소리를 뒤로 남겨둔 채 급히 귀갓길 통학 열차에 몸을 실었다 증기열차는 기적 소리를 두세 번 울리다가 무겁게 움직였다잿빛 연기를 연거푸 뿜어내며 가을 벼 이삭이 누렇게 익은 들녘을 달려가고 있다. 김제역을 지나자 멀리 지평선으로 이어진 김제만경 평야, 드넓은 들판은 노을빛 아래 일렁이는 누런 벼 이삭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다. 광활하고 비옥한 대지가 황금빛 바닷물결처럼 출렁거렸다. 잠시 차창 밖을 바라보며 나는 깊은 회상에 빠져들었다. 넓은 평야에서 풍년을 알리는 농악대 소리가 은은히 들려오고 있었

    소희 누나는 지금도 장고를 두드리고 있을까? 땀방울 적시며 황홀경에 도취되어 장고를 두드리는 그녀는, 정녕 실성한 여자가 아니었다. 장고 소리는 그녀의 혼을 다시 불러오게 했고, 장고가락은 그녀의 영혼을 정화하여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진통의 소리였다. 더욱 폭포수처럼 몰아치는 휘모리장단 소리는 잠든 영혼을 일깨우는 울림이었다. 그때 붉은 노을빛 구름 사이로 조개 무늬 조각구름들이 분홍빛으로 흘러넘쳤다. 바로 오색 고깔을 쓰고 적, , 청띠를 두른 가냘픈 소녀가 장고를 두드리는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러다가 성숙한 처녀로 검은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은 그녀는 한 맺힌 영혼을 달래주는 무희 같은 춤사위로 날렵하게 장고를 두드렸다. 느리다가 쉬는 듯 빠른 율동적인 몸짓은 서편 하늘가로 선명히 떠올랐다그리고 두드리는 그녀의 장고 소리는 점점 가늘어지며 지평선이 열리는 노을빛 속으로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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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시몬이님의 댓글

profile_image 시몬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나의 학교다닐때의 그시절이 떠올랐고,  5학년인 손주가 생각났습니다.
 위와 같을 때 나는 어떻게, 손주는 어떻게 했을까도
그려보았습니다.

김영채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영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몬이 작가님

감사합니다.
아마 유년시절을 지나 청년시절엔 맑디 맑은 영혼이 내 안에서 웃고있어나 봅니다.
세파에 시달리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순수한 영혼을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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