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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와 중봉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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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金離律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3건 조회 2,435회 작성일 15-07-07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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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와 중봉선생

 


캘리포니아 산 오렌지 한 망을 샀다. 탱글탱글 샛노란 과육을 우물거리다 문득, [오륀지]라고 발음해야 오렌지를 먹을 자격이 있다던 어느 정객의 말이 생각났다. 자유무역협정이 체결 발효되면서 세계화에 대한 욕구가 급증하고 있는 요즘, 이른바 스펙 쌓기의 중심에 어학능력이 최우선이라며 영어공부 열풍이 한창이다. 하지만 그 필요성은 수긍하면서도 가슴 한편이 씁쓸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새 선택과목으로 밀려난 국사의 자리를 영어가 차지하면서부터, 우리는 단군의 건국이념 천. 지. 인, 을 잊고 사는 것 같다. 하늘의 뜻을 헤아리고, 이 땅과 사람 사이 도리를 깨우쳐 더불어 살라고 밝혀 하신 말씀 "같이의 가치”가 옛날이야기쯤으로 치부되는 것 같다.

 

유아 영어학원에 다니는 여섯 살짜리 조카, 우리나라 말도 아직 어눌한 작은 입속 혀를 굴려 ‘하이! 하와이유 아임 파인‘둥글고 시큼한 말을 쏟아낸다. 날이 갈수록 서로 다른 조상인 것처럼 말의 시작이 다르니 어느 날 제 할아버지보고 손가락 까딱거리면서’너! 이리와 봐 ‘할 것도 같아, 어린 오륀지 앙증맞은 입이 마냥 기특하지만은 않다.

 

영어 조기교육의 타당성은 인정한다. 하지만 여타 방법론에 대해서는 되짚어봐야 할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내 나라말을 제대로 배워 쓰게 하는 것이 바른 교육의 핵심이며, 백년지대계의 가장 으뜸인 뿌리의 정신을 가르치는 일 아닐까 싶다. 세계화가 반드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륀지]라는 당위성으로 바느질한 합리주의의 겉옷만 걸친 듯하지 말자는 것이다. 무조건 내 것만 고수 하자는 것도 물론 아니다. 나라말에 깃든 조상의 얼을 먼저 가르치는 것이 옳은 순서일 것 같다.

 

한 민족으로 구성된 나라는 역사의 숨결 속을 흐르는 뭇 선조들의 유구한 기상이 나와 공유하며 호흡하는 것이다. 한겨레라는 말 속엔 네가 아닌 이웃이 있고, 내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 우리가 바라보던 같은 질감의 하늘이 있었고, 추운 가난을 충분히 덮어줄 情이라는 두터운 이불이 있었다. 그 발자취를 더듬는 것에서부터 세계라는 더 큰 무대를 향하는 당당한 첫걸음이 시작되는 것이며 세계 속의 한국인이라는 파란 새싹이 움트는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내가 사는 지역 김포에 중봉 조헌 선생을 기리는 우저서원을 방문했었다. 조선 중종 39년 김포 감정동에서 출생한 선생은 선조 25년까지 학자 및 문인이며, 호는 중봉, 도원, 후율 등이다. ‘후율後栗’이라는 호에서 알 수 있듯 율곡 이이 선생의 뒤를 이어 이기론 학설의 계보를 잇는 유림의 태산북두셨지만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이우, 김경백, 전승업 선생 등과 투합하여 최초로 일어난 의병장이셨던 선생, 금산전투에서 칠백의병과 함께 장렬히 전사하신 선생의 민본에 근거한 학문과 사상은 현실 참여적 실천 정신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서원을 가득 채운 절의와 강직을 기웃거리다 죽음도 마다치 않은 순국의 충정, 나라 사랑의 뿌리를 보았다. 해마다 하얀 뭉치 꽃을 피우는 목련도, 느티나무의 몇백 년 수령도 모두 굳건한 뿌리에서 연유한 것이며 후세를 혜량하듯 뿌리에서 뻗은 나무가 마당 가득 푸른 이파리를 펼쳐 아름드리 초록 그늘을 만드는 것이다.

 

먼 곳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사는 지역 내 수많은 유적지에 넋으로 휘도는 선조들의 혜안과, 세상을 미리 내다보는 통찰의 지혜를 학습하는 것이 오렌지의 미국식 발음보다 더 중요할 것이다. 모래밭에선 국가의 동량이 자랄 수 없다. 먼저 내 근본을 아는 것이 국가기반을 다지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는 것을 단단한 주춧돌이 말해주고 있다. 긴 긴 풍상에 접질리면서도 옛터의 외곽을 지키는 거목의 견고한 침묵, 가장 위대한 웅변을 조용히 경청했다.

 

북변 삼거리를 돌아 나오는 길에 선생의 동상이 보인다. “김포에 얼이 서다”는 헌정 시비, 왜적의 침입을 선견지명 하셨던 서릿발 같은 일갈이 교차로에 구부정하게 서 있는 내 망무두서茫無頭緖한 정신을 후려친다. 그 바람의 죽비는 선생의 얼이다.

 

오렌지를 먹어 본 지가 얼마나 오랜지! 농을 하며, 오륀지 그 두꺼운 껍질을 한 꺼풀 벗기고도 우물거리는 입속의 이가 시리다. 주말엔 아들 녀석과 함께 당차고 현기 서린 중봉 선생의 노구를 뵈러 북변동 산책을 나서야겠다.

 

 

추천1

댓글목록

박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박용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소설, 수필엔 김부희 시인님이 1빠 하셨군요.
구홈에서 소설 수필을 자주 올렸었는데 새방이
생기고 나니 기분이 더욱 새롭습니다.
좋은 글 정독하고 갑니다. 김부희 시인님.

金富會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박용 화백님...수필방에서 뵙습니다...
새로 이사하신 곳에서....하고 싶은 일..자류롭게 마음 껏 펼치는
삶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건강하시구요..^^

景山유영훈님의 댓글

profile_image 景山유영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김부회 선생 좋은글 잘 보았읍니다
중봉 조헌  의병장의 우저서원을 가보고 싶네요
그간 안녕 하시지요
안부 놓고 갑니다^^

金富會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유영훈 선생님....
건안하시온지요? 노구에도 불구하고 문학에 대한 열정..잘 보고 있습니다.
수필방에서 뵈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저도 안부 드립니다.
선생님...건강하세요

대기와 환경님의 댓글

profile_image 대기와 환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김부회 시인님!..
어린 시절 교육이 미치는 영향은 자라나는 우리후대에게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먼 옛날 초등시절 합창대회 나가고
특활 활동을 통해 새로운 것을 접했던 기억들...
이젠 전문화가 되어버리고 입시 위주로 바뀐 모든 교육과정이
너무 생소하고 안타깝습니다.
세계화 글로벌화로 우리 것조차 잘 알지 못하고
잊어버리고 놓치는 교육과정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같은 마음으로 공감하며 읽고 갑니다.
좋은 시 잘 읽고 보고 있습니다.

金富會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렇습니다.
다 좋은데...우리의 것을 잃고 사는 것..
망각하고 사는 것은....역사를 버리는 것이라는 생각.....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石木님의 댓글

profile_image 石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미국에 가보면 거지들도 영어를 유창하게 한다."
고등학교 때 영어 선생님이 농담으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영어를 유창하게 한다는 게 대단한 능력이고 자산인 것 같이 우리가 생각하지만
세계 무대에 나가면 별로 눈에 띌 일도 아니지요.
말씀하신 대로 한국인은 우선 한국인다운 자질과 품성을 갖추는 데에 충실해야 하겠지요.
국가가 유지되려면 CNN 방송 같은 걸 거침없이 동시통역할 수 있는 정도의
특수전문인력이 필요하지만, 전국민이 다 그렇게 될 필요는 없는 일이겠지요.
좋은 말씀 마음에 새기고 갑니다.

金富會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고등학교를 저와 같은 곳을 나오셨나봅니다.^^
저두 선생님에게 그 말씀을 들었는데.....
한국인 이라면. 먼저 한국인이 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 참 좋은 말인데.........
그깟 영어 몇 줄이 뭐 그리 중요한지.......
공감 감사합니다.

몽진2님의 댓글

profile_image 몽진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김부회 선생님의 말씀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저도 중학교 떄는
국사에 미친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국사 과목이 선택이라니
참으로 걱정입니다. 좀 좋아지겠지요.
좋은글 잘일고 많은 생각하고 갑니다.

金富會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몽진 2님
역사의식이 없는 국민은 국민의 자격이 없다는 말이 문득 생각납니다.
작금 시대는,
존경이 없는 사회, 인물이 없는 사회 아닌가 싶습니다.
그 모든 것이
허상을 쫒는 우리들의 자화상 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공감 감사합니다.

NaCl 박성춘님의 댓글

profile_image NaCl 박성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번주 교회 도서관에서 국사책 두 권을 빌려다 보고 있습니다.
학창시절 국사에 소홀히 한 탓에 너무 국사에 대해 모르는 것 같아
드디어 맘 먹고 늦게나마 공부하려 합니다.

오렌지를 먹은지도 얼마나 오랜지(?) 그 맛이 시큼 달콤하다는 것 밖에 모르겠고
미국에 오래 살아도 오륀지 발음이 숸 찮아 말귀 못 알아듣는 과일 장수도 있고
이제 한국 들어가면 간첩보다 더 간첩 같을거고...
아무튼 수필방 첫 단추 제대로 다셨습니다. ^^

金富會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박성춘님...우리 알게 된지가 벌써.......몇 년이 지났습니다.
수잔은 내 친구...수필 잘 읽었습니다...
댓글이 써지지 않아 못 달았는데....
이곳에 대신 댓글 드립니다.
수필방에서 좋은 글 서로 많이 나누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시구요...

NaCl 박성춘님의 댓글

profile_image NaCl 박성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도 처음에 댓글을 쓰는데 잘 되질 않았는데
브라우져를 internet explore로 하니까
되더라구요.
김부회 시인님도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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