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진다 > 여행정보/여행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여행정보/여행기

  • HOME
  • 지혜의 향기
  • 여행정보/여행기

  ☞ 舊. 여행지안내

     

여행정보 및 여행기를 올리는 공간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moondrea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76회 작성일 16-07-05 13:56

본문

(체코, 독일 여행 감상문)
제목: 꿈은 이루어진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꿈이 없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할까. 특히 나이가 젊을수록 큰 꿈을 가져야 한다. 비록 나이가 들어도 죽을 때까지 새로운 꿈을 갖는 것은 젊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나를 생동감 넘치는 삶으로 유도해 주는 망망대해의 등대와 같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굳게 확신하면서 사는 삶이야말로 행복한 인생이 아닐까. 나의 이번 여행이 바로 그러 하기에 나는 감상문의 제목을 ‘꿈은 이루어진다’고 정했다.

독일의 드레스덴과 체코의 프라하를 염두에 두고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다는 꿈을 가진 게 바로 1974년과 1993년이었다. 1974년 나는 독일인 소설가 하인리히 뵐을 그의 1949년도 처녀작 ‘Der Zug war punktlich' (‘휴가병 열차‘)를 통해 만날 수 있었다. 이 소설을 통해 드레스덴이라는 독일 남부 지방의 도시를 알게 되었고 전쟁의 비참함을 재인식하게 되었다. 1917년에 태어나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 시절에 2차 세계대전을 몸소 겪은 작가는 이 소설에서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인간성 상실의 심각함을 휴가를 마치고 전선으로 복귀하는 한 병사의 심리적 고뇌를 통하여 잘 묘사하고 있다. 드레스덴은 작센주의 主都로서 엘베강의 피렌체라고 불릴 정도로 중세시대부터 남부지방의 문화예술과 정치 및 상공업의 중심역할을 했으나 1945년 8월 미국과 영국 연합군의 강력한 폭격으로 완전 초토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1990년 통독 전까지만 해도 공산 동독에 속하여 과거의 전성기 회복이 쉽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또한 체코의 프라하 역시 1993년 우연히 알게 된 체코의 모 육군대령과의 만남에서 언젠가 한 번 방문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여건이 충족되어야 함은 당연지사. 그 여건이 이번에 조성되었던 탓에 나는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 결과 드레스덴방문은 42년, 그리고 프라하 방문은 23년 만이다.

2016년 6월 21일 아침 일찍 기상하여 나는 아내와 함께 가방을 챙기는 등 여행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데  당초 예정된 프라하 행 체코 여객기가 결항되고 대체 비행기를 준비 중이라는 작은 아들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오랜 기간 꿈꾸었던 여행이 무산되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생겨났다.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서둘러 집을 나서서 인천국제 공항에 도착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예정된 체코 비행기는 결항이었고 대한항공이 대신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전화위복이 된 셈이지만 우리 부부에게만은 항공권을 발급받는 과정에서 약간의 혼란을 겪어야만 했었다. 아랍 에미리트의 에티하드 항공사의 누적된 마일리지로 체코항공 예약을 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결항만 아니었다면 문제될 게 없지만 대한항공으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항공사 간에 우리의 예약사항이 제대로 인계되지 않았던 것이다. 체코항공의 실수가 분명한 이상 만약 제대로 이행이 되지 않을 경우 클레임을 걸 각오까지 생각했으나 잘못을 인정한 항공사 직원의 적극적인 조치로 비행기에 오르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다만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고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던 것이다. 꿈이 깨어질 뻔했으니 말이다. 두바이에서 근무 중인 큰 아들이 마련해준 효도관광의 기회를 잃을 뻔했다.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에 몸을 실은 우리는 중국 내륙의 상공을 거쳐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 흑해를 지나 이륙 후 12시간 만에 프라하 국제공항 제1터미널에 도착하였다. 현지 시간으로 오후 7시경이지만 서머타임 덕분에 대낮처럼 밝았다.

공항 입국절차가 의외로 매우 간소하고 사람도 많이 붐비지 않아 짐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우연찮게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여행사에서 주관하는 동유럽 단체 여행을 함께 한다고 했다. 우리는 자유 여행인지라 스스로 알아서 버스를 타고 목적지인 호텔까지 가야만 했다. 심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해외 경험이 적지 않은 아내의 판단과 가이드는 적중했다. 호텔까지 오는데 막힘이 없었다. 마음속에서 ‘아내는 길잡이, 나는 글 잡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청명한 가을 날씨처럼 프라하의 공기는 시원하고 상쾌했다. 도심으로 가까워 올수록 차량들과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서울처럼 복잡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프라하의 중앙역인 흘라브니역 근처에서 버스를 내린 우리는 지도를 보고 걸어서 호텔까지 갔다. 첫 걸음이라 좌왕우왕할 줄 알았지만 잘 표시되고 정비된 거리인지라 큰 어려움 없이 호텔을 찾았다. 2년 전 그리스 아테네에서  느꼈던 살벌한 분위기를 이곳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파란 하늘에 오렌지색의 지붕이 잘 조화되어 보였다. 우리가 이번에 예약한 호텔은 음식을 직접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아파트형 호텔이다. 규모는 작지만 매우 쓸모 있었다. 내부 시설도 깨끗했고 안내하는 사람도 매우 친절하였다. 마음에 쏙 들었다. 짐을 풀고 나니 긴장이 조금 가라앉는다. 기내식의 느끼함을 달래기 위해 칼칼한 라면으로 저녁식사를 해결했다. 여행 기간 내내 아내는 한국에서 가지고온 먹을거리로 음식을 마련했다. 현지에서 구입한 삼겹살과 상추를 쌈장에 싸서 먹으니 꿀맛이었다. 이번 여행이 특히  즐겁고 행복했던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음식이었다.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으니 힘이 날 수 밖에 없다. 프라하의 첫날밤은 고요하고 孤高하였다. 마침 음력 보름달이 맑은 밤하늘에 둥그렇게 떠올라 창문을 비추니 슈베르트의 월광 소나타가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도시 중심지에서 이렇게 밝은 보름달을 볼 수 있다니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공기가 서울보다 좋은가 보다. 우리를 환하게 환영해 주는 것 같아 정말 마음이 기뻤다.
 
행복한 첫날밤을 보내고 다음 날부터 가벼운 마음과 몸으로 우리는 본격적인 프라하 관광에 나섰다. 가이드북을 참조하면서 첫 걸음부터 신중하게 처신했다. 스마트폰의 위력을 또 다시 체감하였다. 구글의 안내에 따라 길을 찾고 건물을 찾는데 너무 쉬웠다. 막힘이 없었다. 神보다 나았다. 아내와 나는 철저히 두 발로만 걸어 다녔다. 교외 지역으로 가는 것 외에 프라하 시내를 다닐 땐 한 번도 시내버스나 트램 또는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았다.  이 원칙은 작년 미국을 여행할 때부터 지켜졌다. 주로 볼만한 곳은 블타바 강을 중심으로 프라하 구도시가 형성되어 있어 발로 걸어야만 제대로 관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안내책자가 추천하는 명소를 다 찾아 다녔다. 체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였던 카를 4세가 집권했을 때 최고의 전성기였기에 그의 이름이 붙은 카를 4세 다리와 동상을 비롯하여 현재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고 있는 체코 최고의 상징물인 프라하성, 영화 아마데우스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스트라호프 수도원, 로레타 성당, 발트슈테인 궁전, 파리의 에펠탑을 본떠서 만든 페트르진 공원의 전망대에 올라가 바라본 프라하 시내의 광경, 바츨라프 국왕의 동상과 1968년 구 쏘련에 대항하여 자유민주주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프라하의 봄을 외치면서 큰 시위가 벌어졌던  바츨라프 광장, 프라하를 상징하는 구시청사 건물과 독특한 디자인으로 설계되어 정시각이 되면 12사도의 인형이 종소리와 함께 나타나는 광경을 가까이서 구경하려고 모여드는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천문시계, 가장 규모가 큰 성 비투스 대성당, 가장 오래 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 이르지 성당, 성 미클라쉬 성당, 로제타 성당, 연금술사들이 살았다는 황금소로,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한 때 요새이자 화약 저장고로 사용되었던 화약탑, 돌종의 집, 체코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인으로 15세기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보다 1세기나 앞서 종교개혁을 주장했던 인물인 얀후스 동상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곳을 부지런히 돌아 다녔다. 그 날 하루 동안 걸은 걸음수가 3만보를 넘었다. 약 18km. 어마어마한 거리다. 해가 늬웃늬웃 지는 석양에 카를 다리에서 바라보는 프라하성은 장관이었다. 조명이 켜지기 시작하면 더 장관이다. 수많은 관광객이 그 풍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 좁은 다리를 꽉 메운다. 거리의 악사들이 아름다운 음률을 선사하고 그 음악에 맞추어 흥이 많은 관광객들이 춤을 춘다. 이곳에 온 모든 관광객들이 다 모인 것 같다. 그 중에서도 한국 관광객들이 유난히 많다. 그렇게 돌아 다녔지만 지루하거나 피곤함을 느끼지 못한 것은 평소 나와 아내의 체력관리에 기인하는 것이며 프라하의 아름다움과 매력 때문일 것이다. 도시 전체가 한 덩어리의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강과 언덕이 잘 조화를 이룬다. 블타바 강은 폭이 넓지 않았으나 굽이굽이 흐르는 물길 때문에 그 주변에 있는 건물들이 조용히 출렁거리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강에서 좌우로 멀어질수록 오르막 언덕이었다. 비가 내리면 모든 물이 강으로 다 모이게 되어있다. 한강처럼 푸른 빛깔이 아니고 흙탕물처럼 보이는 것은 물속에 있는 특수한 플랑크톤 같은 것 때문이라고 아내가 설명할 때마다 나는 고개를 꺼떡인다. 모든 시가지에 있는 건물은 대부분 중세시대에 만들어졌으며 로마네스크 양식이 대부분이다. 유럽의 대부분 도시가 다 그렇듯이 프라하도 고대 노예사회로부터 시작하여 절대왕정과 중세봉건제도를 거치면서 문명과 문화의 꽃을 피웠다. 그러나 그것이 잠시 멈춘 것은 양차 세계대전과 냉전 때였다. 민주화를 거세게 외치면서 발발했던 프라하의 봄은 결국 쏘련의 붕괴로 이어지면서 자유민주주의가 싹트기 시작하였고 이제는 완전히 자본주의화 되어 관광대국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물가도 비교적 싸고 친절한 국민성 때문에 살고 싶은 욕망이 불현듯 일어나곤 했다. 23년 전에 만났던 체코 육군대령의 자화자찬이 결코 허황이 아니었음을 실감하였다.

방문 3일째 되는 날 23일, 프라하에서 2시간 30분 정도 버스로 이동하여 간 남쪽의 조그만 도시 체스키크루믈로프는 그 자체가 문화유적지였다. 물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우리의 안동 하회마을처럼 S자 모양의 블타바 강이 마을 전체를 휘감아 돌고 있다. 강을 중심으로 언덕에 펼쳐진 빨간 지붕의 성과 성당 그리고 일반주택들의 풍경은 나를 중세시대로 이끌고 온 느낌이다. 그 아름다움에 시간 가는 줄도, 피곤한 줄도 모르고 바라만 보았다. 보헤미아의 성 중 프라하 성 다음으로 큰 체스키크루믈로프 성은 13세기 중엽 대지주였던 비트코프가 고딕 양식으로 지었으나 14-17세기 초 이곳을 지배했던 로젬베르크 가문이 르네상스 스타일로 증개축 했다. 성 내부에는 4개의 정원과 큰 공원, 무도회장, 바로크 극장, 예배당 등 40 여개에 달하는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왕실 정원에서 벤치에 앉아 점심 식사를 하면서 휴식을 즐겼다. 성 주변의 조그만 골목에는 보헤미아 전통 물품들이 관광객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유속이 비교적 빠른 강에서는 보트를 즐기는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파란 하늘과 푸른 나무 그리고 붉은 색의 지붕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무리 보아도 지루한 줄 모르는 하루였다.

4일 째 되는 날 24일, 나는 체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였다는 카를 4세의 보물창고인 카를슈테인 성을 찾았다. 프라하의 중앙역인 흘브라니 역에서 기차를 타고 약 5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이 성은 험준한 산을 배경으로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어진 곳이다. 기차역에서 내려 길을 걷다가 계곡을 따라 오르막길을 올라야 성문에 다다를 수 있다. 14세기 독일에서 황제 대관식을 가진 카를 4세는 그가 소유한 왕관 등과 같은 소중한 보물을 잃어버릴까봐 전전긍긍하던 차에 이곳에 성을 짓기로 하였다. 1348년에 시작해 1367년 완성했다고 하나 미적인 아름다움보다 우선 견고하고 튼튼하게 그리고 빨리 서두르라는 지시에 의거, 짓다 보니 끝마무리가 엉성해 보인 것이 눈에 띄었다. 황제의 집무실 내부 방안의 가운데 기둥이 삐뚤어진 게 있었고 창문의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것도 내 눈에 띄었다. 보물 창고답게 외부의 도적들이 쉽게 침입하지 못하도록 미로가 많았으며 출입문과 창문도 보통보다 작게 만들었고 황제가 앉는 좌석도 햇볕을 등지게 하여 그의 얼굴 표정이 신하들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배열하였다. 내부는 총 3개 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은 저택이고 우물을 지나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2층에 황제의 알현실이 있고 3층의 성 카타리나 예배당은 보석들로 치장되어 있는데 황제는 이곳에서 개인적인 용무도 보고 기도도 드렸다고 하며 황제 이외에는 출입을 금하기도 했다고 한다. 침실이 있는 방에는 십자가의 예수상과 각종 성물들이 그의 침대를 지켜주는 것 같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가 무한한 물욕에 집착하고 있었다고 생각되어지는 것 같은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며, 과연 그가 이 나라의 위대한 군주였던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초상화를 찬찬히 살펴보니 그의 얼굴에는 욕심이 두덕두덕 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성군 세종대왕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6월 하순이지만 점심시간을 전후하여 온도가 급상승하였다. 성 방문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그늘 진 벤치에 앉아 아침에 싸온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고 있던 중, 아침에 이곳으로 오던 열차 안에서 우연히 만났던 초등학생들이 우리를 보고 ‘차우’라고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지나는 게 아닌가. 나도 반가운 표정으로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어느 새 그들과 친구가 되었던 것이다. 이게 바로 외교다. 예정보다 빨리 성 방문이 끝남에 따라 1시간 일찍 열차를 타고 오후 3시경에 프라하에 도착했다. 너무 더웠다. 호텔로 돌아와서 샤워를 시원하게 하고 푹 쉬었다. 저녁 식사를 일찍 끝내고 시내 야경을 위해 호텔을 나섰다. 야향목의 향기가 바스텔로프 광장의 거리를 가득 메웠다. 식당 앞 테라스에는 저녁식사를 즐기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해가 지고 밤이 되니 분위기가 달라진다. 우리에게 밤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밤이 주는 에로틱한 분위기에 그 날의 여독을 푼다. 블타바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다리에서 산책을 즐기는 사람, 배를 타고 야경을 순회하는 사람, 빛으로 장식되어 은은한 얼굴을 한 성과 성당 등의 밤 분위기에 젖은 사람들, 그리고 광장을 꽉 메운 인간 시장. 이곳이야말로 소박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닐까.

다음 날인 25일, 쿠트나호라로 가기 위해 흘브라니 역에 도착하여 예약된 열차에 승차하여 아무 자리나 앉았다가 좌석 주인이 나타나는 바람에 앉았던 자리를 떠나는 무안함을 맛보았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열차 칸에는 손님들이 많이 붐볐다. 선 채로 약 50 여 분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은의 왕국이라 불린 쿠트나호라 역이었다. 13세기 후반 어느 날, 수도사가 포도밭을 갈다가 발견한 은광으로 일약 마을의 운명이 하루아침에 바뀌게 되어 은의 왕국으로 불리어 졌다고 한다. 이로 인해 엄청난 부와 권력을 얻은 쿠트나호라는 프라하에 뒤지지 않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물들을 짓기 시작했고 중세에는 프라하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로 번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은이 고갈되고 30년 전쟁이 계속되면서 점점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역에서 내려서 오른 쪽으로 가다가 왼 쪽으로 접어들어 20 여 분간 가다 보니 성 마리아 성당이 높은 첨탑을 자랑하면서 보이기 시작한다. 그 성당 맞은편으로 20 여 미터 들어가면 해골사원이 나타나는데 4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해골을 이용해 예배당을 장식한 사원이다. 출입문을 들어서자 수백기의 공동묘지가 나타나 섬뜩하였지만 그보다 더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 것은 예배당 안에 있는 해골 장식품들이다. 수많은 해골과 뼈들로 구성된 3미터 높이의 피라미드형 탑, 천정에 걸려 있는 2.4미터의 해골 샹들리에, 인골로 만든 종, 사방 구석에 높이 쌓아 올린 해골총 등이 으스스하게 느껴지지만 자세히 보면 누가 이렇게 섬세한 예술작품을 만들었을까 깨닫게 된다. 이렇게 된 배경은 14-15세기 초에 창궐한 흑사병과 후스 전쟁으로 희생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이곳에 매장되어 더 이상 시신을 안치할 수 없게 되자 16세기 초  어느 시력 장애를 앓고 있는 수도사가 뼈로 장식한 납골당을 만든 데에 기인한다고 한다. 예배당 내부를 둘러보면서 죽음에 대해 한 번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오늘날처럼 바동거리면서 살아가는 인생의 무상함을 맛보았다. 그 날 새벽 꿈자리가 사납더니 바로 꿈땜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해골사원을 나와 쿠트나호라의 중앙광장 이정표를 따라 걸었다. 약 2.5km 걸어가면 성 바르바라 성당과 블라슈스키 드부르 궁전을 만날 수 있다. 멀리서 보이는 시커멓고 뾰족한 쌍둥이 첨탑을 바라보고 시내 주택가를 걸어갔다. 인적이 드문 도시라 조용하였고 간혹 눈에 띄는 아파트 베란다에 늘린 세탁물들을 보니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걷는 발아래 풀섶에는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목표가 가까워 오자 단체 여행객들의 모습이 눈에 띄고 사람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보헤미아 전통 복장을 한 남녀노소의 사람들이 제법 많이 성 주변을 바쁘게 오고 가기에 물어보니 축제기간이라 준비를 한단다. 게 중엔 장군의 복장을 한 사람도 있고 기마병, 장사치, 성주, 고관부인, 하녀, 농사꾼, 수도사 등 성직자의 복장을 한 모습 등 중세시대의 다양한 직업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두꺼운 복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먼저 들른 곳은 성 바르바라 성당인데 체코의 후기 고딕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로서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고 쿠트나호라의 최대 관광코스다. 14세기 전성기 때 프라하 성의 성 비투스 성당과 견줄만할 정도로 크게 지었는데 1388년에 착공해 14년 만에 완공되었다. 성당 내부에는 광부들의 수호성인인 성 바르바라를 모시고 있고, 고딕 양식의 성모 마리아상, 네오고딕 양식의 제단, 바로크 양식의 파이프 오르간 등을 볼 수 있으며 벽에는 어린 예수를 목덜미에 앉힌 어느 농부의 그림과 이 성당을 짓는데 큰 역할을 한 광부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 다른 성당과 차별된다. 성당 내부의 여러 장식품과 성물을 사진 찍고 있는데 누군가 나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기에 돌아보았더니 처음 보는 외국인이 손짓으로 카메라 셔트를 눌러 줄 테니 아내와 함께 제단 앞에 서라는 게 아닌가. 처음엔 내가 뭐 잘 못을 저지른 줄 알았었다. 친절하게도 그는 내 휴대폰으로 우리 부부의 모습을 렌즈에 담아 주었다. 성당을 나와 블라슈스키 드부르 궁전의 겉모습을 둘러보았다. 14세기 초에 궁전 안에 은화 주조소를 설치하여 엄청난 돈을 벌어 들였다고 하지만 과도한 노동 탓으로 건강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내부는 가이드가 있어야만 입장이 가능하여 겉모습만 둘러보았다. 토요일 축제라는 뜻밖의 횡재를 만나 중세 보헤미아인들의 삶과 문화를 간접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곳을 나와 어느 단체 여행객들을 따라 가보았더니 커다란 원형으로 된 우물이 있었다. 이곳 역시 중세 시대 당시 공동 우물터였다고 하는데 최근에 배수관을 설치했는지 꼭지를 털자마자 차가운 물이 힘차게 흘러 나와 잠시 더위를 식혔다. 점심식사 자리를 물색하다가 화장실을 찾았으나 잘 보이지 않아 헤맸다.

유럽 여행에서 가장 황당한 것은 생리현상을 풀어야 할 여건이 너무 좋지 않은 것이다. WC도 잘 눈에 띄지 않는데다가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일정한 돈을 내야만 볼일을 볼 수 있다는 게 우리의 상식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화장실 천국이다. 때로는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돈을 내고 볼 일 보게 하는 나라의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왔을 땐 응당의 돈을 지불하도록 말이다. 정말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그야말로 解憂가 잘 되지 않을 때에는 답답할 때가 많다. 겨우 화장실을 찾아서 볼일을 보고 어제처럼 광장의 그늘 진 벤치로 가서 앉아 샌드위치로 점심을 대신했다. 오후가 되면서 온도가 급상승하였다. 도착한 역까지 걸어서 갔다. 그늘이 많지 않아 약간은 지친 상태였지만 이 또한 여행의 일미라 생각하고 견뎠다. 프라하로 돌아가는 열차가 결항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역무원이 안내하는 대로 이곳에서 한 코스 떨어진 코린 이라는 곳에서 프라하 행 열차를 갈아탔다. 가끔씩 이런 일이 있는 모양이다. 아침 열차 때 자리가 없어서 고생했던 기억 때문인지 제대로 된 기차를 타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면서 갈아탄 열차는 다행히 훌륭한 설비를 갖춘 것이었다. 에어컨도 잘 나오고 화장실도 깨끗했다. 열차안의 화장실만큼은 무료인지라 가급적 자주 이용하였다. 프라하에 도착하니 소나기가 내렸다. 아침 기상예보도 맞아 떨어졌다. 더운 열기를 많이 식혀주어 다행이었다. 저녁에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맥주와 치즈를 안주로 삼아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 마침 비도 내려 술을 마시는데 안성마춤이었다.

프라하 마지막 밤을 잘 보내고 떠나는 날 아침을 맞았다. 새벽 5시경 잠에서 깨었더니 한국에 있는 작은 아들로부터 카톡 메시지가 와 있어서 확인했더니 오늘 출발 예정인 프라하 발 체코 비행기 역시 결항되어 대한항공편으로 대체되었고 시간도 당초보다 2시간 정도 늦추어졌다는 내용이었다. 그 순간, 아내의 입에서 ‘드레스덴을 가보자’는 소리가 튀어 나왔고 급하게 열차시간을 알아봐 달라고 작은 아들에게 메시지를 띄웠다. 스마트폰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였다. 한 두 시간 사이에 우리는 예정에 없었던 독일 드레스덴 열차에 몸을 실었다. 물론 요금은 평소 사전 예매보다 훨씬 비쌌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내 마음 속에 꿈꾸어 왔던 드레스덴을 못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에 바로 결정하였다. 이런 걸 두고 독일어로 브리츠 Britz(번개)라고 하던가. 그야말로 전격전(Britz Krieg)같은 결정을 했다. 독일에서 그들의 전술을 사용하다니 의외였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바로 결정하고 바로 열차를 잡아타고 드레스덴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 45분. 프라하로 돌아가기 위해 이곳을 떠나는 열차 시각은 오후 1시8분. 2시간 이상 남짓 체류하는 동안, 드레스덴 시가지를 겉만 훑기로 마음먹고 엘베 강 근처와 츠빙거 궁전, 프라우엔 성당, 역대 군주들의 벽화, 대성당, 엘베 강을 가로 지르는 아우구스투스 다리, 오페라 하우스, 레지던츠 궁 등 가이드북에 나온 곳은 다 둘러보았다. 체코와 폴란드 국경에 인접해 있는 드레스덴은 독일의 피렌체로 불릴 정도로 화려한 건축물과 예술과 문화의 도시로 17-18세기에 그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의 종말을 알리는 미영 연합군의 융단폭격에 도시의 80% 이상이 완전히 파괴되어 초토화되었고 옛 동독 시절에는 복구를 못하다가 통독 후 대대적인 복구 작업을 실시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돌아 온 셈이다. 내가 생도 시절에 들었던 드레스덴의 암울했던 모습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폭격 당시의 흔적들은 그대로 남아 있어 후세들에게 전쟁 후유증의 교훈을 던져 주고 있다. 도시 복구 작업을 하면서 그들은 파괴된 돌 한 조각 나무 부스러기 하나도 버리지 않고 원상을 회복하는데 최대한 사용했다고 한다. 프라우엔 교회의 경우만 보더라도 시커먼 돌기둥과 새로 지은 돌기둥이 잘 어울리게 복구되었다. 드레스덴 시민들은 교회 재건을 위해 무너진 교회의 잔해물들에 번호를 매겨 보관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시커멓게 그을린 것은 폭격 당시의 화염에 의한 것이라고 하니 이들의 역사 인식이 얼마나 철저한 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나쁜 기억의 역사라 할지라도 후대에 교훈이 된다면 그냥 놔두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작년에 미국 뉴욕 맨하턴에 있는 그라운드 제로를 방문했을 때의 추억이 다시 떠올랐다. 전쟁과 평화는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뼈 속 깊이 사무치도록 느껴야 전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평화를 원하거든 반드시 전쟁을 생각해야 한다. 평화는 그저 주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의 드레스덴 방문이었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래서 百聞不如一見이라 했던가. 당초 계획에 없던 드레스덴 전격 방문으로 나는 43년 전에 꿈꾸었던 소망을 이루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점심도 잊은 채 바쁜 일정을 보내고 프라하로 돌아오는 열차에 몸을 실었더니 열차가 만원이었다. 좌석 예약을 하지 않았더라면 고생은 불을 보듯 뻔했다. 국경을 사이에 두고 독일과 체코의 사람 살아가는 모습은 많이 비교되었다. 부자와 빈자를 각각 보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가 만일 통일 된다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오가는 외국인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국경을 넘나 들었지만 여권을 보자는 검사는 없고 독일 지역에서는 독일 검표원이, 체코 지역에서는 체코 검표원이 열차표만을 검표했다. 열차의 구조는 6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과 바깥 통로로 되어 있는데 방학을 맞은 학생들의 배낭여행 탓인지 매우 비좁았다. 우리처럼 미리 좌석 예약이 되어 있지 않은 경우엔 아무나 빈자리를 앉을 수 있지만 예약자가 나타나면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어제 쿠트나호라로 갈 때 겪었던 좋지 않은 경험이 머리에 떠올랐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아내와 나는 이미 유러피언이 다 되었다. 이제부터는 어디를 가더라도 막힘없이 여행을 할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내년에는 아예 한두 달 장기간 예정으로 유로레일을 이용하여 전 유럽을 한 번 여행해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프라하의 중앙역인 흘브라니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 40분경. 곧바로 호텔을 향해 걸었다. 오르막길이지만 눈에 익은 거리여서 가깝게 여겨졌다. 주머니를 살펴보니 이 나라 화폐가 좀 남아 있기에 인근 마트에 가서 가진 액수만큼 물건을 사서 호텔로 돌아 왔다. 아침에 체크아웃 할 때 맡겼던 가방을 다시 찾아 짐을 다시 꾸렸고 점심밥으로 싸간 김 묻힌 밥을 그제야 마음 놓고 먹어 치웠다. 시장이 반찬이라더니 맛있었다. 친절한 호텔 안내인의 전송을 받으며 호텔을 나서서 다시 흘브라니 역 근처까지 왔더니 마침 공항으로 가는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공항 까지 약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짐을 부치고 좌석권을 받았더니 예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대한항공 1등급 좌석이었다. 퍼스트 클래스. 나 같은 범부는 생애에 단 한 번이라도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은 일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잘 못한 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두근거렸다. 촌놈 같은 행동이 나올까 조심스럽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해볼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그냥 덤덤하게 자연스럽게 태도를 취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였다. 대우가 달랐다. 탑승할 때까지 고급 라운지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샤워도 가능하고 마실 거리와 먹을거리를 마음껏 들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비행기 탑승도 빠르다. 좌석은 누워서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식사는 고급 와인과 치즈 그리고 메인 디시 등 최고로 좋은 서비스를 받았다. 돈이 좋긴 좋다. 이 정도 좌석을 차지하려면 이코노믹보다 대 여섯 배 돈을 지불해야 하니 말이다. 항공사에 다니는 어느 사람이 이렇게 말한 것이 생각났다. 비행기가 움직이는 원동력은 바로 퍼스트 클라스를 애용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온다고.

운이 좋았던 것인지 큰 아들의 효심에 하늘이 감동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정말 뜻하지 않은 행복감과 편안함으로 12시간 비행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일시는 6월 27일 오후 2시 30분경이었다. 1등석에 앉으니 짐 찾는 것도 가장 빠르다. 너무나 편하게 여행하여 기분이 매우 좋았다. 서울로 들어오는 길은 너무 복잡하였다. 프라하는 이곳에 비하면 한적한 시골 같다. 드레스덴과 프라하에 대한 나의 오랜 꿈이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큰 아들의 공이 크고 여행 기간 중 적절하게 정보를 제공해준 작은 아들의 공도 내칠 수 없다. 이게 바로 가족의 정이 아닌가 싶다. 이런 기회를 만들어준 아들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이런 이벤트가 있었기에 백수의 한가로움을 달래기 위한 글쓰기 연습이 있어서 좋았다. 이 글이 나중에 어떤 추억거리가 될지 모르지만 나만의 좋은 기록으로 영원히 남기를 바란다.
(2016년 6월)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874건 4 페이지
여행정보/여행기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724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7 2 07-07
723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6 1 07-06
722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9 1 07-05
721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0 1 07-05
720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1 1 07-04
719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0 1 07-02
718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2 1 07-01
717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7 1 06-30
716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6 1 06-29
715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8 1 06-28
714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3 1 06-27
713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4 2 06-25
712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6 1 06-24
711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9 1 06-22
710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6 1 06-22
709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4 1 06-21
708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2 1 06-20
707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8 1 06-19
706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5 1 06-18
705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5 1 06-18
704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8 1 06-17
703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 1 06-16
702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2 1 06-15
701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3 1 06-14
700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8 0 06-13
699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1 1 06-12
698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6 1 06-11
697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7 1 06-09
696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8 1 06-08
695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7 1 06-07
694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4 1 06-02
693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2 1 06-01
692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5 1 06-01
691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57 1 05-31
690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4 1 05-30
689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33 1 05-30
688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0 1 05-29
687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8 1 05-28
686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9 1 05-26
685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5 1 05-26
684 아름다운Lif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9 1 05-25
683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6 1 05-25
682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3 1 05-24
681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2 1 05-18
680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0 1 05-17
679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40 1 05-17
678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30 1 05-15
677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2 1 05-14
676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4 1 05-13
675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2 1 05-11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