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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12 13:51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167  

위를 기어가는 것들에는

 

김영남

 

 

땅을 기어가는 것들에는

기둥에 붙들어맬 수 없는 고집이 있다.

황토밭을 달리다가 잠시 뒤돌아보는 고구마 순,

벽을 기어오르며 허공에 내미는 담쟁이손,

이것들에게는 허리가 꺾이고 발목이 묶이더라도

오로지 가고야 말겠다는 강인한 근성이

무섭도록 꿈틀댄다.

 

그 구불구불한 줄기를 들치면

대나무 뿌리 같은 손이 있고,

그 손 속에

들녘으로 나가는 어머니

호미자루가 쥐어져 있다.

꺾인 자리를 지우며 푸른 하늘을 향해

날개 펴는 새순 속에는 또

얘야, 손발이 부르트도록 땅을 뒤져 네게 올려주마 하시던

고무 신발 같은 말씀이 달리고 있고,

주렁주렁 열매 달린 묵은 순 속에는

딱딱한 매듭으로 남거나 삭정이로 부러지는

줄기의 마지막 모습이

아프게 숨어 있다.

 

땅을 기어가는 것들,

절벽을 기어오르는 줄기들에는

어둔 싹들을 이 세상으로 업어낸

아름다운 등이 있다.

 

 

kimyoungnam-140-4.jpg

1957년 전남 장흥 출생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및 대학교 예술대학원 졸업

1997<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정동진역』 『모슬포 사랑』 『푸른 밤의 여로』 『가을 파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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