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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18 09:08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000  

초여름에서 늦봄까지

 

홍해리

 

       

 

1

그해 여름

혼자

빨갛게 소리치는

저 장미꽃더미 아래

나는

추웠네

한겨울이었네

속살 드러내고 속살대는

초여름 문턱에 서서

나무들은 옷을 껴입고 있었네

연초록에서 진초록으로.

 

 

2

천둥과 번개 사이로

불볕더위가 느릿느릿 지나가고

흰 이슬 방울방울

지천으로 내리는

황금벌판---,

발가벗고 누워도

부끄럽지 않았네

온몸의 광채

저 높은 거지중천으로

흥겹게 퍼져

하늘을 덮고 있었네

가슴에 응어리진

아픔의 알갱이도 금빛으로 익어

투명한 빛살로 원을 그리고

견고한 열매 속

하늘로 하늘로 길이 열리고 있었네.

 

 

3

온 세상에 흰눈이 내려쌓여

천지가 적막에 잠길 때

포근한 눈이불을 뒤집어쓴

보리밭 이랑이랑

별로 뜨고 있었네 나는,

긴긴 밤 서성이며

잠 못 드는 저 보리싹들을 안고

일어서는 은빛 대지는

가장 지순한 한 편의 위대한 시를

깊이 깊이 품어안은 채

수천 수만의 꽃봉오리를 밝히고 있었네.

 

 

4

산비둘기 울음으로

쑥 냉이 꽃다지 벌금자리로

돋는 사랑이여

차라리 질경이 속에 들어가

작디 작은 씨앗이 되어

그리움이 이는 풀밭길

연초록으로 피어나고 싶네

빛과 어둠

시작과 끝

삶과 죽음을 잇는 끈이 되어

두 손길 마주잡고

눈에 젖는 사랑

따숩은 세상길에

그의 시간이 되고 싶네

무량공간으로, 나는.

 

 

- 홍해리 시선집 시인이여 詩人이여(우리글, 201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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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충북 청원 출생

고려대학교 영문과 졸업

시집 투망도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화사기』 『무교동』 『우리들의 말』 『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

홍해리 시선』 『대추꽃 초록빛』 『청별』 『은자의 북』 『난초밭 일궈 놓고

투명한 슬픔』 『애란』 『봄 벼락치다』 『푸른 느낌표』 『황금감옥』 『비밀

시선집 시인이여 詩人이여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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