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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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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28 11:14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682  

민들레하우스

 

엄원태

 

 

주인 내외가 나를

저수지 가 비닐하우스지기로 임명한 건 지난 가을이다

갇혀 지낸 지 이백육십구 일이 흘렀다

대체로 견디기 힘든 날들이었지만,

한겨울 밤 추위는 따로 기록해둘 만한 시련이었다

목줄에 바투 묶인 탓에 운동을 할 수도 없었던 것도

고통스러운 일 중의 하나였다

그럭저럭 봄을 맞이하자

하우스 안 닭장에 병아리 스무 마리가 추가 입양됐다

내 임무는 한층 뚜렷해졌는데, 목줄은 더 꼬이며 짧아졌다

 

주인 내외는

앞마당을 에워싼 철망 울타리에 강낭콩 덩굴을 올리고

하우스 출입문 위에는

공사장에서 주워 온 '안전제일'이란 플라스틱 팻말을 달았는데,

최근엔 철책 게이트 옆에다 '민들레하우스'라는 앙증스런 팻말까지 달았다

그리하여 뜻밖에 평화롭다는 민들레영토의 지킴이가 되었지만,

목줄에 묶인 신세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여름 오기 전, 장맛비가 얼마간 열기를 식혀주겠지만

본격적인 더위를 견딜 각오 역시 만만찮을 게다

내 유일한 전략이란 명상과 낮잠,

그나마 낮잠이 조금 더 편한 선택사항인 셈이다

 

민들레하우스 철책 안에는

상치며 쑥갓, 그리고 국화 화분 몇 개가 전부인데,

나는 목줄이 풀리더라도 닭장은 물론이고

푸성귀며 화분 따윈 절대로 건드리지 않을 것인데,

주인 내외는 그런 나를 아직도 믿지 못해서

오늘도 목줄이 단단히 매였는지 확인하고 돌아갔다

 

- 엄원태 시집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창비, 2013)에서

 

 

엄원태.jpg

 

1955년 대구 출생

서울대학교 및 동 대학원 졸업(박사)

1990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 침엽수림에서』 『소읍에 대한 보고

물방울 무덤』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

1회 대구시인협회상, 22회 금복문화상, 15회 백석문학상,

2회 발견문학상, 18회 김달진문학상 수상

 


느루 17-07-29 11:05
 
민들레하우스의 낮잠이 달콤하지만은 않은
찌뿌둥한 장마가 지나가서 다행입니다.
내 잠 우선해서 깨어난 매미들의 수면 방해로
차라리 장대비가 그리운 주말아침.

민들레하우스의 앙증한 팻말 옆에
늘어진 낮잠을 즐길 지키미에게 날파리가 덤비지않기를
...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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