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문학가 산책
  • 오늘의 시

 (관리자 전용)

 
☞ 여기에 등록된 시는 작가의 동의를 받아서 올리고 있습니다(또는 시마을내에 발표된 시)
☞ 모든 저작권은 해당 작가에게 있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작성일 : 17-09-08 13:57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273  

지금 우리가 바꾼다

 

유수연

 

 

  어제는 해변에서 모래성을 쌓았고 이제는 무너지지 않을 우리의

성문으로 나는 깃발을 들고 너는 북을 치며 간다

 

  승패 없는 긴 전쟁을 향해 다 하는 사랑을 수통에 채우고 손을

마주 잡는 사람 홀로 춤을 추는 사람과 같이

 

  지옥으로

  예쁜 악마들과 함께

 

  빗물에 검게 물든 흰 양말 끌어당기며 신발 뒤축에 쓸려 나오는

피처럼 물들자 물들자 자목련이 수놓아진 나의 이불까지

 

  우리는 길 위에서 가능하다 아니야 아니야 왜 우리는 막혀 있는

거야 우리는 가능한 거니? 우리 멀어지는 골목인 거니?

 

  아니 우리는 우리의 쓰임을 남에게 맡기지 않기로 했지

  나는 깃발을 들고 너는 내 등을 하염없이 치고

 

  창밖으로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과

  양팔을 벌리고 있는 저 사람

 

  저것은 인사일까요?

  거미도 거미줄에 걸리는 거 그거, 아세요.

 

  우리가 만든 드림캐처에

  천사는 오래 걸려 있으라고 해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남에게 빌지 않기로 했지 너는 울적했

지만 우리가 사라진다고 세상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고 너는

한동안 자두빛 하늘을 바라보며 많은 사람 속에서

 

  왼쪽으로 흐르는 눈물과 오른쪽으로 흐르는 눈물을. 슬플 때와

기쁠 때 흐르는 눈물의 차이를. 거울을 보며 이쪽이 왼쪽인가 왼손

을 들어 확인한다는 너를 보면서

 

  기쁜 방향으로

  예쁜 눈동자와 함께

 

  개들이 목줄에 난 상처를 서로 핥아주다 서로의 항문을 쫓아

개들이 사랑하고 무지개 색깔 아이스크림처럼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채 녹아내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우리는

 

  펄럭이는 물집과 물집을 헐어내며 열어둔 성문을 향해 돛을 펴고

간다 나의 배에서 목수들이 우리를 부부처럼 조각한 목각 인형을

선물로 주고 먼 훗날 우리의 친구들이 그 앞에서 기도할 수 있기를.

 

  다시 만난 세계에서

  노래를 부른다

 

  나는 깃발을 들고, 나는 깃발을 들고, 나는 깃발을 들고 계속 가니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너는 잠깐 조용하다

 

- 월간 시인동네(2017. 9월호)에서

 

 


유수연시인.jpg

 

1994년 강원도 춘천 출생

201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오늘의 시 등록 관련 안내 관리자 07-19 27681
1028 빛나는 책 / 박현수 관리자 10-23 116
1027 이것 / 전동균 관리자 10-23 94
1026 나비잠 / 문성해 관리자 10-21 233
1025 수련 물들다 / 유종인 관리자 10-21 193
1024 미래 상가 / 김상혁 관리자 10-19 288
1023 비의 일요일 / 김경인 관리자 10-19 290
1022 붉은빛의 거처 / 이병일 관리자 10-18 327
1021 어깨로부터 봄까지 / 김중일 관리자 10-18 280
1020 이마 / 허은실 관리자 10-16 379
1019 달랑, 달랑달랑 / 최찬용 관리자 10-16 322
1018 죽음의 춤 / 윤정구 관리자 10-11 521
1017 담쟁이 / 배영옥 관리자 10-11 520
1016 서른을 훌쩍 넘어 아이스크림 / 서효인 관리자 10-10 376
1015 이상한 나라의 게이트 / 문순영 관리자 10-10 326
1014 토종닭 연구소 / 장경린 관리자 09-28 908
1013 소주 한 병이 공짜 / 임희구 관리자 09-28 880
1012 낯선 선물 / 이선욱 관리자 09-25 1063
1011 물속의 계단 / 이기홍 관리자 09-25 887
1010 그 많던 귀신은 다 어디로 갔을까 / 곽효환 관리자 09-22 968
1009 금요일 / 유희경 관리자 09-22 997
1008 돼지가 웃었다 / 구재기 관리자 09-21 932
1007 소소한 운세 / 이선이 관리자 09-21 936
1006 너무 멀어 / 김완수 관리자 09-20 1020
1005 진실게임 / 박상수 관리자 09-20 837
1004 진열장의 내력 / 임경섭 관리자 09-15 1124
1003 통조림은 유통기한이 문제다 / 이영수 관리자 09-15 1014
1002 미움의 힘 / 정낙추 관리자 09-14 1170
1001 황혼 / 정남식 관리자 09-14 1210
1000 숟가락 / 김 륭 관리자 09-13 1174
999 달은 열기구로 떠서 / 김효은 관리자 09-13 1016
998 하얀 나무 / 김신영 관리자 09-12 1161
997 외상값 갚는 날 / 김회권 관리자 09-12 1147
996 당신의 11월 / 김병호 관리자 09-08 1422
995 지금 우리가 바꾼다 / 유수연 관리자 09-08 1274
994 이별 / 이채영 관리자 09-07 1385
993 새처럼 앉다 / 임정옥 관리자 09-07 1345
992 천원역 / 이애경 관리자 09-06 1243
991 나를 기다리며 / 이윤설 관리자 09-06 1326
990 길 위에서 / 김해화 관리자 09-05 1446
989 스물 네 살의 바다 / 김정란 관리자 09-05 1236
988 온양온천역 왼편 호박다방 / 남궁선 (1) 관리자 09-04 1267
987 에스컬레이터의 기법 / 김희업 관리자 09-04 1221
986 생가 / 김정환 (1) 관리자 08-31 1579
985 둘의 언어 / 김준현 (2) 관리자 08-31 1557
984 숲에서 보낸 편지 6 / 김기홍 (1) 관리자 08-30 1607
983 무반주 / 김 윤 (2) 관리자 08-30 1420
982 滴 / 김신용 관리자 08-29 1387
981 간절하게 / 김수열 관리자 08-29 1477
980 제조업입니다 / 송기영 (1) 관리자 08-28 1408
979 때가 되었다 / 박판식 관리자 08-28 1443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