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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9-08 13:57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737  

지금 우리가 바꾼다

 

유수연

 

 

  어제는 해변에서 모래성을 쌓았고 이제는 무너지지 않을 우리의

성문으로 나는 깃발을 들고 너는 북을 치며 간다

 

  승패 없는 긴 전쟁을 향해 다 하는 사랑을 수통에 채우고 손을

마주 잡는 사람 홀로 춤을 추는 사람과 같이

 

  지옥으로

  예쁜 악마들과 함께

 

  빗물에 검게 물든 흰 양말 끌어당기며 신발 뒤축에 쓸려 나오는

피처럼 물들자 물들자 자목련이 수놓아진 나의 이불까지

 

  우리는 길 위에서 가능하다 아니야 아니야 왜 우리는 막혀 있는

거야 우리는 가능한 거니? 우리 멀어지는 골목인 거니?

 

  아니 우리는 우리의 쓰임을 남에게 맡기지 않기로 했지

  나는 깃발을 들고 너는 내 등을 하염없이 치고

 

  창밖으로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과

  양팔을 벌리고 있는 저 사람

 

  저것은 인사일까요?

  거미도 거미줄에 걸리는 거 그거, 아세요.

 

  우리가 만든 드림캐처에

  천사는 오래 걸려 있으라고 해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남에게 빌지 않기로 했지 너는 울적했

지만 우리가 사라진다고 세상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고 너는

한동안 자두빛 하늘을 바라보며 많은 사람 속에서

 

  왼쪽으로 흐르는 눈물과 오른쪽으로 흐르는 눈물을. 슬플 때와

기쁠 때 흐르는 눈물의 차이를. 거울을 보며 이쪽이 왼쪽인가 왼손

을 들어 확인한다는 너를 보면서

 

  기쁜 방향으로

  예쁜 눈동자와 함께

 

  개들이 목줄에 난 상처를 서로 핥아주다 서로의 항문을 쫓아

개들이 사랑하고 무지개 색깔 아이스크림처럼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채 녹아내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우리는

 

  펄럭이는 물집과 물집을 헐어내며 열어둔 성문을 향해 돛을 펴고

간다 나의 배에서 목수들이 우리를 부부처럼 조각한 목각 인형을

선물로 주고 먼 훗날 우리의 친구들이 그 앞에서 기도할 수 있기를.

 

  다시 만난 세계에서

  노래를 부른다

 

  나는 깃발을 들고, 나는 깃발을 들고, 나는 깃발을 들고 계속 가니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너는 잠깐 조용하다

 

- 월간 시인동네(2017. 9월호)에서

 

 


유수연시인.jpg

 

1994년 강원도 춘천 출생

201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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