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문학가 산책
  • 오늘의 시

 (관리자 전용)

 
☞ 여기에 등록된 시는 작가의 동의를 받아서 올리고 있습니다(또는 시마을내에 발표된 시)
☞ 모든 저작권은 해당 작가에게 있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작성일 : 17-11-07 09:09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487  

 

살구나무 당나귀

  

   송진권

 

 

사실 살구나무라고 이렇게 허물어져가는 블록담 아래

고삐매어 있는 게 좋은 건 아니었다

푸르르릉 콧물 튕기며 사방 흙먼지 일구며 달려 나가고 싶었지만

처마 밑까지 수북한 폐지나 마대자루 안의 유리병과 헌옷가지

한 쪽 바퀴가 펑크 난 리어카와 시래기 타래를 비집고 나오는

그 얼굴을 보면 차마 못할 짓이었다

사실 살구나무도 조팝꽃 한 가지 머리에 꽂고

갈기와 꼬리털 촘촘 땋고 그 끝마다 작은 방울을 단

축제일의 반바지를 입은 당나귀들이 부럽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아침마다 앓는 소리와 기침소리를 듣는 게 신물 나기도 했지만

작년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빨랫줄에 둥치 패이며 묶여 있지만

벼르고 벼르던 그 당나귀처럼

누런 달을 허공에 까마득히 뒷발로 차올리고

푸르르 푸르르 이빨 들어내고 웃어버리고 싶었으나

그냥 얌전히 묶인 채 늙어가며

듬성듬성 털 빠지고 몽당한 꼬리나 휘휘 저으며

늙은 주인의 하소연이나 들어주는 개살구나무로 주저앉아

해마다 누런 개살구나 짜개지게 맺을 뿐이었다

흐물흐물한 과육을 쪼개 우물거리다

퉤 씨를 뱉는 우묵한 입이나 보며

빨랫줄이나 팽팽히 당겨주는 것이다

이래두 살구 저래두 살구지만

몸빼와 월남치마 펄럭거리는 살구나무지만

이 집이 올해도 이렇게 꽃으로 뒤발을 하고 서 있는 건

늙은 당나귀 살구나무가 힘껏 이 집 담벼락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와 경계》2016년 여름호

 

 

1970년 충북 옥천 출생
방송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2004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
시집으로 『자라는 돌』등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오늘의 시 등록 관련 안내 관리자 07-19 37461
1239 봄비 / 정한용 (1) 관리자 05-18 418
1238 탱고를 추다 / 이경교 관리자 05-17 373
1237 보금자리주택지구 / 이선이 관리자 05-17 268
1236 병상 일기 2 / 이해인 관리자 05-16 332
1235 위성 / 배영옥 관리자 05-16 313
1234 어른의 맛 / 김윤이 관리자 05-15 443
1233 소묘 5 / 이성렬 관리자 05-15 337
1232 합주 / 정끝별 관리자 05-11 644
1231 새댁 / 이인철 관리자 05-11 553
1230 한 걸식자의 비망록 / 권순진 관리자 05-10 544
1229 구두를 닦다 / 강태승 관리자 05-10 545
1228 축, 생일 / 신해욱 관리자 05-09 579
1227 광화문 천막 / 이영주 관리자 05-09 511
1226 엄마 / 김완하 관리자 05-08 716
1225 지구 동물원 / 정 영 관리자 05-08 521
1224 일력 / 마경덕 관리자 05-04 801
1223 적멸에 앉다 / 장인수 관리자 05-04 727
1222 봄비 / 정호승 관리자 05-02 1234
1221 드라마 / 이동호 관리자 05-02 788
1220 의혹 / 서연우 관리자 04-30 871
1219 녹 / 하상만 관리자 04-30 794
1218 돌을 웃기다 / 성영희 관리자 04-27 1041
1217 날아라, 십정동 / 김선근 관리자 04-27 932
1216 봄날의 서재 / 전윤호 관리자 04-26 987
1215 초록 서체 / 오영록 관리자 04-26 899
1214 자두나무 정류장 / 박성우 (1) 관리자 04-23 1099
1213 봄비 / 안도현 (1) 관리자 04-23 1505
1212 겹겹, 겹겹의 / 유희경 관리자 04-19 1280
1211 두 음 사이 / 신영배 관리자 04-19 1166
1210 동백 꽃잠 / 장상관 관리자 04-18 1197
1209 뒤란의 석류나무는 이미 늙었으나 / 허영숙 관리자 04-18 1146
1208 벚꽃 십리 / 손순미 관리자 04-17 1302
1207 동백꽃이 떨어지는 이유 / 심강우 관리자 04-17 1156
1206 그런 저녁 / 박제영 관리자 04-16 1305
1205 몽골 편지 / 안상학 관리자 04-16 1089
1204 꽃의 권력 / 고재종 관리자 04-13 1501
1203 표변 / 이화영 관리자 04-13 1298
1202 농담이라는 애인 / 조유리 관리자 04-12 1350
1201 어린 나뭇잎에게 / 이수익 관리자 04-12 1404
1200 나미브 사막에서 / 장승규 관리자 04-11 1209
1199 맷집 / 박승류 관리자 04-11 1188
1198 별천지 / 이소현 관리자 04-10 1387
1197 진달래 / 윤제림 관리자 04-10 1563
1196 오래된 연인 / 최기순 관리자 04-09 1490
1195 봄꽃 천 원 / 김수우 관리자 04-09 1469
1194 바늘 / 이승리 관리자 04-09 1419
1193 B플랫 단조의 골목 / 김예하 관리자 04-05 1397
1192 산수유 피는 마을 / 이 강 (1) 관리자 04-05 1438
1191 산수유나무 / 이선영 관리자 04-04 1395
1190 꽃의 자세 / 김정수 관리자 04-04 1495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