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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03 10:07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666  

미장센

 

송 진

 

 

   너의 연기는 압권이었어 너의 순진한 염소 같은 눈을 클로즈업하는 감독의 재치라니

 가만..가만.. 재치.. 그 정도의 말은 아쉽지 감독의 깊이라고 할게 너의 눈동자에서

 뭔가를 발견한 거야 오래전부터 짝사랑한 아이의 몸짓을 흘깃흘깃 바라보듯 그건

 자연히 끌리는 거지 순진한 염소의 눈동자에서 분노한 곰의 눈동자까지 푸르고 노랗고

 불그스름하게 다가서는 고성능 카메라의 렌즈 밀착될 때마다 빠르게 흩어지는 수천수만

 개 필름의 입자들 감독은 알고 있었지 지독한 사랑에 빠진 영화광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좌석 하나를 슬쩍 잃어버린 지갑처럼 비워둔 거야 간이의자도 서너 개 있었지 인생을

 진주처럼 사랑하는 법에 대해 배우지 못한 간이 의자들은 영화가 끝나자 허기진 허기가

 접혀 직원들의 부드러우면서 억센 손가락 마디에 이끌려 질질 무대 밖을 나갔지 진정한

 투쟁의 시간이 시작되었다고 할까 삶의 이탈자처럼 가장 큰 쾌감을 맛보는 순간들이지

 서글프면서도 원하기도 했던 것 같은... 그러나 막상 다가오면 왜 나에게만... 별별 생각에

 빠져 잠시 상사화처럼 흔들리는 그럴 때면 꽃무릇을 생각해 꽃무릇의 꼿꼿하게 서있는

 아름다운 붉은 무릎을, 부드러운 이슬 같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고 있다보면 감독의

 무릇무릇한 사인이 지나가고 배우의 지친 어깨가 지나가고 어쨌든 클로즈업 되는 너의

 눈동자는 붉게 물든 염소의 눈동자 무대 위 분홍 볼캡을 쓴 감독은 보이지 않지만 하얀

 철제 테이블과 의자는 무릎을 펴고 당당하게 서 있지 영원한 제복을 입은 군인처럼, 감독과

 무대와 배우와 그리고 음악이 빠질 수 없지 싸구려 와인도 에스프레소와 믹서커피와 맹물까지

 영화를 위해 건배 클로즈업 될 때까지, 빠르게 지나가기, 빨주노초 물들이기, 때로는 흑백으로

 때로는 뿌연 쌀뜨물처럼 흐려지기 멋진 미장센이야 슬프고도 아련한 과거의 아득한 지점에

 데려다주는

 

- 송 진 시집 미장센(2017. 작가마을)에서

 

 

 

 

1962년 부산 출생

1999다층등단

시집 지옥에 다녀오다』『나만 몰랐나 봐』『시체 분류법』『미장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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