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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27 08:48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372  

소만 (小滿)

     조  정

 

 

어머니 저는 벌써 비파나무 그늘에 와있는 걸요

귀 없는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부르는 노래

 

하늘은 이파리 사이에 비파 열매 두세 개 놓은

()

 

아침 먹고 백옥같이 삶아 널은 베갯잇이 날아가

나무 그늘에 앉았다

 

아가, 어느 골짝이냐

 

책상에 놓인 교복 단추 하나 쥐고 안 가본 데 없이 가봤다

사람 묻었다고 수군거려진 자리 다녀온

날이면

힘껏 당겨 묶어서 겨드랑이 해진 빨랫줄에

피 묻은 길을 빨아 널었다

 

많이 다쳤드냐?

 

선불에 끄슬러 초록 물방울 같이 비빈 풋보리 알을

열무지 담는 내 입에 톡 털어 넣어주던

너에게

이 열무로 지 담아

저 이쁜 비파들 편에 들려 보낼까?

 

아아, 길에는 혀 붉은 개가 나올 시간이다

달리는 차에 새끼를 잃은 개는 달리는 차를 붙들지 못하고

날마다 길을 핥아

제 신음을 적시러 온단다

 

아래는* 먼 포구에 갔다

흰 텐트가 줄지어 서 있었다

문 열어라 물아

문 좀 열어다오 물아

어미들은 물가에 허리를 접고 웅얼거렸으나

바다는

천남성 꽃잎처럼 냉랭했다

 

해식애를 돌아 동거차 선착장 찾아온 딸 하나

제 품에서 건져

쾌속정에 태워 보내줄 뿐이었다

헬리콥터는 프로펠러가 꺾인 채 날아가고

허공에 금이 가고

날카로운 비명이 폭우처럼 새어나갔다

 

등이 아프다

누가 내 곁에서 자기 시작했다

돌절구를 지고

입 다문 지 오래된 물속을 자맥질하는 잠

해초 냄새 나는 아이들이 밤새 몸 안을 사무쳤다

 

어디로 가야 너를 찾으끄나

 

뜰 안에는 비파가 노랑노랑연두연두 익어간다

슬픔을 일습 흠 없이 갖추어 입은

배 한 척이

집에 가득하다

 

*아래 : 그저께를 가리키는, 경상도 말.

 

-시산맥(2017, 여름호), 8회 시산맥작품상 후보작


조정시인.jpg

 

 2000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이발소 그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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