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문학가 산책
  • 오늘의 시

 (관리자 전용)

 
☞ 여기에 등록된 시는 작가의 동의를 받아서 올리고 있습니다(또는 시마을내에 발표된 시)
☞ 모든 저작권은 해당 작가에게 있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작성일 : 17-03-24 09:19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398  

바다

 

최정례

 

 

그놈은 모래 구멍을 기어나와

집게발로 수줍게 몸을 가리고

눈은 안테나처럼 세우고

아득한 모래톱 너머 일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다가

발자국 소리에 재빨리 몸을 숨겼다

 

여자 아이가 숨어서 한 남자를 보고 있었다

살구나무 그림자가 벽을 일렁이는 저녁 무렵

남자가 피어내는 담배 연기가 꼬리를 끌다

무성한 나무 그림자에 묻히고

대청 마루에서 아버지와 큰소리가 오가더니

남자는 일어나 조용히 떠났다

 

수산 시장

무성한 칼자국으로 움푹 패인 통나무 도마 옆

그놈은 열린 톱밥 상자 안에서

발랑 뒤집혀 열 개 스무 개 서른 개의 발로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부인네가 된 여자 아이는 장바구니를 들고

커다란 생선을 내리치는 칼과 함께

번득이는 한 남자의 눈빛을 보고 움찔했다

잠시 살구나무 그림자가 칼 아래 일렁였다

 

그놈은 접시 위에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간장에 오래 묵혀 잘 삭은 빛깔이었으나

집게발은 쩍 벌어져 누군가를 물어뜯을 듯했고

두 눈은 튀어나와 바다를 바라보던 모습이었다

 

여자는 두 손으로 그 놈의 뚜껑을 열어젖혔다

농익어 노리끼리한 알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여자는 멈칫했다

잠깐 잠깐의 어지럼증처럼 밀려오는 봄 바다

먼 거기를 바라보던 어느 봄인가도

여자는 어지럼증 때문에

손을 놓지 못한 적이 있었다

 


 


최정례시인.jpg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1990현대시학등단

시집 햇빛속에 호랑이』 『붉은 밭』 『레바논 감정

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개천은 용의 홈타운

백석 시 연구서 백석 시어의 힘

산문집 시여 살아 있다면 힘껏 실패하라

15회 미당문학상, 8회 오장환문학상

14회 백석문학상, 52회 현대문학상 수상


cyj5830 17-03-25 13:59
 
다녀갑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오늘의 시 등록 관련 안내 관리자 07-19 36451
1212 겹겹, 겹겹의 / 유희경 관리자 04-19 286
1211 두 음 사이 / 신영배 관리자 04-19 216
1210 동백 꽃잠 / 장상관 관리자 04-18 314
1209 뒤란의 석류나무는 이미 늙었으나 / 허영숙 관리자 04-18 275
1208 벚꽃 십리 / 손순미 관리자 04-17 427
1207 동백꽃이 떨어지는 이유 / 심강우 관리자 04-17 301
1206 그런 저녁 / 박제영 관리자 04-16 406
1205 몽골 편지 / 안상학 관리자 04-16 298
1204 꽃의 권력 / 고재종 관리자 04-13 627
1203 표변 / 이화영 관리자 04-13 453
1202 농담이라는 애인 / 조유리 관리자 04-12 536
1201 어린 나뭇잎에게 / 이수익 관리자 04-12 548
1200 나미브 사막에서 / 장승규 관리자 04-11 493
1199 맷집 / 박승류 관리자 04-11 464
1198 별천지 / 이소현 관리자 04-10 603
1197 진달래 / 윤제림 관리자 04-10 680
1196 오래된 연인 / 최기순 관리자 04-09 670
1195 봄꽃 천 원 / 김수우 관리자 04-09 674
1194 바늘 / 이승리 관리자 04-09 627
1193 B플랫 단조의 골목 / 김예하 관리자 04-05 675
1192 산수유 피는 마을 / 이 강 관리자 04-05 683
1191 산수유나무 / 이선영 관리자 04-04 672
1190 꽃의 자세 / 김정수 관리자 04-04 702
1189 연두의 저녁 / 박완호 관리자 04-03 660
1188 그때가 세상은 봄이다 / 김신영 관리자 04-03 724
1187 목련 / 심언주 관리자 04-02 807
1186 낯선 집 / 배창환 관리자 04-02 574
1185 망설임, 그 푸른 역 / 김왕노 관리자 03-30 834
1184 꽃, 무화과나무를 찾아서 / 이성목 관리자 03-30 700
1183 분홍 분홍 / 김혜영 관리자 03-29 839
1182 고마운 일 / 윤 효 관리자 03-29 830
1181 소만 / 조 정 관리자 03-27 824
1180 꽃 / 서영식 관리자 03-27 1048
1179 두 번 쓸쓸한 전화 / 한명희 관리자 03-22 1216
1178 피는 꽃 / 한혜영 관리자 03-22 1325
1177 툭, 건드려주었다 / 이상인 관리자 03-20 1223
1176 파국 / 윤지영 관리자 03-20 1027
1175 빈 집 / 박진성 관리자 03-19 1225
1174 너의 귓속은 겨울 / 남궁선 관리자 03-19 992
1173 봄비의 저녁 / 박주택 관리자 03-15 1674
1172 옛날 애인 / 유안진 관리자 03-15 1382
1171 봄이 오는 뚝길을 걸으며 / 윤석산 관리자 03-14 1428
1170 저녁 7시, 소극 / 윤예영 관리자 03-14 1148
1169 사막의 잠 / 진해령 관리자 03-13 1200
1168 퀘이사 / 양해기 관리자 03-13 1045
1167 돼지 / 곽해룡 관리자 03-06 1843
1166 호명 / 강영환 관리자 03-05 1545
1165 버찌는 버찌다 / 김 륭 관리자 03-05 1400
1164 소들은 다 어디로 갔나 / 이동재 관리자 03-02 1779
1163 다시 나만 남았다 / 이생진 관리자 03-02 1856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