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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3-24 09:19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466  

바다

 

최정례

 

 

그놈은 모래 구멍을 기어나와

집게발로 수줍게 몸을 가리고

눈은 안테나처럼 세우고

아득한 모래톱 너머 일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다가

발자국 소리에 재빨리 몸을 숨겼다

 

여자 아이가 숨어서 한 남자를 보고 있었다

살구나무 그림자가 벽을 일렁이는 저녁 무렵

남자가 피어내는 담배 연기가 꼬리를 끌다

무성한 나무 그림자에 묻히고

대청 마루에서 아버지와 큰소리가 오가더니

남자는 일어나 조용히 떠났다

 

수산 시장

무성한 칼자국으로 움푹 패인 통나무 도마 옆

그놈은 열린 톱밥 상자 안에서

발랑 뒤집혀 열 개 스무 개 서른 개의 발로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부인네가 된 여자 아이는 장바구니를 들고

커다란 생선을 내리치는 칼과 함께

번득이는 한 남자의 눈빛을 보고 움찔했다

잠시 살구나무 그림자가 칼 아래 일렁였다

 

그놈은 접시 위에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간장에 오래 묵혀 잘 삭은 빛깔이었으나

집게발은 쩍 벌어져 누군가를 물어뜯을 듯했고

두 눈은 튀어나와 바다를 바라보던 모습이었다

 

여자는 두 손으로 그 놈의 뚜껑을 열어젖혔다

농익어 노리끼리한 알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여자는 멈칫했다

잠깐 잠깐의 어지럼증처럼 밀려오는 봄 바다

먼 거기를 바라보던 어느 봄인가도

여자는 어지럼증 때문에

손을 놓지 못한 적이 있었다

 


 


최정례시인.jpg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1990현대시학등단

시집 햇빛속에 호랑이』 『붉은 밭』 『레바논 감정

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개천은 용의 홈타운

백석 시 연구서 백석 시어의 힘

산문집 시여 살아 있다면 힘껏 실패하라

15회 미당문학상, 8회 오장환문학상

14회 백석문학상, 52회 현대문학상 수상


cyj5830 17-03-25 13:59
 
다녀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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