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문학가 산책
  • 오늘의 시

 (관리자 전용)

 
☞ 여기에 등록된 시는 작가의 동의를 받아서 올리고 있습니다(또는 시마을내에 발표된 시)
☞ 모든 저작권은 해당 작가에게 있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작성일 : 17-03-24 09:19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604  

바다

 

최정례

 

 

그놈은 모래 구멍을 기어나와

집게발로 수줍게 몸을 가리고

눈은 안테나처럼 세우고

아득한 모래톱 너머 일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다가

발자국 소리에 재빨리 몸을 숨겼다

 

여자 아이가 숨어서 한 남자를 보고 있었다

살구나무 그림자가 벽을 일렁이는 저녁 무렵

남자가 피어내는 담배 연기가 꼬리를 끌다

무성한 나무 그림자에 묻히고

대청 마루에서 아버지와 큰소리가 오가더니

남자는 일어나 조용히 떠났다

 

수산 시장

무성한 칼자국으로 움푹 패인 통나무 도마 옆

그놈은 열린 톱밥 상자 안에서

발랑 뒤집혀 열 개 스무 개 서른 개의 발로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부인네가 된 여자 아이는 장바구니를 들고

커다란 생선을 내리치는 칼과 함께

번득이는 한 남자의 눈빛을 보고 움찔했다

잠시 살구나무 그림자가 칼 아래 일렁였다

 

그놈은 접시 위에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간장에 오래 묵혀 잘 삭은 빛깔이었으나

집게발은 쩍 벌어져 누군가를 물어뜯을 듯했고

두 눈은 튀어나와 바다를 바라보던 모습이었다

 

여자는 두 손으로 그 놈의 뚜껑을 열어젖혔다

농익어 노리끼리한 알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여자는 멈칫했다

잠깐 잠깐의 어지럼증처럼 밀려오는 봄 바다

먼 거기를 바라보던 어느 봄인가도

여자는 어지럼증 때문에

손을 놓지 못한 적이 있었다

 


 


최정례시인.jpg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1990현대시학등단

시집 햇빛속에 호랑이』 『붉은 밭』 『레바논 감정

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개천은 용의 홈타운

백석 시 연구서 백석 시어의 힘

산문집 시여 살아 있다면 힘껏 실패하라

15회 미당문학상, 8회 오장환문학상

14회 백석문학상, 52회 현대문학상 수상


cyj5830 17-03-25 13:59
 
다녀갑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오늘의 시 등록 관련 안내 관리자 07-19 24746
970 가문동 편지 / 정군칠 관리자 08-14 481
969 별 / 조은길 (1) 관리자 08-14 419
968 나나가 사랑한 / 권기만 (1) 관리자 08-11 512
967 바람의 사거리 / 박은석 (1) 관리자 08-11 509
966 무릎이 무르팍이 되기 위해서 / 이문숙 관리자 08-10 409
965 도깨비 멸종에 관한 보고서 / 이동재 관리자 08-10 380
964 독서의 시간 / 심보선 관리자 08-08 575
963 모래시계 / 신용목 관리자 08-08 531
962 사라진 것들은 어디쯤에서 고이나 / 오 늘 관리자 08-04 798
961 잔고 부족 / 이동우 관리자 08-04 722
960 그냥 그대로 흘렀으면 좋겠네 / 배창환 관리자 08-03 744
959 형상기억 / 백미아 관리자 08-03 631
958 계란과 스승 / 이재무 관리자 08-02 710
957 정오의 의식 / 김기형 관리자 08-02 650
956 그림자 반성 / 하종오 관리자 08-01 717
955 반듯한 슬픔 / 전 향 관리자 08-01 723
954 구름 / 손창기 관리자 07-31 752
953 그림자에 등을 기댄다 / 안효희 관리자 07-31 680
952 민들레하우스 / 엄원태 (1) 관리자 07-28 854
951 미조리 가는 길 / 오인태 관리자 07-28 751
950 여름 / 이시영 관리자 07-27 978
949 조각달을 보면 홍두깨로 밀고 싶다 / 이인철 관리자 07-27 747
948 불혹의 구두 / 하재청 관리자 07-26 834
947 귀가 / 한길수 관리자 07-26 807
946 꽃은 꽃이어야 꽃이다 / 장종권 관리자 07-25 913
945 석류의 분만기 / 정석봉 관리자 07-25 791
944 '있다'와 '없다' 사이로 양떼를 몰고 / 윤석산 관리자 07-24 836
943 바람, 난 / 윤지영 관리자 07-24 878
942 귀갓길 / 윤병무 관리자 07-21 990
941 나프탈렌 / 이 산 관리자 07-21 877
940 물총새 사랑법 / 배찬희 관리자 07-20 979
939 사막을 건너는 법 / 김지훈 관리자 07-20 959
938 근황 / 윤임수 관리자 07-19 1035
937 나의 사랑 단종 / 유현서 관리자 07-19 953
936 검은등뻐꾸기의 울음 / 임 보 관리자 07-18 980
935 초여름에서 늦봄까지 / 홍해리 관리자 07-18 987
934 현관문은 블랙홀이다 / 남상진 관리자 07-17 1000
933 사랑한다 / 조하혜 관리자 07-17 1124
932 거울 속의 잠 / 정한아 관리자 07-14 1169
931 내 사랑 물먹는 하마 / 정태화 관리자 07-14 1072
930 여우속눈썹 / 수피아 관리자 07-13 1162
929 슬 / 나병춘 관리자 07-13 1106
928 고추잠자리 / 박수서 관리자 07-12 1161
927 땅 위를 기어가는 것들에는 / 김영남 관리자 07-12 1102
926 괜찮아 / 한 강 관리자 07-11 1373
925 찰칵 / 오세영 관리자 07-11 1169
924 마지막 고스톱 / 이영식 관리자 07-10 1187
923 우리는 우리의 몰락 앞에 유적이라 이름 붙이고 / 신혜정 관리자 07-10 1122
922 어머니의 밥상 / 강재현 관리자 07-07 1530
921 밥통, 키친크로스 / 한미영 (1) 관리자 07-07 1213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