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문학가 산책
  • 오늘의 시

 (관리자 전용)

 
☞ 여기에 등록된 시는 작가의 동의를 받아서 올리고 있습니다(또는 시마을내에 발표된 시)
☞ 모든 저작권은 해당 작가에게 있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작성일 : 17-04-07 11:40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630  

호텔 스톡홀름 3

 

곽은영

 

 

1

버리고 가는 이와 담아가는 이

스톡홀름을 떠날 때는 그렇다

낚시꾼들은 절대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들을 위해 예쁜 마크의 냅킨과 타월

쿠키와 차를 넉넉하게 가져다 놓았다

낚시꾼들의 방은 약간의 생선 비린내가 남지만 말끔하게 치울 수 있다

버리고 가는 이들은

어딘지 수척해 보였다 그들이 현관을 나설 때는

트렁크의 부피가 그다지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빗 양말 쪽지 빵조각

심지어 사람도 버리고 간다

나는 그들을 위해 일부러 작은 쓰레기통을 둔다

버리고 싶은 것은 그냥 두고 떠나면 되도록

그들은 고통에서 깨끗하게 빠져나가고 싶기 때문에 무엇을 버린다

 

2

스톡홀름에 버려진 것 중 가장 크고

치우기 곤란한 것은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버려진 사람은 여러 날의 숙박료를 미리 지불하고

그 자리에서 물러져 땅 속으로 스며들길 원하는 토마토처럼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랬다

 

바짝 깎은 머리와 조금 퀭한 눈빛의 그는

하루 종일 TV를 보았다

식사를 가져다주며

스톡홀름은 사람을 버리는 곳이 아닙니다

말하고 싶었지만

더 필요한 게 있으세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 괜찮다는 그에게

1층의 전화기를 쓰셔도 됩니다

친절하게 덧붙였다

 

3

가까운 곳에 바다와 울창한 숲이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스톡홀름은 사람을 버리기에도 적당한 곳에 있다

잔인함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버려진 사람은 침대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1층으로 내려와 전화를 걸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삐걱 삐걱

나는 새삼 계단의 낡은 소리를 기다렸다

적어도 내 생각엔 그랬다

 

4

누구나 저마다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스톡홀름에 온다

불행히도 나는 호스트일 뿐

의사나 친구도 되어주지 못한다

 

5

나는 그가 스스로를 버리지 않기를 바랐다

이기적이게도

스톡홀름을 죽음의 출발지로 만들 수는 없었다

나는 3번의 식사시간 외에

차와 쿠키를 먹는 간식과 칩과 맥주를 먹는 오락을 생각해냈다

여행객들을 감시해서는 안 되지만

스톡홀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의 얼굴에 조금 놀란 빛이 확연했다

이런 서비스가 제공되는 줄 몰랐습니다

그가 짧으나마 여행객의 설레는 표정을 짓자

나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6

그와 나는 테이블에 마주 앉아 카드를 펼쳤다

나는 하트의 퀸을 좋아한다

그는 솜씨있는 카드꾼이었다

내가 하트 퀸을 노리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래서 번번히 졌다

그는 노련한 스페이드 잭이었다

가장 큰 패는 누구나 원하죠

그래서 실패하기도 쉽습니다

그는 짧게 말했다

문득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가 마지막 패를 열었다

스페이드 에이스

나는 한 번도 이기지 못했지만 그도 표정이 어두웠다

스페이드 에이스

아마도 그는 스스로 품은 칼에 찔렸을지도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아 주었다

 

한밤 중 하루의 쓰레기를 버리려고 뒤뜰에 나왔을 때

그의 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7

그가 지불한 만큼의 시간을 채우자 나는 불안해졌다

그의 계단소리를 듣기 위해 내 귀는 이미 뾰족해졌다

더 머무를 것인지 물어봐야 했다 스톡홀름의 규칙이니까

그러나 두려웠다

망설이던 아침 기다리던 발소리가 났다

그가 쥐고 있던 마지막 패가 떠올랐다

전화를 걸까 숙박료를 낼까

숙박료를 낸다에 하트 퀸을 걸겠어

그가 내 앞에 섰다

전화를 써도 될까요

나는 상냥하게 웃으며 수화기를 들어 건넸다

난 또 졌구나 피식

하루가 가기 전에 도어벨이 급하게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슬쩍 눈을 마주치고 멋쩍지만 어쩔 수 없었던

그림자를 놔두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방을 치웠으나 무엇이 그를 일으켜 세웠는지 찾지 못했다

그가 버리고 간 것은 없었다

창을 열어 바람이 들어오도록 오래오래 놔두었다

가장 큰 패는 누구나 원한다

그래서 실패하기도 쉽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큰 패를 원한다

 

 



곽은영.jpg

1975년 광주 출생

1997년 전남대와 2001년 서울예술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6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검은 고양이 흰 개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오늘의 시 등록 관련 안내 관리자 07-19 30706
1090 물방울 속으로 / 손진은 관리자 10:24 74
1089 가묘에 몸 대신 울음을 눕히고 / 주영헌 관리자 10:23 54
1088 서술의 방식 / 심강우 관리자 12-13 115
1087 연어의 귀소 / 권도중 관리자 12-13 101
1086 가난한 연인 / 박정원 관리자 12-11 341
1085 사막에서 잠들다 / 안차애 관리자 12-11 240
1084 복서2 / 박후기 관리자 12-07 365
1083 긍휼 / 성동혁 관리자 12-07 354
1082 직벽 / 김언희 관리자 12-06 385
1081 이마 / 신미나 관리자 12-06 375
1080 벤치 / 문성해 관리자 12-05 446
1079 몸의 집 / 최서진 관리자 12-05 352
1078 웨이터 / 권혁웅 (1) 관리자 12-04 411
1077 당신의 리듬 / 홍일표 (1) 관리자 12-04 409
1076 입술 / 김경후 (1) 관리자 12-01 574
1075 알뜰 함박눈 총판 / 박형권 (1) 관리자 12-01 512
1074 그림 3, 4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 정익진 (1) 관리자 11-30 462
1073 분홍에 가시가 자란다 / 정재분 (1) 관리자 11-30 469
1072 혼잣말, 그 다음 / 함성호 (1) 관리자 11-28 715
1071 보라에 대하여 / 서안나 (1) 관리자 11-28 589
1070 집 / 이선영 (1) 관리자 11-27 648
1069 천돌이라는 곳 / 정끝별 관리자 11-27 575
1068 울타리 / 조말선 관리자 11-24 855
1067 물고기 풍경 / 윤의섭 (1) 관리자 11-24 694
1066 커피 볶는 시간 / 유정이 (1) 관리자 11-23 747
1065 반구대 암각화 / 한국현 (1) 관리자 11-23 612
1064 낙과 / 이덕규 (1) 관리자 11-22 811
1063 시간에 기대어 / 고재종 (1) 관리자 11-22 804
1062 저공비행 / 최형심 관리자 11-21 720
1061 포크송 / 강성은 (1) 관리자 11-21 671
1060 고래가 되는 꿈 / 신동옥 (1) 관리자 11-20 776
1059 야수의 세계 / 서윤후 (1) 관리자 11-20 697
1058 만월 / 송종규 (1) 관리자 11-16 1052
1057 흐린 날의 귀가 / 조 은 (1) 관리자 11-16 968
1056 푸르고 창백하고 연약한 / 조용미 (1) 관리자 11-15 975
1055 耳鳴 / 나희덕 (1) 관리자 11-15 959
1054 검은 징소리 / 장옥관 (1) 관리자 11-14 926
1053 모레이가 물고기를 셉니다 / 김지녀 (1) 관리자 11-14 862
1052 발의 본분 / 조경희 (1) 관리자 11-13 963
1051 실내악 / 정재학 (1) 관리자 11-13 868
1050 별이 우리의 가슴을 흐른다면 / 이근화 관리자 11-10 1327
1049 바람 조율사 / 김유석 관리자 11-10 1076
1048 폭풍 속의 고아들 / 리 산 관리자 11-09 1069
1047 구름의 산수 / 강인한 관리자 11-09 1111
1046 문장리 / 이상인 관리자 11-08 1037
1045 곤계란 / 최금진 관리자 11-08 999
1044 비파나무 / 이경교 관리자 11-07 1110
1043 살구나무 당나귀 / 송진권 관리자 11-07 1081
1042 계단이 오면 / 심언주 관리자 11-06 1116
1041 꼬리 없는 사과 / 이화은 관리자 11-06 1087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