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문학가 산책
  • 오늘의 시

 (관리자 전용)

 
☞ 여기에 등록된 시는 작가의 동의를 받아서 올리고 있습니다(또는 시마을내에 발표된 시)
☞ 모든 저작권은 해당 작가에게 있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작성일 : 17-04-07 11:40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423  

호텔 스톡홀름 3

 

곽은영

 

 

1

버리고 가는 이와 담아가는 이

스톡홀름을 떠날 때는 그렇다

낚시꾼들은 절대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들을 위해 예쁜 마크의 냅킨과 타월

쿠키와 차를 넉넉하게 가져다 놓았다

낚시꾼들의 방은 약간의 생선 비린내가 남지만 말끔하게 치울 수 있다

버리고 가는 이들은

어딘지 수척해 보였다 그들이 현관을 나설 때는

트렁크의 부피가 그다지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빗 양말 쪽지 빵조각

심지어 사람도 버리고 간다

나는 그들을 위해 일부러 작은 쓰레기통을 둔다

버리고 싶은 것은 그냥 두고 떠나면 되도록

그들은 고통에서 깨끗하게 빠져나가고 싶기 때문에 무엇을 버린다

 

2

스톡홀름에 버려진 것 중 가장 크고

치우기 곤란한 것은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버려진 사람은 여러 날의 숙박료를 미리 지불하고

그 자리에서 물러져 땅 속으로 스며들길 원하는 토마토처럼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랬다

 

바짝 깎은 머리와 조금 퀭한 눈빛의 그는

하루 종일 TV를 보았다

식사를 가져다주며

스톡홀름은 사람을 버리는 곳이 아닙니다

말하고 싶었지만

더 필요한 게 있으세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 괜찮다는 그에게

1층의 전화기를 쓰셔도 됩니다

친절하게 덧붙였다

 

3

가까운 곳에 바다와 울창한 숲이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스톡홀름은 사람을 버리기에도 적당한 곳에 있다

잔인함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버려진 사람은 침대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1층으로 내려와 전화를 걸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삐걱 삐걱

나는 새삼 계단의 낡은 소리를 기다렸다

적어도 내 생각엔 그랬다

 

4

누구나 저마다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스톡홀름에 온다

불행히도 나는 호스트일 뿐

의사나 친구도 되어주지 못한다

 

5

나는 그가 스스로를 버리지 않기를 바랐다

이기적이게도

스톡홀름을 죽음의 출발지로 만들 수는 없었다

나는 3번의 식사시간 외에

차와 쿠키를 먹는 간식과 칩과 맥주를 먹는 오락을 생각해냈다

여행객들을 감시해서는 안 되지만

스톡홀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의 얼굴에 조금 놀란 빛이 확연했다

이런 서비스가 제공되는 줄 몰랐습니다

그가 짧으나마 여행객의 설레는 표정을 짓자

나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6

그와 나는 테이블에 마주 앉아 카드를 펼쳤다

나는 하트의 퀸을 좋아한다

그는 솜씨있는 카드꾼이었다

내가 하트 퀸을 노리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래서 번번히 졌다

그는 노련한 스페이드 잭이었다

가장 큰 패는 누구나 원하죠

그래서 실패하기도 쉽습니다

그는 짧게 말했다

문득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가 마지막 패를 열었다

스페이드 에이스

나는 한 번도 이기지 못했지만 그도 표정이 어두웠다

스페이드 에이스

아마도 그는 스스로 품은 칼에 찔렸을지도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아 주었다

 

한밤 중 하루의 쓰레기를 버리려고 뒤뜰에 나왔을 때

그의 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7

그가 지불한 만큼의 시간을 채우자 나는 불안해졌다

그의 계단소리를 듣기 위해 내 귀는 이미 뾰족해졌다

더 머무를 것인지 물어봐야 했다 스톡홀름의 규칙이니까

그러나 두려웠다

망설이던 아침 기다리던 발소리가 났다

그가 쥐고 있던 마지막 패가 떠올랐다

전화를 걸까 숙박료를 낼까

숙박료를 낸다에 하트 퀸을 걸겠어

그가 내 앞에 섰다

전화를 써도 될까요

나는 상냥하게 웃으며 수화기를 들어 건넸다

난 또 졌구나 피식

하루가 가기 전에 도어벨이 급하게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슬쩍 눈을 마주치고 멋쩍지만 어쩔 수 없었던

그림자를 놔두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방을 치웠으나 무엇이 그를 일으켜 세웠는지 찾지 못했다

그가 버리고 간 것은 없었다

창을 열어 바람이 들어오도록 오래오래 놔두었다

가장 큰 패는 누구나 원한다

그래서 실패하기도 쉽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큰 패를 원한다

 

 



곽은영.jpg

1975년 광주 출생

1997년 전남대와 2001년 서울예술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6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검은 고양이 흰 개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오늘의 시 등록 관련 안내 관리자 07-19 27444
1022 붉은빛의 거처 / 이병일 관리자 09:05 56
1021 어깨로부터 봄까지 / 김중일 관리자 08:58 57
1020 이마 / 허은실 관리자 10-16 196
1019 달랑, 달랑달랑 / 최찬용 관리자 10-16 164
1018 죽음의 춤 / 윤정구 관리자 10-11 372
1017 담쟁이 / 배영옥 관리자 10-11 346
1016 서른을 훌쩍 넘어 아이스크림 / 서효인 관리자 10-10 243
1015 이상한 나라의 게이트 / 문순영 관리자 10-10 194
1014 토종닭 연구소 / 장경린 관리자 09-28 786
1013 소주 한 병이 공짜 / 임희구 관리자 09-28 737
1012 낯선 선물 / 이선욱 관리자 09-25 921
1011 물속의 계단 / 이기홍 관리자 09-25 751
1010 그 많던 귀신은 다 어디로 갔을까 / 곽효환 관리자 09-22 834
1009 금요일 / 유희경 관리자 09-22 869
1008 돼지가 웃었다 / 구재기 관리자 09-21 805
1007 소소한 운세 / 이선이 관리자 09-21 811
1006 너무 멀어 / 김완수 관리자 09-20 891
1005 진실게임 / 박상수 관리자 09-20 722
1004 진열장의 내력 / 임경섭 관리자 09-15 1004
1003 통조림은 유통기한이 문제다 / 이영수 관리자 09-15 896
1002 미움의 힘 / 정낙추 관리자 09-14 1043
1001 황혼 / 정남식 관리자 09-14 1075
1000 숟가락 / 김 륭 관리자 09-13 1057
999 달은 열기구로 떠서 / 김효은 관리자 09-13 900
998 하얀 나무 / 김신영 관리자 09-12 1035
997 외상값 갚는 날 / 김회권 관리자 09-12 1019
996 당신의 11월 / 김병호 관리자 09-08 1286
995 지금 우리가 바꾼다 / 유수연 관리자 09-08 1160
994 이별 / 이채영 관리자 09-07 1264
993 새처럼 앉다 / 임정옥 관리자 09-07 1221
992 천원역 / 이애경 관리자 09-06 1132
991 나를 기다리며 / 이윤설 관리자 09-06 1195
990 길 위에서 / 김해화 관리자 09-05 1324
989 스물 네 살의 바다 / 김정란 관리자 09-05 1119
988 온양온천역 왼편 호박다방 / 남궁선 (1) 관리자 09-04 1151
987 에스컬레이터의 기법 / 김희업 관리자 09-04 1108
986 생가 / 김정환 (1) 관리자 08-31 1449
985 둘의 언어 / 김준현 (2) 관리자 08-31 1426
984 숲에서 보낸 편지 6 / 김기홍 (1) 관리자 08-30 1471
983 무반주 / 김 윤 (2) 관리자 08-30 1302
982 滴 / 김신용 관리자 08-29 1270
981 간절하게 / 김수열 관리자 08-29 1346
980 제조업입니다 / 송기영 (1) 관리자 08-28 1289
979 때가 되었다 / 박판식 관리자 08-28 1323
978 결빙의 아버지 / 이수익 관리자 08-25 1591
977 풋사과의 비밀 / 이만섭 관리자 08-25 1522
976 펄펄 / 노혜경 관리자 08-24 1500
975 필요한 사람 / 노준옥 관리자 08-24 1559
974 바람은 알까? / 안행덕 관리자 08-22 1880
973 배롱나무 / 조두섭 관리자 08-22 1630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