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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4-12 11:11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885  

입김

 

박서영

 

 

하얗게 귀가 얼어서

기다림은 늘 기다리는 일밖에 할 줄 모르고

나는 기다림 곁에서 어른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봄이어서

목련은 하얀 총구를 겨누지만

내게는 그것도 따스한 화구(火口)여서

그 곁에 쭈그리고 앉아 살고 싶었다

문득

, 귀는 먼 곳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구나

녹아내린 귀는 녹아버려서 울음이 되었다

꽃 피는 소리로 위로를 받았다가

꽃숭어리 떨어지는 고통이 귓가에 맺힌다

불타는 귀를 잘라

죄책감을 넣어둔 상자의 손잡이로 만들어야지

열기에 휩싸인 마음은 귀로 열고 귀로 닫아야 해

소리를 내면 안 되지

울음은 사랑을 분해해 버리니까

자꾸 울어서 모두 떠나는 거니까

여자야, 홀수와 짝수처럼

눈물을 셀 수 있을 만큼만 사랑하렴,

목련나무 곁 돌멩이 밑에

달팽이와 지렁이와 뱀이 살고 있다

그들은 소리죽여 우는 걸 알아

돌 위에 떨어져 있는 목련꽃숭어리 셋

핏줄이 다 튀어나온 돌멩이의 붉은 귀에

입김을 불어넣고 있는

나비 한 마리

입김이 만든 무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잘게 조각난 선물들이 쏟아지지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 산산조각이

기억이라는 걸 알아

 

-현대시2017.4월호

 

 

parksuhyoung-150-1.jpg

 

경남 고성 출생

1995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 『좋은 구름

3회 고양행주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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