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문학가 산책
  • 오늘의 시

 (관리자 전용)

 
☞ 여기에 등록된 시는 작가의 동의를 받아서 올리고 있습니다(또는 시마을내에 발표된 시)
☞ 모든 저작권은 해당 작가에게 있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작성일 : 17-05-18 09:49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41  

지하 이발관

 

김광기

 

 

이십 리 길이 넘는 면내에 있던 이발관,

꼭 같은 이발관이 시장 골목길 지하에 있다.

퀴퀴한 냄새, 내 유년의 구석에서 피는 곰팡내와

알싸한 비누냄새에 현기증이 난다.

뿌연 거울이 비추고 있는 허름한 의자와

절단된 공간을 툭 툭 치며 돌고 있는 시계바늘,

늙은 이발사는 째깍 째깍 모데라토 가위질을 하고 있다.

평생을 가위질하며 지낸 장인의 몸짓이다.

겁 없이 물 밖을 꿈꾸는 지느러미 같은 머리뭉치가

그의 손아귀에서 움씰거리다가 잘리고 있다.

기다리는 손님이 있든 없든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한 올 한 올 신중하게 째깍 째깍,

물비늘처럼 일어선 머리카락을 자른다.

마무리 끝에 옷을 털던 그가 비눗물 거품을 내고 있다.

어깨에 올려놓은 신문지 조각이 떨리고 있다.

그의 칼질은 망설임이 없다. 사각사각 소리 들린다.

오돌토돌 돋아 있던 기억들까지 빈틈없이 잘린다.

잘린 꿈과 자유, 시퍼런 기억들이 물에 씻긴다.

지하에선 젖은 것들이 잘 마르지 않는다.

사각비누로 감은 머릿결, 빳빳하게 일어선다.

 

-《현대시학200411월호

 


[김광기사진최근.jpg

 

1959년 충남 부여 출생

동국대 대학원 문창과 석사, 아주대 대학원 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1995년 시집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를 내고 월간문학다층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호두껍질』『데칼코마니』 『시계 이빨

저서 존재와 시간의 메타포』 『글쓰기 전략과 논술

1998년 수원예술대상 및 2011년 한국시학상 수상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오늘의 시 등록 관련 안내 관리자 07-19 21428
863 5의 기술 / 최서진 관리자 09:13 42
862 예니세이 강가에 서 있었네 / 박소원 관리자 09:05 39
861 가장 멀리서 오는 지금 / 임 봄 관리자 05-22 152
860 동행 / 이진욱 관리자 05-19 317
859 얼룩의 자세 / 정다인 관리자 05-19 240
858 중심 / 이기와 관리자 05-18 319
857 지하 이발관 / 김광기 관리자 05-18 242
856 상수리묵 / 문동만 관리자 05-17 278
855 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 박노해 (1) 관리자 05-17 338
854 몸성희 잘있거라 / 권석창 관리자 05-16 328
853 내 가방 속 그림자 / 유현아 관리자 05-16 312
852 호상 / 이명우 관리자 05-15 379
851 그릇 / 안도현 관리자 05-15 418
850 작고 오래된 가게 / 박승자 관리자 05-12 500
849 수덕여관 / 나혜경 관리자 05-12 433
848 춤추는 나무 / 주영헌 관리자 05-11 516
847 기하 / 강윤순 관리자 05-11 401
846 얼굴로 둘러싸인 방/ 권기덕 관리자 05-10 482
845 독백 / 고은산 관리자 05-10 479
844 먼 곳의 옥상 / 구효경 관리자 05-08 558
843 뜰채 / 구광렬 관리자 05-08 519
842 백년모텔 / 채상우 관리자 05-04 679
841 생각한다고 되는 일 / 박찬일 관리자 05-04 692
840 반성 99 / 김영승 관리자 05-02 681
839 살다가 보면 / 이근배 관리자 05-02 774
838 누들 로드 / 김택희 관리자 04-28 786
837 구겨짐에 대하여 / 박제영 관리자 04-28 817
836 금강경을 읽는 오월 / 정동철 관리자 04-27 798
835 유리 공장 / 이영주 관리자 04-27 725
834 고인돌별자리는 5천년 전부터 너를 기다린다 / 박제천 관리자 04-26 736
833 사랑한다는 말 1 / 박 용 관리자 04-26 901
832 목백일홍, 그 꽃잎을 / 고영서 관리자 04-25 830
831 고추를 좋아하는 여자 / 이병옥 관리자 04-25 782
830 파천금 / 김길녀 관리자 04-24 761
829 꽃나무 / 이동순 관리자 04-24 859
828 편난운 / 최형심 관리자 04-21 937
827 평강이에게 / 박순호 관리자 04-21 839
826 수상한 계절 / 이권 관리자 04-20 1006
825 미아의 시간 / 김윤환 관리자 04-20 876
824 詩作法 / 김점미 관리자 04-19 929
823 빨래 / 김언희 관리자 04-19 943
822 역 / 김승기 관리자 04-18 975
821 너는 내게 너무 깊이 들어왔다 / 곽효환 관리자 04-18 1058
820 하늘에서 피워 올리는 꽃 / 최승철 관리자 04-17 1033
819 이별의 고고학 / 조현석 관리자 04-17 959
818 사과 / 김금용 관리자 04-13 1295
817 소폭의 제왕 / 박미산 관리자 04-13 1031
816 지나가는 말 / 이수명 관리자 04-12 1267
815 입김 / 박서영 관리자 04-12 1088
814 무허가 / 송경동 관리자 04-11 1126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