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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전용)
☞ 舊. 이달의 시인
 
☆ 문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중견시인의 대표작품(自選詩)을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7-31     조회 : 173  



조연향 시인을 8월의 초대시인으로 모십니다

조연항 시인은1994년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2000시와 시학으로 등단하였습니다

시집으로1초소 새들 날아가다, 오목눈숲새 이야기』 『토네이토 딸기

저서김소월 백석 민속성 연구등이 있습니다

 

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출강, 육군사관학교 문예창작지도를 맡고 계시며

정기적으로 시마을 우수작 심사를 해 주시는 등 시마을 발전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조연향 시인의 좋은 시와 함께 건강한 여름 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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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의 나날 외 9편 / 조연향



 

한 청년이 모래 속으로 사라졌다

 

아무 일 없는 하루하루, 맘껏 복면을 쓰고 맘껏 사막을 뒹굴고 싶어서

하얀 구름을 맘 편히 쓰러뜨리는 곳으로 순례를 떠났을까

 

황사가 불어가는 쪽으로 자욱이 까마귀 떼가 날아가고 있었다

 

그가 떠난 뒤

동네에서는 동백꽃들이 무더기로 뚝뚝 떨어졌다고 한다

 

입속의 먼지 알갱이처럼 서걱거리는 나의 권태와 테러가 그 그림자를 따라갔다

 

한 번도 가지 못한 어느 국경 근처에서 그를 놓치고 말았지만

눈 코 입을 지운 얼굴들이, 사라진 이름들이

 

검은 가면을 쓴 얼굴들이

뛰어가는 것을 설핏 익숙한 골목에서 자주 마주치기도 했다

 

제 속의 테러가 스스로를 견디지 못하고 참수당하는 봄날 저녁

 

모래바람이 거대한 날개를 펴고 밀려오고 있었다

 

 



꽃이 꽃을 건너는 동안

- 황매실

 

 

깊은 산골입니다 눈 내리고 산그늘이 지면

꽃잎마다

 

푸른 잎의 우산을 받쳐도 온몸이 흠씬 젖습니다

초인의 눈 속으로 운석이 흘러드는 밤

뻐꾹, 구름이 울어대고 마을에 또 무슨 일 터졌나요

천둥이 깨지고 바닷물 뒤집혀도 호랑이 이빨 자국 지우듯 정신 차려 팔랑입니다

수상한 그늘이 펄럭이고, 강물이 넘쳐흐르는 동안

제 생을 익히듯 꽃은 속내를 익힐 뿐입니다

 

꽃이 꽃을 건너는 동안,

새콤한 속내를 생각하는 동안

 

어느 날은 누군가 매화꽃 그늘에 와서 밀어를 흘리고 가고

또 어느 날은 얼굴 없는 시체가 썩어 문드러진다고

새들이 천둥 속에서 그렇게 퍼덕거렸던가요

 

배꼽부터 물들이는 돌연변이의 봄밤도 미친 명약입니다

솜털이 보숭보숭한 꽃열매인들 나뭇가지에 앉아

 

땅의 일들을 못 보았겠습니까

누가 저 꽃벌레를 살해했는지 꽃벌레가 스스로 목을 매었는지

 

번개가 지나도 바람은 묵비권입니다 알 수 없는 염병이 홀연히 산비탈을 휘돌아가고,

풀리지 않는 의문처럼 달빛은 원시림입니다 끝내 가보지 못해도 눈에 선한 그 마을의

서사가 새콤하게 한 문장으로 익었습니다

 

 

 

  

참나리꽃

 

 

 

점박이 무당벌레가 점 점 점 볼따구니에 불침을 놓고 간 자국

 

울타리에 머리 숙인 채 숨소리도 내지 않았고 흔들리지도 않았다

 

여름 밤 낮 햇빛과 어둠의 비늘을 번갈아 입고

 

몽타주처럼 활짝 핀 아수라로 뛰쳐나와 아주 잠깐 현현하듯 활짝

 

그리고 다시 어둠 속에 사라져버렸다

 

사랑한다는 뜻도

 

슬픔의 파닥임도 원한의 향기도 아닌

 

나비 한 마리 찾아 헤매고 있는 그것

 

그 상징이 오늘

 

밤바람 스치듯 살짝 꽃의 뒤쪽으로 숨어들었다

 

 

 

 

 

질마재 신화를 읽다가

 

 

 

  깜박, 조는 사이 주전자 속 결명자 고개 숙인 채 까만 잿불이 되었다

 

  초록 다홍의 잿불 한 청춘이 오들오들 앉아 떨고 있었다 훌쩍 한 남자 사라져버린

고갯마루 금서의 시간 넘어오듯 매운 연기 자욱하게 내 눈앞을 가리고

  붉맑은 결명자 차 한잔 마시면 설핏 보았던 옷자락 만질 수 있을까 질마재에서 들었던

헛기침 소리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설까 진눈깨비 털어내며 겨울새가 날아가는

저녁나절

 

  지난 몇 생의 문돌쩌귀를 열어본다 단 한 번 누구에게도 보인 적 없는 초록의 상처 다홍의

아픔을 머금고 귀밑머리 풀리운 채 앉아 있는 신부의 첫 마음으로 한소끔 다시 결명자 차를

끓인다

 

 

 

 

 

 

 

 

 

 

숲 속의 전야 2

 

 

 

슬럼가를 둘러싸고 올리브나무 팔랑댄다 흑인남자 가슴을 어루만지며 춤을 추고 싶었을까

물오리 떼 화약을 게워내며 호숫가를 휘젓는다 어바나 샴페인 호숫가

샴페인 맛처럼

화약 냄새 싸아하게 밤하늘에 번지는데

더 뜨겁게 점화해야 할 불빛 너머 내 사랑, 저기

폭죽이 한 송이 꽃이라면

저 얼굴 검은 빛도 무성하게 피어나는 푸른잎이라네

 

-내일은 독립기념일, 엄마새 당신도 독립하세요-

 

아기 까마귀들 연기를 물고 투덜투덜 짖고 있었다

축포를 쏘아 올리며 몰려다니는 발자국 소리

 

-경찰과 흑인들이 사타구니에 총을 숨기고 있어요-

 

담쟁이넝쿨이 할렘가를 뒤덮고 있는 그곳,

 

까만 유리 눈망울 굴리며

한 여자 흉상처럼 서서 아가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밤에는 흑인, 낮에는 경찰이

화약 연기 자욱이 서로를 포위하고 있어도 내일은 독립기념일

반딧불이 제 궤도를 태우며 날아다니고,

독립하지 못한 어미새 까마귀들이 나뭇가지 위에서 매캐하게 울고 대륙의 저녁은 발열하듯 들썩인다

 

 





 

사이를 지나갔다

 

 

 

하모니카 울며 지나갔다

앙상한 귀뚜라미 울음이 찌르르 퍼져 나가고 목에 매달린 동전 상자는 오히려 고요했다

 

반쯤 눈 내리깔아 졸던 나는

그 소리를 바라보았으나 서로의 눈빛 건너뛰었다

 

전철 바닥에 비친 얼굴 위 점을 치는 지팡이

톡톡 어둠을 허공에 들어올리며 통로를 지나갔다

 

보이지 않는 길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갔다

젖은 어깨와 마른 어깨 사이 물고기 지느러미를 밟고

오래전부터 지나갔던 길

 

이미 정해져 있었던 사잇길을 찾아 약수역에 서는 전철

반복되는 순서와 질서 사이 바깥의 불빛들이 뒤로 비켜섰다 백양나무 가로수들이 멀어지거나 할 때,

 

철벽을 울리며 귓속을 달리는 캄캄한 소리

내 눈뜬 소경이 울음소리 따라가다 덜컹 넘어지고 만다

 

눈꺼풀로 밀어내지 못했던 눈물이 지팡이를 타고 흘러내리는데,

 

지하터널을 연주하는 하모니카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지하터널

보이지 않는 길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갔다

 

 

 

 

 

 

 

저녁의 지구

 

 

 

  밤을 실은 지구가 빙글 구름의 단층 속으로 빨려들어가는지 내 시야가

  잠시 기우뚱 높은 건물들이 가까스로 지축에 실려서 별이 흐르는 하늘 가까이

끝내 일탈을 할 것 같다

 

  저 강 건너 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지 강풀

몇 포기 이 지반 위의 편편함을 유지하려 몸을 세차게 흔들어대고 있다

 

  물결 속을 천천히 일렁이며 걸어가는 사람들의 그림자 금빛 실타래처럼 가지런히

어젯밤 흉몽의 기슭으로 떠내려간다

 

  마을에 납작하게 엉켜 붙은 채 긴 꼬리별을 흔들며 빙글 한 바퀴 다시 휘돌아가는

저 강 건너 지구의 저녁

 

 

 

 

 

 

 

 

성스러운 사건

 



  골짜기 참나뭇잎들이 하얀 김을 피워 올린다 산비탈에 내 지린내 스며드는 소리

  성과 성의 어느 핵심에 닿을 수 없는 배설의 소리

  별들이 숲길을 내려다볼까 가릴 수 없는 허공을 옷자락으로 가리는데

 

  빗방울에 젖은 나뭇가지가 엉덩이를 훔치고 산새들이 구름에서 쏟아질 때

  아차,

  바람이 어깨를 쓸고 지나간다

 

  바위도 자세를 풀고 쉬를 할 때

  달빛에 비치는 바위 엉덩이 얼마나 하얗고 얼마나 색스러울지

  햇빛이 꽃물 든 혀로 핥고 핥으면 얼마나 진땀을 흘렸을지

 

  벗은 아랫도리의 울음이 천연덕스럽게 지리고 천연덕스럽게 얼룩진 족적을 그리며

속수무책 흘러 내려갔다

 

  죽은 산짐승들을 숨기고

  살고자 퍼덕이는 들짐승들을 몰아가는 두렵고도 부끄러운 이 잡식성

  오줌보가 잠시 후련하고 환했던 걸 깜박 잊어버렸다

 

  눈발에 깨어나는 새벽 설산이거나

  저녁 종소리 흩어지던 화계사 마당에서 올려다보았던 백운대 산봉우리이거나

 

  은은하게 후끈거리는 우윳빛 사건에, 잘못한 것 없는 큰 잘못에, 턱 숨이 멎는다

 

 

 

 

 

 

 

 

여우골 소년

 

 

 

대여섯 중의 한 소년이 내 옆으로 다가온다

내 눈의 그림자를 들여다보며

쉬는 시간 자전거를 타고 나를 만나러 오겠다던,

이 구릉에서 같이 놀자고 하던

그 아이 그림자가 비자나무 새순처럼

나뭇가지 가지마다 올라타 야후우 소리친다

 

치르릉 자전거 종소리 여우골에 울러 퍼지고

진해시장에 생선 팔러간 어머니와

공장에 일하러 간 아버지를 바라보며

타잔처럼 나무 위에 올라타 있는 그 아이의 그림자

 

아홉 꼬리 숨긴 내 가슴속으로 소년의 자전거 여우골 울리며

이 소도시의 뒷길을 가로지르며 저기 온다

 

둘째 시간과 셋째 시간 사이

줄 지어선 저 아래 가로수 잎 뒤로 한 아이 팔랑거린다

경찰관이 되어 세상의 싸움을 말리겠다던

아이는 오지 않는데

시간은 저녁 무렵으로 옮겨가고

공장의 연기를 마시며 오리나무 숲은

그을음을 떨치며 더 푸르게 키를 키운다

 

자전거 종소리 여우골에 자꾸만 울려 퍼지고

타지, 타지마할 같은 타지에서 온

아홉 꼬리 여우를 숨긴 나와 어떻게 눈이 맞았을까

심심해 보인 나를

내일 꼭 만나러 오겠다고 했던 그 소년

 

 

 

 

 

노을 밀어 넣기

 

 

 

태양 가까이에서 새가 울었다

길을 잃었다가 겨우 찾아든 비망록 앞에서

오래되지 않은 음각들을 읽어 내린다.

비를 맞고 싶고 바람을 쬐고 싶지만

어떤 틈새도 철저히 차단되어 버렸다

혹시 새싹이라도

벌레라도

나방이라도 날아오를까 봐

까만 대리석으로 어둠을 꽉 채우고 진공포장을 해 버렸다

바람이

계곡 저 너머로 노을 한 자락 밀어 넣는다.

외로운 유골일수록 햇빛에게 쉬이 도굴 당할 수 있으니

죽음을 도둑맞을 수 있으니 굳게 눈꺼풀이 심장이 고이 잠들 수

있을 만큼 두껍게 잠가야지

속의 관 하나 무사히

다 가두었다고 생각한 다음에야 큰 아량처럼

꽂아 놓은 백합 한 다발

언젠가 네가 보이는 창가에 꽂아 두고 싶었던 꽃이

너의 뼈 바깥에서 고개 떨구고 있다

묻어도 도굴되고야 말 그 죽음의 길은 지는 태양만이 알까

네 기억은 이제 슬픔이라든가 느닷없음을 망각한 채

낯선 길들을 산책해야 하리라

숲 덤불을 헤치고

더 이상 돌아갈 길을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일

슬픔도 하나의 격식일 뿐 네가 누워 있는 납골당에 오면

하나도 슬프지 않다

 



======================

조연향

 

경북 영천 출생 1994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 2000년 시와 시학 등단, 경희대 국문학과 박사졸업,

시집 1초소 새들 날아가다, 오목눈숲새 이야기』 『토네이토 딸기저서 김소월 백석 민속성 연구한국시인협회 회원, 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출강, 육군사관학교 문예창작지도

 

 

허영숙 (18-08-01 12:04)
반갑습니다. 조연향 시인님
시인님의 좋은 시를 여기서 다시 만나뵙습니다

시집 <토네이토 딸기>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주신 9편의 시, 감사히 읽겠습니다
향일화 (18-08-01 20:42)
조연향 시인님 반갑습니다
시원한 언어의 샤워를
무더운 날씨에 즐길 수 있도록
좋은 시를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임기정 (18-08-06 18:32)
조연향 시인님
무더운 날씨 좋은 시 들고 시마을 방문 하시어
무지 무지 환영합니다.
아주 고소하고 맛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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