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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전용)
☞ 舊. 이달의 시인
 
☆ 문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중견시인의 대표작품(自選詩)을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9-03     조회 : 214  



9월의 초대시인으로 윤성택 시인을 모십니다

윤성택 시인은 2001년 《문학사상》등단하여

시집 『리트머스』『감(感)에 관한 사담들』
산문집『그 사람 건너기』등을 출간한 바 있으며,

2014년 제10회 한국시인협회 젊은 시인상을 수상하는 등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윤성택 시인의 따뜻한 시편들과 함께 아름다운 가을

열어가시기 바랍니다

==============================

 

 

홀씨의 나날 외 9편 / 윤성택

 

 

새벽부터 골목 구석구석

햇살이 날렸다

허리띠를 맨 끝까지 채웠던

사내는,

뿌리처럼 툭 불거져나온

속옷을 쑤셔넣었다

틈만 나면 살고 싶었다

공사장 보도블록 사이

가는 목 하느작거리는

홀씨 하나

어쩌자고 이곳까지 온 것인지

바람이 지나칠 때마다

현기증이 일었다

벽돌을 짊어진

백짓장 같은 날들,

사내는 후들거리며

벽돌을 지고

일어서고 있었다

 

 

 

 

 

스테이플러

 

 

기차는 속력을 내면서

무게의 심지를 박는다, 덜컹덜컹

스테이플러가 가라앉았다 떠오른다

입 벌린 어둠 속,

구부러진 철침마냥 팔짱을 낀 승객들

저마다 까칠한 영혼의 뒷면이다

한 생이 그냥 스쳐가고

기약 없이 또 한 생이 넘겨지고

아득한 여백의 차창에

몇 겹씩 겹쳐지는 전생의 얼굴들

철컥거리는 기차는 멈추지 않는다

촘촘한 침목을 박으며

레일이 뻗어간다

 

 

 

 

 

산동네의 밤

 

 

춥다, 웅크린 채 서로를 맞대고 있는

집들이 작은 창으로 불씨를 품고 있었다

가로등은 언덕배기부터 뚜벅뚜벅 걸어와

골목의 담장을 세워주고 지나갔다

가까이 실뿌리처럼 금이 간

담벼락 위엔 아직 걷지 않은 빨래가

바람을 차고 오르내렸다

나는 미로같이 얽혀 있는 골목을 나와

이정표로 서 있는 구멍가게에서 소주를 샀다

어둠에 익숙한 이 동네에서는

몇 촉의 전구로 스스로의 몸에

불을 매달 수 있는 것일까

점점이 피어난 창의 작은 불빛들

불러모아 허물없이 잔을 돌리고 싶었다

어두운 방안에서 더듬더듬 스위치를 찾을 때

나도 누군가에게 건너가는 먼 불빛이었구나

따스하게 안겨오는 환한 불빛 아래

나는 수수꽃처럼 서서 웃었다

보일러의 연기 따라 별들이

늙은 은행나무 가지 사이마다 내려와

불씨 하나씩 달고 있었다

 

 

 

여행

 

 

여정이 일치하는 그곳에 당신이 있고

길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시간은 망명과 같다 아무도 그

서사의 끝에서 돌아오지 못한다

그러나 끝끝내 완성될 운명이

이렇게 읽히고 있다는 사실,

사랑은 단 한 번 펼친 면의 첫줄에서

비유된다 이제 더 이상

우연한 방식의 이야기는 없다

이곳에 도착했으니 가방은

조용해지고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다

여행은 항상 당신의 궤도에 있다

 

 

 

 

 

안개

 

 

밤이 그치고 숲의 깊은 곳까지 서걱거리는 안개가 불빛을 들이마신다

 

구부정한 가로등이 알약 속으로 들어가

어둡고 투명한 병을 만나면

고통도 잠시 별이 될 수 있을까

 

아침은 불면(不眠) 밖이 만져져 까칠하다

 

메말라 갈수록 잎 하나에 더 집착하는 화분 앞에 섰을 때

모든 길은 내가 가보지 않은 날들에 가서 시든다

 

책장 안에서도 맨홀 안에서도

어느 바람 속에서도

이대로 끝나간다는 불안이 말라가는 동안

나에게만 전하기 위해

그때 그 잎이 창문을 떼어낸다

 

터널 같은 안개 속에서 무시로 미등이 다가와

충혈을 불리며 무게 없이 둥둥 떠다닐 때

죽은 우듬지 촉수에서 정전기가 이는 상상

 

잊혀진 폐가에서도 새벽엔 사람이 모인다

아직 사라지지 않는 안개에 묻혀 있는 낙엽들이

나무를 향해서 수액을 밀어 보냈을 뿐

 

그 살아 있는 순간을 위해 나는 아직 떠나지 못한다

알약 속에 켜져 있는 안개,

창틀에서 뻗어온 가장 시든 잎이 숨을 몰아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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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먼 생각이 깊어져

봄꽃들이 핀다고

그렇게 믿은 적이 있다

 

잎잎의 주파수를 열어 놓고

가혹한 지구의 들판에서

뿌리가 흙 속을 가만히 더듬을 때

 

화성에는 탐사로봇 스피릿이 있다

다 닳은 드릴이 바닥에서 헛돌고

무섭게 휘몰아치는 돌풍이 불어와도

교신을 끊지 않는다

 

카메라 속 황량한 표면,

암석의 촉감이 데이터로 읽혀온다

길을 걷다 문득

까닭 없이 꽃을 만져보고 싶다

 

아무 생각이 나질 않고 다만 멍하니 멈춰

나는, 송수신이 두절된 탐사로봇처럼

결함을 복구하느라 껐다 켰다를 수십 번 반복하는

누군가를 떠올려본다

 

꽃의 향기에 취해 아뜩한 내가 들여다보는

나의 마음은 누구의 선택이었을까

 

햇볕이 내리 도달하는 이 봄날,

다운로드 되듯 옮겨온 생각이

혼연일체의 새순에 돋는다

 

 

 

 

 

 

적막이 빈틈을 스산하게 훑는다

감기약을 삼키고 자리에 누우니

약기운이 퍼진다, 이럴 때는

통화권을 이탈한 휴대폰처럼

혹사한 몸이 나보다 더 외롭다

 

생각을 비울 수는 없어

스위치란 스위치는 다 켜두고

서러운 미열이 잠시 편두통에서 운다

소음과도 같은 그 막막한 자리에

마음은 자꾸 몸을 놓친다

 

몸이 아프고 떨리는

꿈속의 창들은 칸칸마다 환하여

붕 떠 있는 듯 공허하게

숭숭 뚫린 인광(燐光)을 뿜는다

 

쉬쉬, 자꾸 바람이 분다

들숨과 날숨은 이제 내 것이 아니다

뒤척이면 뒤척일수록 상한 몸속에서

하모니카 소리가 난다

 

 

 

 

 

 

오늘의 커피

 

 

갓 내린 어둠이 진해지는 경우란

추억의 온도에서뿐이다

 

커피향처럼 저녁놀이 번지는 건

모든 길을 이끌고온 오후가

한때 내가 음미한 예감이었기 때문이다

 

식은 그늘 속으로 어느덧 생각이 쌓이고

다 지난 일이다 싶은 별이

자꾸만 쓴맛처럼 밤하늘을 맴돈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 해도 우리는

각자의 깊이에서

한 그루의 플라타너스가 되어

그 길에 번져 있을 것이다

 

공중에서 말라가는 낙엽 곁으로

가지를 흔들며 바람이 분다

솨르르 솨르르 흩어져 내리는 잎들

가을은 커피잔 둘레로 퍼지는 거품처럼

도로턱에 낙엽을 밀어보낸다

 

차 한 대 지나칠 때마다

매번 인연이 그러하였으니

한 잔 하늘이 깊고 쓸쓸하다

 

 

 

 

 

타인

 

 

야경은 십자 모양의 홈을 내고 추위를 조인다

한쪽으로만 들이치던 눈발은 그칠 줄 모르고

카메라 액정 같은 창문에는 불면이 저장된다

 

귓불처럼 붉은 연애를 생각했다면

그 밤길은 단단한 다짐들로 번들거려야 한다

기어이 가지 하나 더 내기 위해 언 땅속

플러그를 꽂는 나무는 초록빛 그을음이 가득한데

나는 고작 타다만 연민을 들쑤셔 어두워질 뿐이다

 

시베리아의 숲이 일제히 바람에 쓸려와

자작나무처럼 하얗고 빽빽한 새벽,

조여질 대로 조여진 한기는

유리창에서 헛돌며 성에를 새긴다

 

아름다운 건 차라리 고통스럽다

이 견딜 수 없는 순간은 이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단풍나무를 물들이는 고요의 시간이다

 

유화처럼 덧바른 기억이 말라

부스러지고 그 색들이 먼지가 되어버린 지금,

사랑은 타인이라는 대륙을 건너는 혹독한 여정이다

만년설 속에서 발견되지 못한 당신의 유적이다

 

발목이 빠지고 허리까지 차오르는 이 고립은

누구도 들어서지 않은 외로움의 지대

가까이 왔다가 그대로 사라져가는 헬기를

멍하니 돌아보는 조난자처럼 나는 적막을 껴입고

이 폭설을 뜬눈으로 지나야 한다

 

 

 

 

막차

 

 

밤이 길을 보낸다

속도와 속도의 빛줄기는

텅 빈 시간 속에서 쉴 새 없이

먼지로 흩어진다

길의 끝에는 내가 기억하려한

저녁이 있을 것이다

뒤돌아보면 생은 위태로우나

그저 쓸쓸한 점멸로

길 위를 추억할 뿐이다

나는 멀리서 이 밤을,

이제 막 당신을,

통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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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택 시인 주요 약력


1972년 충남 보령 출생
2001년 《문학사상》등단
시집 『리트머스』『감(感)에 관한 사담들』
산문집『그 사람 건너기』

2014년 제10회 한국시인협회 젊은 시인상

노트24 (18-09-04 06:45)
나도 누군가에게 건너가는 먼 불빛이었구나
따스하게 안겨오는 환한 불빛 아래
나는 수수꽃처럼 서서 웃었다

모든 시가 하나의 스토리가 되어
마음에 안깁니다

모두 영상으로 만들고 싶고 아마도
그러지 싶습니다

최근 깊은 상실감과 허탈감이
밀려와 우울하던 때
비슷한 취향의 친구를 만난 듯
반갑고 위로가 됨니다

가을속을 걸어 오신 시인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허영숙 (18-09-04 11:23)
반갑습니다. 윤성택 시인님
오랜 팬으로 여기서 다시 시를 뵙게되어 영광입니다^^
임기정 (18-09-04 21:38)
무지 반갑습니다 윤성택 시인님
좋은시 아주 맛있는 시 읽게 되어 너무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향일화 (18-09-05 14:33)
윤성택 시인님의 귀한 옥고를
시마을 뜨락에서 만나게 되니 기쁩니다
가을의 감성으로 스며드는
맛깔스런 언어의 향기에 머물러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노트24 (18-09-08 11:06)
시인님 이젠 냉커피보다
따스한 커피가 좋은 계절

오늘의 커피/윤성택

부족하나마 영상시방에
영상 올렸습니다

간만에 작업이다 보니
아쉬움이 있지만
이쁘게 보아주세욥

감사합니다
서피랑 (18-09-08 11:10)
멋진 시인님이 오셨군요, ^^
좋은 시편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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