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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전용)
☞ 舊. 이달의 시인
 
☆ 문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중견시인의 대표작품(自選詩)을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7-06-02     조회 : 638  



  시마을 2017년 6월의 초대시인으로 박정원 시인을 모십니다.

 박정원 시인은 충남 금산에서 태어났고, 1998년『시문학』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집으로 『그리워하는 사람은 외롭다』, 『꽃은 피다』, 『내 마음속에 한 사람이』,
『고드름』, 『뼈 없는 뼈』, 『꽃불』을 발간하였으며,
제7회 ‘시인정신작가상’과 제10회 ‘푸른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현재 다음 카페에 ‘함께하는 시인들’을 운영하면서 ‘함시동인’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의 다섯 번째 시집 『고드름』에서 정호승 시인이 “박정원은 물의 시인이다”라고 규정한 바 있는데
 여섯 번째 시집 『뼈 없는 뼈』에서도 황상순 시인이 ‘물의 시인’이라 평한 바 있습니다.
시인은 전통 시의 문법과 실험시의 새로움 사이에서 길항하면서
열거와 병치, 패러디, 행 걸침 등 다양한 기법으로 개성적인 시세계를 펼치고 있는 등
시단에서는 시인을 일컬어 《물의 시인》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박정원 시인과 함께 푸른 6월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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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힘

박정원


꺾은 장미를 화병에 꽂아놓은 이튿날 저녁
화병 속의 물이 모두 사라졌다
잘라내려는 가위의 힘보다 잘리지 않으려고 버티던 힘이
체념보다도 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던 끈끈함이
여기저기 화병 속 밑바닥에 눌어붙어 있다
살려고 바동거린 마지막 혈흔이리라
꽃보다 가시 색깔이 더 짙은 것으로 보아
피맺힌 절규는 저리 시뻘겋다 못해 날카롭다
여기까지가 내 길의 끝인가 알기라도 한 듯
목 떨군 향마저 깊다
죽음도 힘이 필요한 걸까
그러쥐었던 꽃대궁 색깔 또한 검붉은데
속 전부를 드러낸 장미의 힘이 핏빛으로 얼룩졌다면
얼룩진 핏빛 메마르도록 내몬 힘 또한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하는 일
죽지 않으려는 힘을 보듬고 있던 화병이
더 허허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마른 꽃처럼 부귀영화가 바삭거릴 때
폈던 주먹을 다시 쥐어본다 



고드름

박정원


예리하지 않고서는 견뎌낼 수 없는 오기였다
가장 약한 것이 가장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밤마다 처마 밑에서 울던 회초리였다
거꾸로 매달려 세상을 볼 수밖에 없던 날카로운 송곳이었다
냉혹하게 자신을 다스릴수록 단단해지던 회한이었다
언제 떨어질까 위태롭다고들 했지만
그런 말들을 겨냥한 소리 없는 절규였다

복수하지 마세요 그 복수의 화살이 조만간 내게로 와
다시 꽂힙니다

절 마당엔
노스님이 가리키던 동백꽃 하나 투욱, 지고

이쯤에서 풀자 내 탓이다 목이 마르다
처마 끝에서 지상까지의 거리를 재는 낙숫물 소리

결국엔 물이었다
한 바가지 들이켜지 않겠는가



열무밭에서


박정원


떡잎 갓 벗어난 아기열무들 사이로
서릿발 들어선다
퉁퉁 불은 엄마 젖을 맘껏 먹어야 할
그 어린것들에게 몸을 낮춘다
여린 이파리를 들추자
흐느끼느라 말을 잇지 못하는 열무

누가 놓고 갔는지 천국영아원 골목엔
아기 혼자 포대기에 안긴 채 울고
열무씨앗처럼 또박또박 눌러쓴 편지
아이를 잘 키워주세요 제발 부탁합니다
연락처도 없이 사라진 아기엄마는
철도 모르고 열무씨를 묻었던
내 속 같았을까

돌아가는 모퉁이엔 온통 대못만 박혔으리
다시 그 젖은 사랑을 그리워할 저녁
꽁보리밥에 여린 열무를 썩썩 비벼먹으며
고추장 같은 한숨을 떨어뜨릴까

너무 늦게 심은 열무밭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박정원


누가 나를 제대로 한방
먹여줬으면 좋겠다
피가 철철 흐르도록
퍼런 멍이 평생 지워지지 않도록
찡하게 맞았으면 좋겠다
상처가 깊을수록
은은한 소리를 낸다는데
멍울 진 가슴 한복판에 명중해야
멀리멀리 울려 퍼진다는데
오늘도 나는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서쪽 산 정수리로 망연히
붉은 징 하나를 넘기고야 만다
징채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제대로 한번 울어보지도 못하고
모가지로 매달린 채
녹슨 밥을 먹으면서



완주(完奏)

박정원


  물속에서 피아노를 치기는 처음
  건반을 터치할 때마다
  맺힌 소리들이 방울방울
  솟아오른다

  마름 줄기 사이로 성량 풍부한 알토 참붕어 벙긋벙긋 고놈 참 입 모양도 예쁘게 소리방울 굴린다 물속으로 뛰어든 개구리 여기서 개 저기서 굴, 개굴개굴 받더니 개구리밥 쪽으로 패스 물거울 속 산 그림자 언제 내려왔는지 몸을 배배 꼰 나사말을 한번 툭 치고 소금쟁이라고 물 위를 걷기만 하나 왼발 오른발 번갈아 토스 토스 킥킥킥, 도넛처럼 허리를 구부린 미꾸라지가 되돌아가라는 신호를 보내자 화들짝 놀란 물방개 다시 한 바퀴 팽그르르 돌고 도는 소리방울 여러 알 주운 거머리가 이음줄로 요리조리 태댕탱탱

  소리 없이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똥을 좇다가 다시 연못 속으로 풍덩 빠지고 만다
  아하하하 우습다
  하늘도 두 쪽이 나는구나

  그들은 하나같이 내 연주의 협연자
  고여 있던 소리들이 죄다 날아갔다

  다음 연주를 위하여 물비늘이 파르르르 지워버리고 사라진다



크리스마스이브의 백석

박정원


남편을 잃은 여자와 아내를 버린 남자가 커피 볶는 집에서 백석을 읽는다

소나무부부가 손을 꼬옥 잡고 드센 바람도 좋아라 유리창 밖에서 응앙응앙 울고

가는 눈이 간간이 뿌려지는 전봇대에 앉아 갓 볶은 커피 향을 기웃거리는 직박구리 한 마리

강 건너 저편엔 천국행 열차가 산 그림자를 끌어내려 굼벵이처럼 지나가고

서서히 지워지는 마을들
하나 둘씩 불이 켜지는 만주 벌판의 집들

여자는 말없이 백석과 동침하려 이불을 펴고
마침내 도착한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연신 스마트폰에 담아내는 남자

당신에게로 가는 길이 세상한테 지는 길이라네 내가 좋아서 버리는 거라네

눈도 푹푹 나리지 않는데 도무지 일어설 생각을 않는다


 
동심초

박정원


어머니 가슴에 맺힌 종양을
병원에서 덮어버린 그날부터
아버지는 곡기를 끊으셨다
아버지,
어머니 가시던 날 아침
어머니보다 먼저 꽃잎처럼 지셨는데
사막이란 사막은 죄다 우리 집으로 몰려와
웅성거렸다
꽃 두 송이가 같은 날 같은 시각
사막 한가운데
이슬처럼 맺혔다고
그런데 그 꽃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고



물거울

박정원


   내가 만든 감옥에 물을 붓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물이 여생을 보내야 할 곳입니다.

   금강석으로도 깰 수 없는 유리창입니다. 누구라도 들 수는 있으나 허투루 풀려날 수는 없는 방입니다.

   물구나무서거나 뒤집히지 않고서는 기거할 수 없는 철창입니다. 떠밀어도 흐르지 않습니다. 섬뜩한 고요만이 물의 숲에 빼곡합니다.

   물을 잡기 위해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인화되지 않는 강물은 허물 많은 해안으로 잠입했을까요

   늦었다고 얘기하는 것은 내 그림자와 서먹서먹하기 때문입니다.

   황홀했던 그림자가 파문으로 번집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를 올려다보는 뒤태가 스르르 잠입합니다.

   저 홀로 나오지 못합니다. 내가 보이지 않고서는 마주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내 속의 비경秘境을 속속들이 알고 있습니다.



빗방울로 사는 법

박정원


    그녀를 안아 본 사람은 안다
    그녀가 왜 둥근지를

    지상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나뭇가지를 감고 올라가는 사위질빵의 여린 새순처럼 동그랗게 몸을 마는 그녀

    웅덩이에서 숨을 고른다

    발버둥을 쳐봐도 그녀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허우적거릴 때마다 그녀의 동그라미는 더욱 견고해진다

    나는 동그라미를 빠져나오기 위해
    간사한 내 혓바닥을 동그랗게 말아 동그라미를 애무한다

    내가 즐기는 동그라미를 빠져나오기 위해
    간사한 내 혓바닥을 동그랗게 말아 동그라미를 애무한다

    내가 즐기는 동그라미에 나를 즐기는 동그라미가 침대 위에 겹쳐진다
    둥근 바퀴 하나가 산산조각 내놓고 가면 둥근 그녀의 몸이 산산조각 낸 동그라미를
이내 동그랗게 동그라미를 쳐놓아 또 하나의 바퀴자국을 남긴다

    그녀의 둥근 몸을 닮아가는 나는
    그녀의 달콤한 젖무덤처럼 점점 더 동그랗게 말린다

    그녀와 나는 왜 동등하지 않나
    왜 수시로 동침하면서 함께 살지 못하나

    둥근 그녀를 안으려면
    둥그런 바퀴로 굴러야 한다

    모서리에 찧은 멍이 오래 간다
    각이 진 빗방울일수록 웅덩이 속을 뒤집어놓는다

    바퀴에 눌린 피멍 하나가
    웅덩이 속 하늘을 찢어놓고 간다



뼈 없는 뼈

박정원



내 몸속엔 뼈가 없지 있다면
분해된 ㅂ이나 ㅃ, 그걸 받히고 있는 작대기
아니면 유지내지 보수하느라 애쓰는 ㅓ 또는 ㅕ
강한 것이 아니라 아주 씁쓰름한 소프트아이스크림
단박에 부러지는 감나무가지가 아니라
송곳처럼 쭉쭉 잘도 뻗어가는 수대나무
그것들을 조각조각 꿰매어 조각보로 만들면
쓸모가 참 많지 손수건부터 멋진 머플러까지
후하고 불면 보이지 않던 바람도 보인다니까
신났어, 뼈 없는 찻잔이라나 유리컵이라나
가만히 주워 모아 탁자에 놓으면
끼리끼리 뭔 말들이 그리 많은지
왔던 바람도 잽싸게 창밖으로 물러나곤 하지
뒤집어봐 물이 쏟아지잖아
뼈와 뼈를 이어주는 것도 물렁뼈잖아
물이었군, 내 몸에서 요동치는 것도
뼈가 아니라 뼛속 깊이 채워졌던 눈물이었군
물이나 먹어 라고 말하지 말았어야했군
무심코 내뱉는 말이 곧 뼈였군



허영숙 (17-06-11 19:43)
반갑습니다. 박정원 시인님
주신 시 감사하게 읽겠습니다
미소.. (17-06-13 11:05)
"상처가 깊을수록
은은한 소리를 낸다는데" 이 두 행을 읽으니 윤석호 시인이 「사랑 1」에서 "꽃은 상처"라고 했던 시구가 생각나네요

"서쪽 산 정수리로 망연히
붉은 징 하나를 넘기고야 만다 " 원하는 소리를 내지 못한 실패한 오늘을 마치, 망연히 석양을 떠나보내 듯 은유해서 담았네요, 절창입니다

"징채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제대로 한번 울어보지도 못하고
모가지로 매달린 채
녹슨 밥을 먹으면서" 무능을 체감하는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대목이 아닐까 합니다

피가 철철 흐르도록 퍼런 멍이 평생 지워지지 않도록 찡하게 맞고 서라도 현재를 탈피하고 싶은 강한 의식을 봅니다

올려주신 공감 및 온도 높은 열편의 "시" 감사히 잘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향기초 (17-06-18 06:51)
이쯤에서 풀자 내 탓이다 목이 마르다
처마 끝에서 지상까지의 거리를 재는 낙숫물 소리

결국엔 물이었다
한 바가지 들이켜지 않겠는가

한 바기지
잘 마시고 갑니다~~

물 좀 주소
너래가 생각나네요^^
최정신 (17-06-20 17:14)
"물의 시인" 유월과 함께오신 박정원 시인님!
시마을 문청들에게 시의 길을 인도하는 귀한시
감사히 읽습니다.
손성태 (17-06-21 09:19)
세상에 내 놓으신 옥고를 잘 감상하였습니다.
시마을 후학들에게 시의 길을 밝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박정원 시인님.
건안 건필을 기원드립니다.
향일화 (17-06-21 10:24)
박정원 시인님의 귀한 옥고에 머물러
시의 물주기에 가슴 적시고 갑니다~~
석연황 (17-06-25 23:32)
좋은 시~~ 잘 읽고 갑니다.
한인애 (17-07-05 13:56)
좋은시  읽으며 많이 배우겠습니다.

늦었지만 감사드립니다...한인애올림
임기정 (17-07-05 23:05)
박정원 시인님
잘 버무린 양념에 아삭하게 씹히는
오이처럼 시원하고 맛있게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박해옥 (17-07-07 23:07)
박정원시인님의 시를 읽으니
끼니때 마다 무심코 먹은 밥에게 송구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진정한 시인이란 이렇게 녹슨밥도 먹어야 하는 구나 싶어요
올려주신 옥고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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