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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작성일 : 17-11-29 10:25
 글쓴이 : 최정신
조회 : 245  

정적이 도심에서 길을 잃는다

놓친 발자국 따라

로또 1등 당첨자가 걸린

편의점과 마주친다

달궈진 욕망이 식을 것 같은

아이스커피 대신

펜에서 휘발되는 매직에 영혼을 건다

오아시스의 확률은 믿을만한 것인가

사막을 지나는 독도법이 완성된 순간

천수답 같은 희망을 걸고

하늘을 다시 쳐다본다

수 십 개 숫자의 나열이 영()이 되었을 때

대열 앞부터 사라지는 방향을 본다

허상을 실상으로 그리는 손가락 끝

꾹꾹 눌러쓴 까치 한 마리

날아간다

<까치 날다>

어인 일인지 그의 하늘 위로 까치가 난다. “까치 날다”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종원 시의 까치는, “서울”의 까치인 셈이다. 또한 그것은 현실의 까치가 아니다. 전깃줄의 피복을 벗겨 정전을 일으키게 하고, 수확기의 과일들을 날카로운 이빨로 ‘기스’를 내버리는 천하에 다시없는 해조. 공중 위를 날아다니는 까마귀보다 더 얄미운 까치들이 아니었다. “로또”를 사는 편의점(1등을 배출한) 앞에 늘어선 때 아닌 까치들의 줄. 장삼이사였던 서울의 까치들. 이 시의 화자 역시 그 중 한 마리의 까치였던 것이다. “천수답 같은 희망을 걸고/ 하늘을 다시 한 번 쳐다”보는, 그리고 그 까치들은 이내 “허상을 실상으로 그리는 손가락 끝에서/ 꾹꾹 눌러 쓴” 자신들을 마치고 나서, 한 마리 씩 한 마리 씩 날아오른다. 그렇게 까치들의 대열을 스스로 사라지게 한다. 서울의 골목 속으로, 서울의 하늘 속으로 까치들은 날아간다.

“까치 날다”라는 시의 제목만 남겨 두고서. “검은 매직” 펜의 끝에다 허망한 기대치의 숫자를 그려 넣어 놓고서. 그리고 다만 “로또” 교의 신도들이 되어서.


-신념 혹은 종교적 의미로의 시


당신이 주인 입니다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기다리고 있는,

배고플 때 가져다 쓰고

할 수 있을 때 채워 넣어도 될

교회 앞 사랑의 쌀독입니다

까치를 위해 감나무를 옮겨 심겠습니다

이파리는 모두 떨구었지만

물컹한 붉은 심장, 당신을 기다립니다.

<까치밥>


전남 구례에 면한 섬진강을 따라 하동에 닿는 길 중간 어름에는 전설의 고가 한 채가, 운수 같은 세월의 행간을 건너며 어엿하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운조루. 풍수들은 집터를 일러 금환낙지를 쳐주기도 하고, 누구는 또 아흔 아홉 칸의 건축양식을 구름처럼 피워 올리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건축 양식이라거나 내 외양의 운조루를 살피는 자리가 아니기에 훌쩍 넘어 가기로 한다. 다만 건축물이 아닌 정서라거나 신념으로서의 운조루의 중심에는 ‘루비통’ 같은 메이커로는 비길 수 없는 희대의 명품이 하나 생존하여 있었다. 그것은 쌀을 담았던 커다란 뒤주 였는데, 뒤주의 체신에 편액처럼 내걸린 글귀 하나가 이채롭다. 글귀는 아직까지 남아서 미쁜 시간의 발자국을 반추하여 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잠시 머물다 간다. 타인능해. 누구라도 열 수 있다는 의미. 주인이 허락한 뒤주 속의 쌀은 지나간 세월 저편의 공유와 인정의 쌀이었던 것이다.


이종원의 시 “까치밥”에서 만나는 정서적 풍경 역시 타인 능해 와의 쌍벽에 다름 아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하나는 오래 전 양가에서의 일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그가 주일이면 항상 나가는 교회 앞의 풍경으로 보인다. “배고플 때 가져다 쓰고/ 할 수 있을 때 채워 넣어도 될” 사랑의 “쌀독”은 어쩌면 타인능해를 넘어선 사랑과 교감의 광경을 열어준다.

환기해보면 시의 화자는 현실의 “쌀독” 앞에서 나아가 “언제까지 기다려” 주는 “까치밥”을 연역하는 데까지 이르러 있다. 작품으로만 보자면 비교적 소품에 해당되지만, 화자의 정서는 웅혼하게 읽힌다. 그에게로 그의 종교는 신념과 전달과 교화의 순간까지 이어져 보였다. 한 편 ‘하나님 장사’로 치부되거나 전락하기도 한 일각에서의 종교적 패악들이, 그야말로 각종의 종교가 종교 이전보다 못한 너나들이 혼탁해진(사악해진) 괴물 같은 종교의 시절에, 이종원 시인의 “교회 앞”의 사랑의 환기는 사뭇 반가워 보이기까지 하였다.


소나무 싹을 자른다/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차용되는 순간이다/ 그는 선천성 지적장애였고/ 판단 능력이 떨어졌다/ 붙잡거나 말려줄 성인들 또한 곁에 없었으므로/ 정상 참작이거나 동정의 여지마저/ 구할 수 없다/ 어린 새싹들이 잎을 이루고/벌레들이 물러가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구형(求刑)을 바라보며 침묵하는 다수/ 판결의 결과가 굳어진다/ 새로운 판례에 기댄 것은 아니지만/ 재선충이 휩쓸고 간 자리에 바람만 가득하다/ 푸르름 사라진 솔밭/ 출입금지 표지 안으로/ 폐허가 뒹굴고 있다 <서울 바리새인>


가벼운 터치로 살펴보자면, 바리새인은 분리된 자의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지나친 율법에 갇힌 자들, 나중에는 자신들의 신앙법과 전통을 하나님의 위상과 동일시하는 잘못을 범하였기로, 예수님은 결국 그들의 의식을 경계하게 되었다. 지금은 반기독교의 위선자들을 이르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이종원의 시는 지금 “서울 바리새인”에 주목하고 있는 중이다.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되어야” 하는 지극히 결정적인 논리. 이 다수결의 원칙은 “재선 충에 걸린 ” “소나무” 들을 즉시적으로 제거하고 “ 어린 새싹들이 잎을 이루고/ 벌레들이 물러가는 시간”을 허용하지 않음을 고발한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들의 “서울”과 우리들의 사회와 세계는 “출입금지의 표지 안”에서 “페허”를 연출하거나 양산해 나가는 중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이종원 시의 바리새인의 정체들은, 조류독감에 걸린 가금류들을 하루 아침에 생매장 하는 방식이었으며, 한 발짝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제주의 4.3 희생과 여수 순천의 양민 학살의 현장에서도, 예의 “서울 바리새인”들은 들끓고 있었던 것이다. 질서라거나 획일의 안장을 총검에 두르고서.

무릇 인간의 구원은 어디에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오고 가야 하는지. 이 시편의 정신 역시 이종원이 구하는 종교관에 입각한 신념의 소리일 것이다. 또한 그의 시를 이루는 정신의 일각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라 여겨진다.


로망스를 뜯는/ 아내가 향기롭다/ 도마 위 타악이 전부가 아니었다/ 식은 근육을 조리하는 연주/ 바다에서 건져 올린 월척과 닮았다// 현이 되지 못한/ 삶을 튕겨내던 그때/ 무쇠 솥에/ 가난을 안치고/ 주름진 후에야/ 꽃을 노래하기 시작한다//퉁겨진 현이/ 머언 첫날밤을 불러낸다/ 부드럽게 출발한 은륜의 바퀴,/ 손안의 로망스가 옛날로부터/ 걸어나온다 <로망스>


아내가 자리를 비운 저녁/ 노모가 생선찌개를 끓인다/ 동태 한 마리로 만찬을 칼질해 넣고/ 늦은 허기를 불러낸다/ 대가리, 몸통, 꼬리, 세 조각이/ 가슴을 에는 사이/ 실한 가운데 토막이 그릇에 오른다/ 고백하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고추장 풀린 양념에서는/ 화톳불 냄새가 난다/ 대가리 한쪽을 틀니로 빠는 어머니/ 살점을 발라주고도 모자라/ 마른 가슴 덜어낸 한 세월/ 생선 가시처럼 부서져 떨어지고/ 나무토막 같은 나는/ 두드리면 통통거리는 뱃살이 되어있다 <가운데 토막>


위에 인용된 시는 “아내”에 관련된 글이고, 아래에 인용된 시는 “어머니”에 관한 이종원의 가슴의 노래이다. 시집의 원고 여기저기에서는 아내와 어머니가 흔하게 산견되고 있었다. 흩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의 정신은 일목요연해 보였다. 이종원 시인의 심중에 배어있는 ‘가족’의 신념은, 그에게 있어 또 다른 하나의 종교와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자면 생선을 조리하는 아내의 도마 소리에서 그의 시는 “로망스”에 가 닿는다. “퉁겨진” 아내의 현에서 그는 또 아내와의 “첫날 밤”을 회상하는데, 이쯤이면 거의 종교성에 가까운 심경의 반영으로 느껴야 할 것 같았다.

어머니에 대한 그의 마음과 정서 역시 한 궤를 이루고 있다. 아내가 비운 자리를 차고서서 어느 날인가 그 어머니는 “생선찌개”를 끓인다. 찌개는 바야흐로 모자의 식탁 위에 올랐다. “대가리”와 “몸통” “꼬리”로 나누어진 생선탕 안의 생선토막은 흔한 생선찌개의 풍경이다. “가운데 토막”을 자식에게 건넨 노모는 “대가리 한 쪽”을 “틀니”로 “빤다”. 이 역시 있을 법한 풍경이다. 다만 이 풍경을 받아들이는 이종원의 자세는 인간적이라거나 시적인 정도의 너머에 있다. 손쉬운 방식으로 어머니와 “가운데 토막”을 공유하거나 반납하는 포즈를 취하기보다는 “고백하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고추장 풀린 양념에서는 화톳불 냄새가 난다”라는 진술로 이어진다. 그렇게 드러난다. 그렇게 그는 지금 “화톳불”의 앞에서처럼, 어머니와 함께 건너온 한 생애의 시간이 뻘뻘 더운 것 같다. 맵고 짜고 아린 것 같아 보인다.

이종원은 그렇게 가족(모자)의 한 순간을 잽싸게 서정시의 한 순간으로 확보하였다. ‘자아’의 반영 지점에 ”화톳불“을 놓고. 세계(어머니)와의 만남을 건설한 것이다.

미력하게나마 여기에서는 서울과 종교와 가족으로 이어지는 이종원 시의 관계망을 살펴보았다.


사랑을 고백하게 하는,

광야에서 처음 만난 그대

전갈을 하늘에 매다는 것처럼 어려웠다

하나이면서 전부인

풋사랑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길을 내는 사막에서

데모테이프는 방향을 잃었다

내 경작은 느렸고 키가 작았다

신청했던 해로를 악보에 실어주지 못해

배신의 단어들로 허둥대었고

사랑을 위해, 암흑 같은 밭을 경작했다

행간마다 기다림이라고 썼다

내가 야곱*이 아니듯

갈고 있는 밭도 라헬**이 아니겠지만

칠 년에 칠 년 그리고 또 칠 년을 기다릴지라도

수천의 페이지 마다 고백을 기록할 것이다

아직 온전한 이름을 부르는 일이 쑥스럽지만

()

다시 태어나도 나와 결혼 해줄래

<어떤 청혼>


이종원 시인에게 있어서의, 서울과 종교와 가족의 공동체는, 이 시 “어떤 청혼”에 이르러서, 그의 시의 파노라마가 되어준다. 全景畵였던 것이다. 위의 세 가지 요소의 총화가 이 시에서 이루어진 셈이었다. 그의 서울과 종교와 가족은, 그에게로 “칠 년에 칠년 그리고 또 칠년을 기다릴지라도” “다시 태어나도 나와 결혼”을 해주어야만 한다는 신념을 배태하기에 이른다. 그런 의미에서 바라볼 때 이는 단순한 독백이 아닌 그의 언어적 선언으로 다가와 주기도 한다. 그의 서울과 종교와 가족들에게로 “방향”을 정한 “죽음”같은 고독과 고투의 흔적만 같다. 또한 그가 쓰고자 하는 모든 시들을 포함하여서. 마지막 구절에 놓인 라는 글자 역시 명징하거나 선연한 한 폭의 그림으로 걸려 있었다.


-회고의 지점과 내일로의 지점


언젠가 다른 지면에서 “뒤”의 시학에 관하여 짧게 언급했던 적이 있었다. 쉽게 말하면 뒤편의 시. 거기에서, 세상의 모든 시는 뒤에 있노라고 역설했던 바가 있었다. 바꾸어서 말하면 ‘묵은 김치’와 같은 시의 질료들은, 거의 모든 시인들의 결정적인 시의 질료였으며, 출발이며 통로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요즘에 이르러, 뒤의 시들은, 그보다는 화려하고 현란하거나 기발함이거나 현학적인 방식으로만 독자의(지극히 일부인) 입맛을 유발시키는 ‘세태시’에 밀려서, 지나간 ‘나팔바지’ 취급을 밭거나 ‘가요무대’처럼 물로 치는 경향들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시의 높이와 영원성은, 소재의 변별력이거나 기표의 변별성으로만 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을 이기 보다는 ‘어떻게’ 쓰여져 있었는가가 시의 생명이었던 것. 하늘천이 되었건 따지가 되었건 간에 그것의 높이와 깊이는 결국 마지막까지 간과할 문제는 아니었다.

이종원의 시에서도 회고의 시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이종원 시의 경향 역시 “뒤”의 시일 수 있었다. 이종원 역시 ‘무엇’을 ‘어떻게’의 사이에서 자신의 시를 더욱 앓아야만 할 것 같았다.


고향 집 뒤란/ 아버지 등이 갈대처럼 서걱거린다/ 나의 길은 하행선/ 누군가 좌석 번호를 묻는다/ 승차권은/ 시간과 희망에 대하여 묵묵부답이고/ 겨울 초입처럼 가로등이 하얗게 웃는다/ 등외를 기표한 마권에 생을/ 절반이나 잘라 주고/흙의 뿌리를 찾아 유리 숲을 벗어난 귀향/ 아버지는 여전히 버선발이다/ 지워 버렸던 이름을 건져 올린다/ 무지렁이로 치부한 밭고랑에 대하여/ 귀향의 첫 밤에 엎드려/ 일기를 쓴다/ 당신의 얼룩진 목덜미 아래/ 굽은 등 뒤에서/ 지나간 시간의 초침들이 똑딱인다 < 텃밭의 귀향>


어떤 시에서 보면, 시 속의 그의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 시는 그의 아버지 생존의 시절에 써졌던 것이거나, 예의 뒤편의 시 한편을 현재화 했을 수도 있었다. 시 속의 아버지는 “버선발” 이다. “등외를 기록한 마권에 생을/ 절반이나 잘라 주고” 온 저 “하행선”들 앞으로 이어져 내려온, 이 땅 아버지들의 유구하고 변함없는 역사의 장면이다. 크게 무리가 없어 보이는 한 편의 회고는 “일기”처럼 무난하게 읽힌다.

그러나 이 대목이 이종원 시의 어쩔 수 없어 보이는 그늘 같은 지점일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무난함은 모든 시들의 적이자 암세포일 수 있었다. 나중에 가면 모든 무난함 들은 결국 시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야 만다. 시로써 시가 살아나게 하는 일은, 시가 시로써 살아나 숨쉬게 하는 일이었다. 보다 큰 시의 대오를 위해서는, 이종원의 시들 역시 이 무난함의 준거를 박차고 뛰쳐나가야만 하는 숙제가 남아 있었다.



최정신 17-11-2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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