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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작성일 : 17-12-06 09:04
 글쓴이 : 안희선
조회 : 273  

주저흔(躊躇痕) / 김경주


몇 세기 전 지층이 발견되었다

그는 지층에 묻혀 있던 짐승의 울음소리를 조심히
벗겨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발굴된 화석의 연대기를 물었고 다투어서
생몰 연대를 찾았다
그는 다시 몇 세기 전 돌 속으로 스민 빗방울을 조금씩
긁어내면서
자꾸만 캄캄한 동굴 속에서 자신이 흐느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굴 밖에선 횃불이 마구 날아들었고 눈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간을 오래 가진 돌들은 역한 냄새를 풍기는 법인데
그것은 돌 속으로
들어간 몇 세기 전 바람과 빛 덩이들이 곤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썩지 못하고 땅이 뒤집어져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동일 시간에 귀속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서로 전이를 일으키기도 한다

화석의 내부에서 빗방울과 햇빛과 바람을 다 빼내면
이 화석은 죽을 것이다

그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바람은 죽으려 한 적이 있다"

어머니와 나는 같은 피를 나누어 가진 것이 아니라
똑같은 울음소리를 가진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김경주(1976년 ~ )는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꽃 피는 공중전화〉
외 5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2009년 제3회 「시작문학상」, 제17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제28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불편'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태엽>으로 당선되어 극작가로 등단했다
연극실험실《혜화동 1번지》에 희곡을 올리면서 극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1년 부터 2013년 까지 동덕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초빙교수를 맡았다.
시집으로,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개정판 문학과지성사, 2012)
《기담》(문학과지성사, 2008)
《시차의 눈을 달랜다》(민음사, 2009)
《고래와 수증기》(문학과지성사, 2014) 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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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 생각>

김경주 시인은 나에게 있어, 연구대상(?)이기도 하지만..

가늠하기조차 힘든, 그의 시편들의 수평적 넓이와
수직적 깊이는 내 질투(?)의 대상이기도 하다고 할까 - 웃음

오랜 지층 속에 파묻혀 있던, 화석을 통해 살펴본
한때는 생명체였던 것이 남긴 주저흔(躊躇痕)

- 태어났을 때도 주저했지만, 눈을 감을 때도 주저했던 그 흔적

그 짐승 (혹은, 인류와 가까운 계열이었을지도 모르는 동물)도
그 자신의 뜻은 전혀 개입이 되지 않은 채,
전혀 우연한 지구라는 장소와 생각조차 못했던 그 어떤 시기에
세상에 불쑥 내던져진 것이겠고...

그렇게 살아가다 꼭 그래야 할 필연적 이유도 없이,
주저흔을 남긴 채 세상에서 쫓겨난 것이리라

그런데, 그런 과정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과
무엇이 다를까

나는 아가들의 첫울음 소리를 탄생의 주저 끝에 내지르는 비명 소리로 듣는다

아가들은 영성(靈性)이 맑아서,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생후 백일 전까지는 자신의 전생도 환히 기억한다
- 그래서, 진정한 현세인이 되었다는 의미의
백일잔치라는 것도 있는 것 - 우리 옛 선조들의 지혜는 무궁무진하다)

아가들은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마구 우는 것이다
앞으로 그들이 살아가야 하는 삶이 얼마나 고난 가득한 것인지를...
그리고 얼마나 막막한 것인지를 너무 잘 알기에

생각하면,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세상에 온전히 귀속되는 게 과연 얼마나 될까
모두, 그렇게 바람처럼 한 평생 떠돌다 가는 것이다

(박테리아, 바이러스까지도 예외없이)

죽음, 또한 그렇다

그 알 수 없는 미지(未知)의 세계는 또, 얼마나 공포스러운 것인가

사실, 죽음 그 자체보다 죽음에 대한 미지의 공포가 더 큰 것이다

하여, 우리 모두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또 으앙 으앙 우는 것이다
- 아가처럼 응애 응애 소리 내어 우는 건 아니지만

이렇듯, 무력감과 존재의 한계는 우리로 하여금 늘 주저하게 한다

심지어, 바람마저 그 막막함에 죽으려 한 적이 있었다고
하지 않던가 - 시인의 시에 의하면

무시무종(無始無終)한 저 시간의 영겁(永劫)스러운 흐름, 그 막막한 흐름

그 불가사의(不可思議)야말로, 영원히 우리를 주저하게 하는 영혼의 벽이다

- 무한한 시간의 흐름 속에 유한한 존재로서 마주하는 벽

불가항력, 무력함, 제약 또는 한계를 에누리 없이
안겨다 주는 그 벽 앞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살아간다는 일을 늘 주저할 수밖에 없다 - 인간 外 동물 . 식물은 본능적으로나마

다만, 석가와 예수 . 노자 같은 초월적 존재만 그 주저함을
뛰어 넘었을 뿐

(엄밀히 말하자면, 영성 드높았던 공자도 완벽히 뛰어넘진 못한 거로 보인다)

아무튼, 그 이외의 평범한 우리 모두는 일체의 예외없이 삶의 흔적인 주저흔을 남길 수밖에

하지만, 그 주저함을 직시하고 부딪혀 <내가 제일 소중하고 잘 났다>라는
허황된 꿈을 여지없이 깨어지게 하는 시 한 편..

그것은 별 생각없이 살던 이들에게
자신의 生을 매 순간마다 확인하는 일(덧없는 존재로서의 겸허함)을 상기시키므로
얼마나, 얼마나, 고마운 시 한 편이던가


                                                                                                 - 희선,


쌓이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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