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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작성일 : 17-12-16 01:26
 글쓴이 : 안희선
조회 : 272  

모닥불 / 백석

새끼 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헝겁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 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 갓신창=부서진 갓에서 나온, 말총으로 된 질긴 끈의 한 종류 또는 가죽으로 만든 신의 창 * 개니빠디=개의 이빨 *너울쪽=널판지 쪽

* 닭의 짗=닭의 깃털 * 개터럭=개의 털

* 재당=재종, 육촌

* 문장= 한 문중에서 항렬과 나이가 제일 위인 사람

* 갓사돈=새 사돈 * 몽둥발이=딸려 붙었던 것이 다 떨어지고 몸뚱이만 남은 물건

이 시는 하찮은 것들이 모여 피워내는 따듯한 모닥불 가에 모인 사람들은 상하귀천을 가릴 것 없는 존재들이며, 모닥불 가를 둘러앉은 자체만으로도 정겨운 모습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시적 화자는 모닥불 가에서 불쌍한 '몽둥발이'로 살았던 할아버지의 슬픈 역사를 떠올림으로써 개인적인 가족사와 연결시키고 있다 윤여탁 저 /현대시의 내포와 외연/ 중 발췌

백석 (白石 1912∼1995) 본명은 백기행(白夔行).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생. 1929년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다. 그해 조선일보 후원 장학생으로 일본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청산학원)] 영문과에 유학했다. 1934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잡지 《여성》 편집을 맡았으며 시 《정주성(定州城)》 등을 발표했다.

1936년 33편의 시가 실린 시집 《사슴》을 자비로 100부 한정판으로 출간하면서 순수 서정시인으로 선풍을 불러일으켰다.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 등으로 재직하다 만주로 가 방랑생활을 했으며 광복 후 고향 정주로 돌아갔다가 북한 체제에 남게 됐다. 북한에서는 번역과 동화시 창작에 주력하다 숙청당한 뒤 1963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나중에 그가 1995년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향의식(失鄕意識)을 한국 고유의 가락에 실어 노래한 향토색 짙은 서정시로 1930년대 한국문단에서 활동했으며, 유일한 시집으로 《사슴(1936)》이 있다. 1980년대 들어와 백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의 작품을 모은 《백석시전집(1987)》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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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 생각> 나는 요즈음, 한 없이 차가운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또한, (그런 삶의 주체主體로서의) 내가 제일 차갑긴 하지만. 백석의 이 시를 받아들이는 내 한 구석엔...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모질게 남아있는 따뜻함이 내 삶의 디렉토리 Directory 안에 보이지 않는 화일 File처럼 모닥불로 숨어있는 것도 같고. - 희선, <사족> 백석의 시를 만났다. 아니 백석을 만났다고 하는 것이 옳다. 시는 바로 그 사람이니까. 표지에서 그의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면 머리 모양이 참 특이하다. 그 옛날에 이런 머리를 할 수 있는 그의 감각이 얼마나 현대적인지 옛사람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 반갑기 그지없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 맨 처음 떠오르는 단어는 격조였다. 그의 시는 다른 작품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격조를 느끼게 했다. 신경림 시인은 백석의 시집 <사슴>을 읽은 저녁, 밥도 반 사발밖에 못 먹고 밤을 꼬박 새웠노라고 고백했다. 신경림 시인처럼 백석의 시 한 편이, 아니 시 한 연, 한 행이 주는 전율을 나는 뒤늦게야 알았다. 그 전율이 주는 행복을 누리면서 나 역시 밤을 밝혔다. 백석의 시는 시어가 순수한 우리 고유어로 되어있는데 얼마나 맑고 투명한지 읽으면 가슴에 깊은 떨림으로 남았다. 문학의 위대한 힘을 나는 알고 있다. 시 한 편 때문에 삶을 다시 찾은 사람들, 책 한 권 때문에 살아남은 사람들 이야기는 문학의 힘을 웅변으로 말해주었다. 백석의 이름 앞에는 천재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백석의 천재성을 먼저 깨달은 사람은 노리다께 가스오라는 일본 시인이었다고 한다. 일제시대의 15년 정도를 당시 조선에서 보내 한국 문인친구들을 많이 두었던 그는 일본 후꾸이현 최고의 시인이라고 하는데 그의 시 <파>에서 "뛰어난 시인 백석, 무명의 나"라고 백석을 노래하고 있다. 노리다께의 인품은 매우 고결하고 덕이 있어 많은 문인들과 예술인들이 그의 도움을 받았는데 화가 이중섭은 그의 도움으로 일본인 여성과 결혼했다고 한다. 백석의 시어를 정주 사투리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사투리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쓰지 않아 묻혀있는 우리 고유 언어에 낯선 우리에게 백석의 시는 각주를 보면서 읽어야 하지만 토속적인 시어로 전혀 어렵지 않은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눈앞에 그림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바람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멍멍이 짓는 소리도 들리고 구름이 둥둥 떠 있기도 하고, 시냇물이 흐르기도 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시를 불행하게도 우리 세대는 만날 수 없었지만 2004년, 수능 언어영역에서 사상 처음으로 복수정답을 인정해야 했던 <고향>이라는 시를 통해 비로소 널리 알려지게 되어 그나마 다행스럽다. 그의 연보를 보면 1957년 46세까지의 활동이 나와 있고 1963년 52세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이 소식을 들은 일본의 시인 노리다께 가스오는 백석을 추모하는 시를 발표했다고 하는데 실제 사망은 1995년 84세로 나와 있다. 그렇다면 1963년에서 1995년까지 32년이라는 그 긴 세월 동안 그는 무엇을 했을까. 그 동안 빛나는 시들을 얼마나 많이 쏟아냈을까. 그 시들은 어디 있을까? 북한은 계관시인 칭호제도가 있다고 한다. 지난 2000년 남북이산가족 첫상봉 때 북쪽의 계관시인이었던 오영재 시인이 가족을 찾아 내려왔지만 <늙지 마시라 어머니여!>등 그의 시 몇 편을 보면 토속적이거나 서정성은 기대만큼 높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 그토록 격조 높은 시를 썼던 천재시인 백석은 어떻게 되었을까 싶어 찾아보니 30대에 연금중인 고당 조만식 선생을 적극적으로 도왔고, 해방 후에는 우익문인으로 활동하다가 상당한 곤란을 겪어 나중에는 북한의 문인인명록에서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수십 권에 이르는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고 창작 집필은 금지당할 정도로 북한문단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다 한다. 천재시인에게 창작금지는 얼마나 잔혹한 형벌인가. 고 이응로 화백은 감옥에서 끌어올라 주체할 수 없는 창작 욕구를 식사때 나오는 음식을 먹지 않고 아껴놓았다가 간장이나 밥알로 풀어냈었다. 불타오르는 자신의 창작력을 지켜내려 몸부림쳤던 그 흔적들을 보면서 인간이 육신은 가두어도 영혼은 가두지 못함을 보았었다. 백석은 그 고통의 기나긴 시간들을 어떻게 견디어내다 눈을 감았을까. 생각할수록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래서인지 남아있는 시들이 더욱 더 소중하게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를 읽고 있으면 마치 파노라마 사진을 보고 있는 듯하다. 전반부에서는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지나가는데 후반부에서는 시인 자신의 얼굴이 지나간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운명을 말해주는 듯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어떻게 이런 시상을 떠올려 시를 쓸 수 있을까. 이 부분을 읽고 있으면 천재시인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한다. 마치 누군가 읊어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 적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시인과 평론가 등 문인 120명으로부터 2년 연속 '지난 1년 가장 좋은 시'로 뽑힌 시를 쓴 문태준 시인은 그 시를 쓴 뒤 탈진할 정도였다고 고백했다. 백석도 그렇게 힘들게 시를 썼을까. 아니면 떠오르는 시상을 그대로 한 번에 완성했을까.

(앞부분 생략) -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이런 시인의 천재성을 일찍이 알아챈 일본의 노리다께 가스오는 백석 앞에서 자신은 무명이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내가 시인 백석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그가 자야라고 불렀던 그의 연인 김영한 때문이었다. 김영한은 1996년, 고급요정이었던 대원각(부지 7,000평)을 법정 스님에게 조건 없이 시주하여 길상사를 지을 수 있게 해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여인이다. 사찰은 일 년 뒤 완성되었고, 그녀는 시주하고 3년 뒤인 1999년 83세로 이 세상과 하직했다. 대원각은 기부 당시 재산가치가 1000억 원대였다고 한다. 백석은 북에서 1995년 사망했으니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 그들은 영적으로 무언가 연결이 되어있었던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놀라운 것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녀가 한 말이었다. 기부한 1000억이 아깝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1000억은 그 사람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녀가 말한 그 사람, 그는 바로 백석이었다. 김영한, 그녀는 최고의 천재시인 백석이 사랑했던 연인, 자야였다. 그러나 봉건시대의 길목에서 20대에 만난 그들은 비련의 연인들이었다. 백석은 그녀를 위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란 시를 썼다. 시에서는 슬픔이 느껴지지 않지만 3년 동안 서로를 뜨겁게 사랑했던 그들은 남과 북으로 헤어졌다.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燒酒를 마신다 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전문

자야는 '내 사랑 백석'이라는 저서에서 "백석의 시는 자신에게 있어 쓸쓸한 적막(寂寞)을 시들지 않게 하는 맑고 신선한 생명의 원천수였다"고 전한다. 자야가 죽기 열흘 전 기운 없이 누워 있는 여사에게 기자가 "다시 태어난다면 어디서 태어나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물었더니 영국쯤에나 태어나서 문학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한다. 시를 쓰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시를, 사람을, 온 가슴으로 사랑할 줄 알았던 그녀의 유해는 유언대로 화장되어 한겨울 눈이 하얗게 쌓인 길상사 마당에 뿌려졌다. 백석이 사랑한 자야를 노래한 시처럼 하얀 겨울에. 백석의 약력을 보면 1918년 오산소학교를 거쳐 오산중학교를 마치고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으로 일본 靑山學院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귀국하여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여성>에서 편집을 맡아보다가 1935년 詩 정주성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1936년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만주 신징[新京]에 잠시 머물다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영어교사로 있었다. 백석이 자야라 불렀던 연인 김영한은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이었다. 부친을 일찍 여의고 할머니와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한 그녀의 집안은 금광을 한다는 친척에게 속아 알거지가 되어 거리로 나앉게 되었는데 이때 김영한은 열여섯 살의 나이로 조선 권번(券番)에 들어가 기생이 되었고 교사들의 회식 장소에 나갔다가 함흥영생여고 영어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백석과 운명적으로 만난 것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뜨거웠지만 시대 환경은 냉정해서 고향의 부모는 기생과 동거하는 아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강제로 백석을 자야에게서 떼어놓기 위해 결혼을 시키지만 백석은 자야 품으로 다시 돌아간다. 이런 식으로 강제 결혼을 하고 다시 도망치기를 세 차례. 부모에 대한 효와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고 싶은 열망 사이에서 갈등한 백석은 봉건적 관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야에게 만주로 같이 도피하자고 설득하지만 자야는 이를 거절, 백석은 혼자서 만주 신경으로 떠났는데 남북이 분단되어 이것이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영원한 이별이 되어버렸다. 자야(子夜, 본명 金英韓) 여사는 1997년 창작과 비평사에 2억 원을 출연하여 백석문학상을 제정하도록 했는데 1997년 10월에 결성된 백석문학기념사업 운영위원회가 그 첫 사업으로 백석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백석문학상을 제정해 첫 시행은 1999년에 했다. 상금은 1000만원이며, 매년 8월을 기준으로 2년 내에 출간된 뛰어난 시집에 시상하는데 제1회는 이상국·황지우 시인이 수상했다. 언어는 그 민족의 혼을 품고 있다. 그래서 일제는 우리 언어를 말살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의 시에는 정주 토속어를 그대로 쓰고 있어 향토색이 물씬 풍긴다. 언어유희도 없이 담백하다. 이것은 일제 강점기에 모국어를 지키려는 그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평한다. 백석은 월북한 시인이 아닌데도 월북 작가로 분류되어 그의 작품은 모두 금지도서가 되어 우리 세대는 단 한 번도 만날 수가 없었다. 분단의 비극이 개인사뿐만 아니라 민족문학사에도 깊은 상처를 남긴 것이다. 그는 남북 양쪽에서 모두 잊혀졌던 비련과 비운의 천재 시인이었다. 1987년 해금되고 그에 대한 연구가 발표되면서 이동순 교수가 창작과 비평사에서 '백석 시선집'을 펴내자 자야 여사가 연락해와 그들의 슬픈 사랑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백석을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 평생을 간직하며 살다가 죽기 전에 세상에는 천억 원이 넘는 대사찰을, 연인에게는 그의 이름을 영원히 기릴 수 있는 백석문학상을 남겨주고 간 아름다운 여인, 김영한. 그들의 슬픈 그러나 아름다운 사랑은 남북분단도 막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남북분단이 그의 문학 또한 막을 수 없었더라면 우리나라의 시문학이 얼마나 더 성큼 발전했을까. 생각할수록 분단의 비극이 곳곳에 남긴 손실과 상흔의 슬픔에 가슴이 아파온다. 가장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이었던 백석은 자신의 시처럼 이 세상에서 하늘이 가장 귀해하고 사랑한 시인으로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남겨졌다. 그의 시와 비련의 사랑, 그리고 그의 연인 자야의 고결한 사랑은 세월이 가도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어 우리들의 가슴을 촉촉히 적셔줄 것이다. <사족蛇足의 자료 출처 : '천재시인' 백석의 연인, 자야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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