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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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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작성일 : 18-06-12 08:14
 글쓴이 : 강북수유리
조회 : 261  

 

꽃멀미

 

김충규

  

 

새가 숨어 우는 줄 알았는데
나무에 핀 꽃들이 울고 있었다
화병에 꽂으려고 가지를 꺾으려다가
그 마음을 뚝 꺾어버렸다
피 흘리지 않는 마음, 버릴 데가 없다
나무의 그늘에 앉아 꽃 냄새를 맡았다
마음속엔 분화구처럼 움푹 패인 곳이 여럿 있었다
내 몸속에서 흘러내린 어둠이 파놓은 자리,
오랜 시간과 함께 응어리처럼 굳어버린 자국들
그 자국들을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을 때
깊고 아린 한숨만 쏟아져 나왔다
꽃 냄새를 맡은 새의 울음에선 순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의 힘으로 새는
사나흘쯤 굶어도 어지러워하지 않고
뻑뻑한 하늘의 밀도를 견뎌내며 전진할 것이다
왜 나는 꽃 냄새를 맡고 어지러워
일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그늘에 누워
올려다보는 하늘에는 구름이 이동하고 있었다
구름이 머물렀던 자리가 움푹 패여,
그 자리에 햇살들이 피라미처럼 와글와글
꼬리를 치며 놀고 있었다
아니, 황금의 등을 가진 고래 한 마리가
물결 사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마흔도 되기 전에, 내 눈엔 벌써
헛것이 보이기 시작하는 걸까
사후(死後)의 어느 한적한 오후에,
이승으로 유배 와 꽃멀미를 하는 기분,
저승의 가장 잔혹한 유배는
자신이 살았던 이승의 시간들을 다시금
더듬어보게 하는 것일지도 몰라, 중얼거리며
이 꽃 냄새, 이 황홀한 꽃의 내장,
사후에는 기억하지 말자고
진저리를 쳤다

 

 


100호 사화집『詩가 오셨다』(천년의 시작, 2008)

 

 


  생명부지의 시인일지라도 시대가 시대인지로 가끔 메일이나 전화, 문자 같은 것을 할 때가 더러 있다. 필요에 의해서 하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끊어지게 마련이라 유명시인이든 무명시인이든 특별한 감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김충규 시인은 한번도 본 적도 없고 전화 한 통 그 흔한 문자나 메일 한 통 나눠보지 못한 시인이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시인의 시를 시 속에서 만날 때마다 아프게 느껴질까.


  마치 육친의 죽음에 대한 아픔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은 비단 이 시인 뿐만은 아니었지만 젊다는 것이 더 아픈 이유라면 이유랄 수 있겠다.  아픈데 이 시인의 시는 왜 여기 저기에서 자주 만나게 될까. 아프다는 것은 어쩌면 나의 이상한 예감이 맞아떨어진 그의 죽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너무 일찍 죽어 애잔함 뿐 아니라 그의 시에 대한 막연한 피빛 그림자 같은 것이지도 모르겠다.


  오래 전 이 시인의 시집을 한 권 산 적이 있었다.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이 시집은 여느 시집과 달리 몇 달을 두고도 다 읽지를 못했다. 아마 지금도 끝까지 다 못 읽은 것 같다. 보통 시집을 사거나 어쩌다 시집에 한 권 손에 들어오면 며칠이면 다 읽고 빠를 때는 하루면 다 읽고 덮어버린다. 그런데 낙타 시집을 한두 편 보다가 덮고 또 조금 보다가 덮곤 다른 짓을 했는데 그 것은 이 시집 곳곳에 나오는 어둡고 침잠하는 단어들 때문이었다. 슬픔이나 고독, 외로움을 꽤나 좋아하지만 나는 왠지 캄캄한 단어나 섬뜩한 언어들은 싫었다.


  잊고 있다가 어떤 시가 생각나서 시집을 다시 펼쳐보았다. 다른 시인들은, 평론가들은 깊고 눅눅한 그의 이 시집을 어떻게 보았을까 문득 궁금하여 시집의 끝을 보았다. 보통 시집을 보면 시집의 끝에 밥상의 반찬처럼 주르르 늘어놓은 몇 개의 시와 해설이 있기 으레 마련이다. 그런데 이 시집엔 제목이 된 시를 마지막으로 해설이나 평, 하다 못해 시인과 해설자의 인연 같은 것까지도 없고 그냥 백지만 있을 뿐이었다. 그냥 그저 그런 시인도 아니고 수주문학상을 비롯하여 제1회 미네르바 상도 받았고 더군더나 문학지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의 시집을 읽어줄 시인이나 평론가 하나 없었을까. 혼자만의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염결성이 보이는 듯도 했다.


  오늘 또 길을 가다가 그의 시 한 편을 주워 들었다. 몇 년 전에 이미 '꽃멀미'를 만났었지만 그때는 그냥 멀미만 하고 넘어갔었다. 다시금 그의 이름과 함께 이 시가 오버랩 되어 오는데 그는 살면서 무슨 자괴감이 그리 많았기에 '저승에서의 가장 잔혹한 유배가 살아있던 시간들을 다시금 더듬어보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꽃의 내장에서 어떤 강력한 유혹의 냄새를 맡았기에 사후에는 기억하지 말자고 진저리까지 쳤을까. 그는 이미 이 지구별을 떠나고 없는데 꽃멀미가 계속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양이 시 모음 -황인숙/ 이소연/김상미/조용미/김충규/조은/김연아/고형렬/송찬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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