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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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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19 09:45
제2회 시산맥 <시여, 눈을 감아라> 당선작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686  

2017년 제2회 시산맥 <시여, 눈을 감아라> 당선작

 

 

취지

 

계간 시산맥특별기획 <시여, 눈을 감아라>는 등단지나 지명도에 기대지 않고 작품성만 가지고 지면을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하였다. 공정한 심사방식으로 호평을 받으며 작년에 이어 두 해째 이어지고 있다. 이런 첫 마음으로 순수하게 계속 이어갈 것이다.

 

 

심사경과

 

- 유정이(시인)

 

지금까지 네 차례에 걸쳐 봄호에 8, 여름호에 4, 가을호에 3편 그리고 지난 겨울호에 2편을 엄정한 기준으로 심사하여 실었다. 그리고 두 시인의 새로운 작품을 20171230일까지 받아, 지난 가을호와 마찬가지로 열린심사제도방식(참여를 원하는 누구나 심사위원이 되는 방식)을 실시한 결과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정용화 시인의 작품 붉은 나무들의 새벽이 최종 선정작으로 결정되었다. 시인께는 일백만 원의 상금과 상패가 주어질 예정이다. 정용화 시인의 최종 선정을 축하드린다. 시상식은 5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다.

 

지금까지 시산맥에 소개되었던 시인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

물의 옷, 꽃들의 발목이 조용하다, 캐스트, 바람의 매듭

 

긴 여정을 함께 해왔으나 근소한 차로 대상작에 선정되지 못한 시인은 2012년 계간 시산맥으로 등단한 김대호 시인이다. 지금까지 시산맥에 소개되었던 시인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

 

미신을 믿고 여름을 조심하고,그리고 그래서 그러나, 소리라는 음식, 당신을 설명하다

 

 

2018년 제3<시여, 눈을 감아라> 마감은 331일이다.

 

 

 

[최종 선정작품]

 

붉은 나무들의 새벽

 

정용화

 

 

외로움은 등이 슬픈 짐승이라서

작은 어둠에도 쉽게 들킨다

계절을 짊어지고 나무들이 온다 겨울은 살짝만 기대도 쉽게 무너지는 마음이라 오래 켜 둔 슬픔 위로 폭설이 쌓인다 네가 건조한 바람으로 불어올 때 창문은 피폐해진 마음들의 거처, 새벽노을이 드리운 나무들은 서서히 붉게 물들고 창 위로 서린 시간의 두께만큼 오늘은 흔들린다

 

창 위에 적은 이름처럼 사라져가는 안부들

 

나무들은 어둠에 뿌리 내리고 빛을 향해 나간다 바다를 건너서 북쪽으로 향하면 얼음과 죽은 자들의 나라가 있다는데, 그 입구를 지키고 있는 짐승은 노을로 물들여진 가슴이 언제나 붉다

 

고독한 몸이 보내오는 눈빛에서는

오래 짓무른 어둠의 냄새가 난다

 

몸 속에 그늘을 새기는 방식으로, 매일 복용해야 하는 일정량의 고독과 슬픔이 있어 나무는 스며든 간밤의 흔적을 나이테로 새겨 놓는다 새벽을 견디고 있는 이름들의 빛으로 나무들은 못 다 쓴 계절들을 천천히 옮겨 적는 중이다

 

 

 

[기 발표작품]

 

 

물의 옷

 

                              

정용화

 

 

달 속에 배내옷을 숨겨둔 적이 있다

 

나무 하나 남기지 않겠다는 듯

밤이 서둘러 어두워질 때

방금 물에서 건져 올린 수평선을

둥글게 말아쥐고 보름달이 뜬다

 

전생에서 이생으로 건너오는

영혼을 위해 최초로 만들어지는 옷

그 배내옷을 만들기 위해 달은

날마다 바닷물을 길어 올려 천을 짓는다

 

명주실을 한 올 한 올 풀어

밀물과 썰물을 엮어 짠 물의 직물

배내옷이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

둥글게 부풀었다 작아지는 달

 

배내옷이 하얀 것은 달빛이 배어든 흔적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달 속에 맡겨둔

물의 옷을 찾으러 가는 여정이다

이생을 다하고 다음 생을 건너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로 지은 옷이 필요하다

 

오늘도 물의 옷을 지으려고

밤하늘에는 달이 빛의 실타래를 풀고 있다

 

 

 

꽃들의 발목이 조용하다

                         

         

정용화

 

 

안녕, 인사의 말끝을 무심히 중얼거리다 보면 마음의 얼룩이 차가운 바람으로 불어온다 봄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꽃들이 길가를 걷고 있다 보도블럭 위에는 오래전 꿈에서 꺼낸 얼굴이 떨어져 있었다 외로움 근처를 오래 서성인 사람의 주머니 속에는 두께를 알 수 없는 기억들만 가득 일렁이는데

 

손이 없는 것들은 어떻게 서로를 부르는 걸까 간절한 사연들이 저문 눈빛마다 마른 잎사귀를 심어둘 때 얼굴은 잃어버린 표정들의 무덤이 된다 시기를 놓친 말들은 유통기한이 짧아서 마음 속 오래 방치된 웅덩이가 되고 깨진 꽃들의 발목을 쥔 채 너를 부르면

 

문득 손을 넣었는데 눈, , 입이 만져지는 너의 주머니 속에서 오래 웅크리고 있었다 오후 세시를 불러다 놓고 건넬 말을 찾는 동안 주머니에 손을 넣어 추운 이름들을 쥐고 여기에 없는 너를 따라 얼굴 없이 걷고 또 걸었다 한발을 더 내디디면 이름을 버린 꽃들의 시간이다

 

 

캐스트

 

                                       

정용화

 

 

허공이 빚어내는 몸들이 있다

 

뿌리 밑에 엎드려 아침을 잃어버렸다 죽은 이의 몸에 깃든 잠 속에서 이천년 동안 침묵하던 도시를 읽는다 낡아버린 손금 속을 뒤적이면 투명에 가까워진 마음들이 만져진다 캐스트, 오래 켜 둔 슬픔에서는 검은 안개들이 피어오르고

 

너는 어둠을 기다리는 정오의 낮달로 지상을 떠돌고 나는 아직 불타는 무덤 속이라서 초경의 아이들은 맨발로 피 묻은 돌을 줍고 마차가 달리던 길 위에 양귀비들의 군락이 창궐한다 저 흔들리는 붉은 심장들

 

캐스트, 생의 한 모서리에서 막 피어난 저 몸짓들은 우리가 전생에서 잠시 무릎을 맞대고 한 약속이 아닐까 죽은 성기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땅을 뚫고 나와 벌판을 달린다 몸을 완성하기 위해 떠도는 불투명의 마음들,

 

옛 도시가 껴안은 오래 전의 기억들처럼 하나의 전생을 가진다는 것은 더 큰 허공을 지어 얻는 일이었다 불에 탄 재를 눈꺼풀에 얹으면 미래는 밤을 달고 달리는 기차의 창문처럼 멀리서부터 드리운다

아침이 버린 폐허처럼 이 도시에 지천으로 피어난

수많은 심장들, 전생의 당신에게 붉은 손 내밀고 있다

 

 

 

 

바람의 매듭

 

정용화

 

 

바람을 삼킨 적 있다 텅 비어 허전해진 내 늑골 사이로 손을 넣어봐 어느 해변을 걷다가 우리가 떨어뜨린 겨울이 만져질 거야 어쩌다 세상 끝까지 밀려온 표선을 볼 때면 숨겨두었던 비밀 하나쯤 밝혀야 될 것 같다

 

저녁은 어두워지는데 집중하고 있다 바람이 불고 무수한 약속들을 다 떨군 빈 가지마다 눈은 흰 주석을 첨삭하느라 분주하다 몸 속에서 실처럼 엮이는 투명들, 안에서 부는 바람은 사람을 가장 아름답게 흔들어놓는다

 

사람은 자신의 다정만큼 이기적이라서 추위는 오래된 눈물 속에서 캄캄해진다 기만은 또 다른 최선을 요구한다고 기록한 문장은 무릎이 젖은 채 겨울을 하얗게 건너는 슬픔이라서

 

사람이 두려우면서도 눈빛이 그리울 때면 눈길을 걷느라 발자국을 다 사용해버렸다 시선이 빗나간 틈 사이로 해안선을 지나 조금 더 깊숙이 손을 넣어봐 함께 나누던 숨을 모으고 엮어서 바람의 매듭을 짜는 촘촘한 비밀이 만져질 때까지

 

 

 

 

 

(수상소감)

 

올해는 유난히도 추운 겨울입니다. 북극성 한파에 눈도 많이 내렸습니다. 얼마 전 잠시 추위를 피해 태국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29명의 일행과 함께 패키지여행을 하는데 그 중 한 가족이 초기 치매에 걸린 노모를 모시고 왔습니다. 증상이 더 심해지기 전에 가족들이 좋은 추억을 만들어드리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노모는 무척이나 외로워 보였습니다. 말도 별로 없었고 두려움이 가득 찬 눈빛이었습니다. 치매란 자신을 조금씩 지워가면서 자기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일이라서 그런지 홀로 쓸쓸히 겨울을 건너가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온몸에서 하물며 등에서조차 외로움이 묻어났습니다.

 

그 노모를 보면서 이번 <시여, 눈을 감아라> 최종 시의 첫 구절을 얻었습니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시산맥의 이 코너로 인해 한 편 한 편마다 치열하게 쓰려고 노력하였고 조금 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고치고 또 고치고 밤을 새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지난 일 년 동안 즐거운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며칠 전 김포에 눈이 하얗게 내리던 날 겨울이 데려온 반가운 수상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시 쓰는 것 말고 별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제가 그동안 20년 넘게 시를 쓰면서 지치고 힘들 때 늘 시로부터 위로를 받고 구원을 받는 느낌입니다. 문학이라는 나그네의 길에서 이제는 더 이상 걸어갈 수 없는 벼랑이고 바닥이라고 느낄 때마다 시가 저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었습니다. 시로부터 도망치지 말라고 다독이는 듯합니다.

 

늘 문학이라는 길 함께 동행하고 있는 가족들과 기쁨 나누고 싶습니다. 등단지나 지명도에 기대지 않고 좋은 시를 위한 이 코너를 마련해주신 시산맥 편집진에 감사드립니다. 소리 하나 없이 소복이 쌓여 사람들 가슴에 감동을 주는 흰 눈처럼 좋은 시 열심히 쓰겠습니다.

 

 

정용화 2001시문학으로 등단. 2006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2년 수주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흔들리는 것은 바람보다 약하다, 바깥에 갇히다, 나선형의 저녁, 서투른 다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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