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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전용)

 

☞ 舊. 공모전 당선작

 
작성일 : 15-07-13 10:03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105  

미궁 속에서 외 4편 / 이상남

 

 

앞만 보고 달리다

바늘구멍만 한 그 구멍에 초점을 맞추고

대가리를 들이미는 그 순간

!

 

몇 백대 일의 경쟁을 뚫고 마지막 찬스에 길을 잃다니,

잠시 천국이라는 착각에 빠지고 말았다

가슴팍 타고 뜨거운 피 줄줄 새어 나가는 줄 모르고

 

첨탑의 끝에 오른 별들은 반짝일 뿐 말이 없고

높아져갈 연봉과 기대에 찬 눈빛들의 끝없는 유혹

여기는 나의 꿈속 유토피아

벗어날 수 없는 올가미에 걸리고 말았다

 

서서히 뜯어 먹힐 고깃덩이를 위해

뽀얗게 덧씌운 스펙의 화장술

분업에 최적화된 지식 덩어리 전두엽 주름마다 촘촘하게 채우고

저벅저벅!

 

A+의 학점과 별에 대한 동경과

나의 유토피아에서 서서히 사라져갈 꽃들에게 줄

거품 같은 희망이 단단히 다져진,

숱한 그들의 꿈이 보석처럼 박혀 풍화작용을 일으키는

아피아 가도(Vis Appia)*

 

첨탑 꼭대기에서 묵비권을 당당히 행사할 줄 아는

핏발 선 마부작침磨斧作針**의 깃발을 펄럭이며

죽음으로써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는 미궁 속으로 들어간 자

그는 나의 아버지고 내 할아버지고

또 다른 미확인 생물체

그들의 암호를 해독 중이다

 

 

 

아피아 가도(Vis Appia) : 고대 로마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도로

** 마부작침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의미의 한자성어.

 

 

 

 

모라토리엄 증후군*

 

 

발톱을 깎는다

벼랑이 깎아놓은 외길을 걷다가

문득 매의 눈과 마주친 섬뜩한 순간

푹 수그러진 고개를 흔들며

알전구 하나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식탁 언저리에서 양말을 벗고

 

발톱을 자른다

발톱이 있는지 없는지 가끔 더듬어 확인해보다가

서서히 발톱이 되어버린 나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구릿한 양말 속에서

무관심한 세상에 떠밀려 백수로 버티다

서서히 끌려들어간 발톱의 모라토리엄기()

 

자라기를 기다린다 영락없이 잘리는 사슴의 뿔은

잘려나가면서도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또 자라야 한다

왜냐고 물어볼 기회를 주지 않아

그저 잘려나가려고 자란다

 

어떤 것을 선택할 수도 없는 길

멈춘 듯 보여도 흐르고 있는 물밑 치열한 전쟁을

퍼렇게 멍들면서도 버텨낸 물속 이끼들이 알고 있다

 

이끼 낀 발톱

시퍼런 멍울 닦아내지 못하고

잘려나간 발톱들의 무덤을 본다

이유 없는 무덤의 항변을 듣다가

균형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멀뚱멀뚱한 알전구 하나 건들거리는 식탁 언저리

구릿한 양말 속에서 아우성치다가

 

 

 

모라토리엄 증후군 : ‘유예정체된’ 이라는 뜻을 가진 경제학용어에서 파생되었다사회인으로서 지적육체적 능력이 충분하지만 사회에 나가지 않고 책임을 기피하는 증세.

 

 

 

 

쭈꾸미

 

 

심장아직도 살아 펄떡거리는데

팔다리 난도질당해 불판 위로 던져진다

 

온몸을 파고드는 화려한 스펙들

3대 7로 섞인 고추장과 고춧가루의 황금비율

맛객의 입 밖으로 흩뿌려질 레벨 세븐*의 감탄사를 위해

뜨겁게 몸부림쳐야 한다

 

사방으로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벌겋게 달아오른 불판막다른 골목이다

대답도 없는 이력서를 쉰 번째 밀어 넣어야 하는

더 이상 쓸 말도 지어낼 말도 찾아내지 못해

신물처럼 터져 오르는 청양고추의 뜨거운 맛

생채기 아리게 볶아칠 땐 항복할 수밖에

 

꿈틀거릴 때마다

뚝 뚝잘려나가는 자존심

약발도 없는 학위에 들이대는 무모한 칼날

서툰 입질에 흥건히 고이기 시작하는 먹물의 절규

 

뭉텅뭉텅 뜯어 던진 생미나리 한 움큼의 위로

눈이 시뻘겋게 익으며

고스란히 뿜어내는 쭈꾸미의 매운 삶

씹으면 씹을수록 되살아날 비릿한 스펙의 실체

되새김질로 범벅이 된 쉰한 번째 자소서**를 쓰고

앞 접시마다 오그라든 자존심줄지어 배달이 된다

 

 

 

레벨 세븐 토익 스피킹 테스트 레벨 단계의 하나로 18단계 중 7단계.

** 자소서 입사 지원을 위한 자기소개서.

 

 

 

 

천장 터에서

 

 

허기에 차 눈을 번뜩이는 이들

지하철 계단을 뛰어오르고 있다

동틀 무렵빛을 반사하는 빌딩의 독수리 창들

내 몸은 도시의 천장 터로 내던져진다

 

밤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심장으로 이어진 실핏줄 하나씩 터지듯

나를 야금야금 파먹는 시간의 풍화작용

이력도 없는 이력서는 소설이 된다

 

티베트 야칭스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

다 벗겨진 치욕의 순간을 덮어주는 독수리들의 날갯짓

웅크린 영혼 까발리고 있는 저들은

처절한 바람의 몸짓을 안다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에서 독수리 창 번뜩인다

담담히무덤덤하게 뜯기고 있는

마음을 비워버린 텅 빈 두개골들

빗장이 풀려버린 평생을 살아가는 하루살이

 

순식간에 먹히는 살덩이들

그래도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은 건

인골 공양 그릇으로 한 끼 식사를 하고 있는 나의 앞날을

내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노숙이 기생하는 그늘

숱한 얼굴들이 찌들어 있는 지하도 구석진 곳

차라리 저 빌딩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독수리에게

내 몸 다 내주고 싶다

 

횡단보도 불빛이 바뀐 순간

허기에 지친 독수리의 눈에 들켜버린 나

지금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달리자또 죽기 아니면 살기다 殺氣!

 

 

 

 

최북의 눈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를 구석에 두고

훤하게 비워 둔 한복판을 보고 있다

불쑥거리며 솟아오르는 고집은

벼랑 끝

호방하게 떨어지는 시선의 끝에서

한 송이 국화꽃잎으로 나부낀다

 

먹물 먹은 손가락

퍼런 정맥을 타고 꿈틀거리다

웅성거리는 전율이 되고

말 없는 새벽운무가 되고

남이 손을 대기 전

내 몸내가 먼저 손을 대겠다

송곳에 찔려 화끈거리는 자존심은

고통을 파먹으며 또 한 폭의 지두화指頭畵로 피어난다

 

시대가 싫어

계급도 편견도 없는 산수에 풍덩뛰어든

걸인의 껍데기를 쓴 호생관毫生館

폭설이 내리고 길을 지워버린

술과 바꾼 그림잔설에 덮여

소리 없는 폭포로 펄럭이다

떠도는 구름으로 얼어붙은 채

 

기암괴석으로 꼿꼿하게 앉았거나

황소 잔등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흔들리거나

울퉁불퉁한 고집으로 툭툭 불거지거나

산자락 기어오르는 선으로 퍼덕이다

끝내 피범벅이 된 그의 눈,

먹물에 덮여 풍장 중이다

그림 속에서

 

 

 

 

 

이상남_경북 포항출생

 

 

 

 

 

 

 

신인상 심사평 / 연금술사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는 7080년대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바가 없다그런데 지금 우리 시단에서는 현실풍자나 사회비판의식을 지닌 시가 별로 안 보인다해학성이나 골계미를 지닌 작품이 잘 안 보인다는 것은 전통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한다여기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고 있던 차에 이상남 씨의 시를 읽었다신인상 투고작들은 대체로 미학적인 부분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상남 씨의 시는 현실 상황이 내리누르는 동시대인들의 삶의 무게를 정확히 재고 있다특히 대졸 실업자가 양산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고용 현실에 대한 뼈아픈 진단은 미궁 속에서」 「모라토리엄 증후군」 「쭈꾸미」 등에 잘 나타나 있다한 편의 시가 속도감과 긴장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데 씨의 시는 잘 읽히면서도 섬뜩한 충격을 준다아침 일찍부터 도심을 달리는 샐러리맨들의 살기등등한 일상은 천장 터에서를 보면 정말 실감이 간다최북의 눈도 국외자의 광기를 선명한 색채 이미지를 동원하여 대단히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그런지 최북의 자화상처럼 섬뜩하다적당한 서정성과 적당한 난해성으로 무장하고 등단하는 많은 시인들 가운데에서 이상남 씨는 확실한 개성을 갖고 등장했으니 앞으로의 활동에 큰 기대를 갖게 된다시인은 모름지기 언어의 연금술사인데연금술사들은 사실 금을 만들지 못했다끊임없는 실패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과학을 발전시킨 연금술사처럼 절차탁마자신을 갈고 닦는 자세를 견지하기 바란다그러기 위해서는 손끝 재주에 만족하지 말고 전복적 상상력과 심원한 사회의식을 계속 유지해야 할 것이다이 땅의 현실을 고뇌하지 않으면 시인이 아니다더 절실히 슬퍼하고 더 사무치게 아파하기를그저 그런 시보다는 실패작이 낫다삶의 처절함과 언어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시를 써주기를 기대하면서 이 시인의 앞날을 오래오래 지켜볼 참이다.

 

 

심사위원 이승하최휘웅김경수박강우

심사평 이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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