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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전용)

 

☞ 舊. 공모전 당선작

 
작성일 : 15-09-07 12:17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199  

[제15회 창비 신인시인상 당선작] 김지윤


만월주의보 외 4편

 

 

 

담장 밑에 표정이 떨어져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입을 맞추고 바람을 불어넣으니

달입니다

빗자루로 마당을 쓸면 구름도 집을 떠납니다 

 

두 손에 물을 묻혀 얼굴을 닦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씻어도 닦이지 않는 표정이 있습니다

혀를 입술에 대보지만 나는 맛이 없습니다

나는 내 맛을 알고 싶습니다

 

입을 벌리고 달콤한 생각을 하며 달콤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달을 보며 수박이라고 말하면 달에도 줄무늬가 생길까요

눈을 감고 손을 더듬거리며 이건 냉장고 이건 티브이 이건 의자

모서리에 등을 기대앉으면 불안도 지탱하는 힘인 것 같습니다

 

입을 맞춘 달이 언제 저곳까지 차올랐는지

봄이라고 말하는 동안 봄이 오고

지구의 모든 목련나무 꽃들이 달로 한데 모였습니다

높은 곳에서 나를 본다면 어떤 표정으로 보일까요

내가 다시 지붕이나 마당, 골목에 내려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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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의 사람들

 

 

네가 바닷속으로 들어가던 날

너와 함께 밥을먹고 커피를 마시던 식탁이나

소란스러운 설겆이가 만든 이 나간 유리그릇들이 떠올랐다

방 안 모든 것들이 저마다 자기 안에 숨을 채우고 살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았지만 다른 집에서 함께 살았구나

 

밥그릇에 꽂아놓은 수저가 그릇을 떠날 때

나는 음식이 묻지 않은 깨끗한 식탁을 생각했다

사후는 주말 식탁에 앉아 홀로 밥을 먹는 세계

너는 정갈한 그릇에 담긴 한 사람 몫의 음식 같았다

 

나는 매일 정수리를 하늘에 부딪치고

바다에 들어간 사람은 저녁을 바다에 풀어 놓는다

창문을 열면 집 안으로 물이 쏟아지고

불리지 않으면 닦이지 않는 것들이 많구나

수면을 향하는 물거품들이 탄산수 같다던 네 말처럼

마음껏 슬퍼한 기억은 청량감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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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사의 꿈

 

기르던 개를 화분에 묻었어

새싹이 흙을 뚫고 올라와

 

흙을 걷고 죽은 개의 냄새를 맡곤 해

물을 줄 때면 나는 젖은 개의 표정을 알 수 있어

수면제를 먹고 잠든 엄마의 속눈썹이나

손도끼 날에 비친 아빠의 얼굴

어린 강아지의 목을 양팔로 끌어안으면

내 불안은 강아지의 불안으로 넘어가지

 

세상의 모든 정원사들이 모이는 만찬을 꿈꿨어

꽃과 나무들이 가득한 곳에 내가 서 있고

사람들은 술과 음식을 먹으며 침묵해

손수레에 실려 나오는 은색 접시

내가 키운 꽃이 잎을 흔들며 젖고

내가 키운 꽃이 허리 굽혀 울부짖어

 

기른날 보다 오래 물을 주고 있어

화분 밑으로 새는 적토를 치우며

엄마는 잠든지 오래

화분이 다 자라고 나면 함께 묻어드릴께요

그러니 죽지 말고 잠들어 계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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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고양이

 

 

나무 그늘에 검은 고양이 한마리가 눈을 감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고양이에게 없는 사람

나 눈 감고 생각하니 나무 밑엔 그림자만

 

나는 고양이를 보고 있었다고 말할 수 없고

고양이는 기지개를 펴며 내 발끝에 닿는다

복숭아뼈에 얼굴을 비비는 고양이

발목이 지워지며 밤이 온다

 

검은 하늘에 투명한 고양이들이 모여 있다

 

고양이의 시간과 공간은

이곳과 달라서 고양이들은 추억이나 불안

이정표나 일방통행 등의 어떤 표기도 의존하지 않는다 꼬리를 세우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고양이의 도도한 걸음 

 

나는 쓰지만 쓰는 건 실체가 없으므로

고양이가 방금 생긴 균열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빈 거실에 홀로 앉아 저녁을 먹는다고 쓰고

 

점심을 다 먹어치우지 않았다면

밤도 오지 않았을 텐데

골목을 걷는다

 

나는 내 고양이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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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동

 

버린 쪽지을 찾아 걷는 일

날려 보낸 종이비행기가 구름에 걸려 떨어지지 못하고

같은 계절 위로 다른 비가 끝도 없이 내려 운동화가 젖는 일

회색으로 변한 새 신발을 보며 우울해하는

 

내가 쓰고 버린 말들을 뱃속에 담는 일

폐지를 잔뜩 실은 채 홀로 높은 언덕을 걸어 오르다

덜컹, 날아간 종이보다 먼저 바닥에 주저앉는 일

 

몇년 전 연락이 끊긴 사람에게 계속 엽서를 보내고

마지막으로 만났던 장소를 맴돌고

올려다본 하늘에 휘청, 하루가 통째로 흔들리는 일

 

잠에서 깨지 않는 엄마 곁에 누워 가슴을 만지고

취한 아버지 몰래 날카로운 것들의 끝을 부러뜨리고

한데 모아 입안에 털어 삼키는 일

남몰래 혀를 씹는 버릇 같은 일

 

배 나온 알몸을 거울에 오래 비춰보고

거울 속 어디에 나를 방치하면

내가 잠에서 깨어나 잇몸을 보이며 웃는 일

오늘이 오후로 접혀 버려지는 그런

 


김지윤 / 1985년. 전남 나주 출생. 대진대 국문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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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김지윤을 당선자로 뽑는다. 그의 시는 다른 응모자들의 작품에 비해 소탈하다. 그래서 천천히 마음을 움직이는 개성을 가졌다. 무엇보다도 기계적으로 학습된 수사에 기대지 않고 문장의 흐름 위에 자신의 정념을 위치시키는 방법론이 인상적이었다. 만약 이것이 반복된 학습의 결과라면 그의 시는 시적 기술을 극복한 사례이며, 반대로 절실한 표현의 효과라면 그의 정서는 자체로 시적인 결을 이룬다고 할만하다. 요컨데 그의 시가 거대하거나 완벽하거나 새롭게 때문에 심사자들이 그의 시를 꼽은 것은 아니다. 시적 전략과 과잉의 포즈가 만연한 시단에 비추어, 그가 보여준 직정과 낮은 어조와 소박한 도달이 좋았다. 당선자는 이 점에 대한 반성과 자부를 함께 가져야 할 것이다.

독자가 없으면 시는 존재할 수 없다. 시를 두고 벌어지는 수많은 논의 속에서 가끔 잊게 되는 말이다. 심사자들은 첫 독자로서 작품에 감동하기를 원했다. 아쉽게 당선하지 못한 응모자들에게는 격려를,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보낸다

-심사위원 : 김소연 백상웅. 신용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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