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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전용)

 

☞ 舊. 공모전 당선작

 
작성일 : 15-09-08 09:31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898  

[2015 실천문학 신인상 당선작]

 

장화홍련뎐 외

 

안은숙

 

 

빵틀 없이도 구울 수 있는 빵은

삼단으로 나뉘어 땋은 할라빵

 

권선징악은 틀이 아니라 맛의 미담(美談)이므로 선과 악은 발효의 차이다. 미지근한 물에 밀가루와 이스트로 스펀지반죽을 하면 장화가 부풀고 첨가물이 필요한 넌 아직 홍련.

 

한 어머니가 두 딸의 머리를 땋고 있다. 머리를 엉켜 놓는다. 엉킨 머리카락은 발효된 반죽 같다. 숨죽인 장화와 홍련은 아빠가 오길 기다린다

 

털이 있는 곳마다 부푼다

 

여섯 갈래 반죽이 된 친절과 성숙은 여섯 갈래 밧줄처럼 갈라진다. 가운데 머리를 잡고 오른편 머리채를 왼편으로 넘기면 왼편 머리채는 오른쪽으로 넘어간다. 이불 속에선 다리 잘린 쥐가 꼬리를 찾고

 

머리채 어디에 저렇게 봉긋 솟은 발효가 들어있었을까. 치렁치렁한 머리채가 부푸는 나이, 엇갈린 정리에 연못이 자라고 있다

 

홍련과 장화는 꿈의 자매,

쥐가 머리채를 타고 오르내린다

 

할라빵이 끊임없이 구워져 나오는 연못, 미지근한 물살에 누군가 알람을 던지면 묶여있는 머리채가 파문으로 풀어진다

 

권선징악, 동화는 노릇하게 구워진다

흉담은 겉장을 찢고 나오고 미담은 여전히 책 속에 있다

 

별지

 

 

얇은 별지 한 장,

어디에 붙일까 고민하는 동안 날짜는 고정되어 가고

주소들은 고딕체가 되어가지

 

처음에 생기는 감정은 어느 곳에건 붙일 수 있는 감정, 쉽게 뜯어질 수도 쉽게 구겨질 수도 있는 감정

 

점력粘力은 감정의 별지다

그러므로

굳이 본문의 눈을 피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골라낸 말들로 멋을 낸

꼬리 잘린 연애의 문장들

 

본문의 글자들을 피해 만들어낸 글자들로 읽을 것, 한 번도 지은 적 없는 표정으로 읽을 것

 

별도의 감정은 재질부터 다르다

제일 먼저 물드는 잎은 별지이고,

가장 늦게 물드는 잎도 별지다

두 장 이상이면 넘기는 침이 묻는다

 

뒤가 생긴다

뒤가 생긴다는 것은 비밀을 뒤에 둔다는 것이고

눈속임을 두어 장 더 끼워 넣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별지의 답장은 별지이고

숨어서 가는 한때이다.

 

빨간 서재

 

 

가지런히 벗어놓은 옷들보다 헝클어진 일기가 좋아. 황급한 방, 서재의 책들을 파르륵 넘기다 떨어진 몇 개의 글자들로 야설의 제목을 정해도 좋아. 빈방이지만 두근거리는 거주가 있어 좋아.

 

우리는 설레는 촌수. 언니의 방향은 남남이고 어느 방향은 부정이 되는 관계. 아무도 모르는 촌수.

 

누군가 훔쳐보고 간 제목들. 겉장의 빗장을 열어두고 가는 내용들엔 꼴깍, 침이 넘어가는 대목이 참 많아 한 며칠 그곳에서 살고 싶기도 하고 설령, 접혀있는 페이지가 많은 책 속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등장인물로 갇히고도 싶은 책.

 

책갈피에 숨겨 둔 사진, 질투에 여러 권의 책에 꽂기도 해. 나는 긴 머리카락을 가진 빨간 다리의 바깥 여자. 짧은 은밀함과 긴 귀가로 비틀거리는 거짓을 연출하기도 하는 당신의 촌수.

 

어느 집이건 빨간 촌수는 있고

 

 

문 안쪽이 바깥이 되는 바깥의 방, 빗장은 안쪽이 되고 자물쇠는 바깥이 되는 곳. 언니를 지나면 열리는 빨간 서재.

 

바람은 가르마를 잘 타지

 

 

바람은 가르마를 능숙하게 잘 타지

풀밭 가르마를 타는 바람

 

나는 풀밭의 태생

나는 가르마를 잘 못타는

엄마의 딸

당신의 결정을 한 번도 머리에 얹은 적 없지

 

머리카락의 경도

바람이 머리를 잘 땋는다는 것은 아주 사소한 일

밀반죽 여섯 갈래를 땋고 있는 빵집 주인

할라빵을 내어놓고 있지

머리카락은 언제나 발효되어 있지

 

나의 유희는 나누어진 중간에 있지

나는 뛰면서 나의 반을 확인해

중심에서 기우뚱거리려 노력해, 나는

바람은 중심을 알려주지

 

우리는 나누어진 사이를 반드시 만들려고 하지

이것은 가장 안락한 형태

당신은 나의 찡그린 한 쪽으로 들어와

그 후로 당신은 나를 늘 찡그리게 만들었지

당신이 반으로 갈라지고 싶거든

바람에게 청탁해

 

우리 동네 미장원 언니 가르마를 잘 타지만 이혼을 했지

바람이 안 생기는 가르마가 두피를 버리고

머릿속으로 숨어버렸지

 

아이들은 가르마에서 태어나지

정확하게 반이 나뉘어져 있나요?

내가 처음으로 들은 엄마의 말이었지

 

인형양초 공장 아가씨

 

성탄절을 떠올리거나 촛대를 떠올리는 옷차림의 아가씨가 있었어요. 흔한 일은 아니죠. 해가 기울면 목을 심지처럼 세우고 골목을 지나 양초 공장으로 출근을 했죠. 앞모습은 밝고 뒤태는 흔들거렸죠. 계집아이들은 인형양초의 틀이 되고 싶어 했죠.

 

설레는 심지는 불꽃을 흔들며 타오르죠. 아가씨의 발밑은 늘 주름치마처럼 흘러내린 촛농으로 가득했어요. 갈래갈래 흘린 웃음으로 바닥이 미끄러웠죠. 오빠들은 저녁 무렵이 되면 안달이 났어요. 성냥불처럼 들떴지요.

 

정전이 잦은 변두리 동네, 그런 날이면 그녀는 더욱 불꽃을 살랑거렸죠. 원래 소문은 흔들리며 타는 촛불 같겠죠. 우리는 그 소문을 흠모했지요. 뜨거운 체온의 아가씨가 노크를 하면 자취방문이 열리고, 남자들은 녹아 사라진다는 빨간 표지를 한 얇은 소문.

 

아가씨가 사라질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오빠들. 골목은 아가씨가 녹인 흔적으로 미끄러웠지요. 가연성 아가씨, 인형양초처럼 녹아내리고 싶던 아가씨. 말랑말랑한 마음을 굳힌 파라핀 같은 남자가 있었지만 소문은 너무 발화성이 짙고. 달이 반쯤 녹은 날, 순식간에 불에 타고 말았지요. 아가씨가 심지처럼 그 속에서 같이 타고 있었을까요?

 

흘러내리는 방식으로 아름다웠던 아가씨, 양초는 불빛이 꺼져도 흔적은 남아 있지요. 지금은 마을마저도 흔적만 남았지만요.

 

안은숙

서울 출생.

건국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석사 졸업.

현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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