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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옆에 작가명을 써 주세요 (예: 작은 위로 / 이해인)

 
 
  
 작성자 : 양현주
작성일 : 2016-02-16     조회 : 837  



박일만 시인의 신작 시집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 시인의 말

 

언어가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끊임없이 찾아가는 곳이

모천母川이라면

내가

이 메마르고 각박한 세상에서

시를 쓰는 것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나의 뿌리를 찾아가는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안을 들여다보며

내 몫의 관계 맺음들을

맞이하고,

사랑하고,

아파한다, 결국

 

 

2015. 여름

박일만

 

 

 

 

■ 시집 속의 시편들.....

 

 

 

처서處暑

 

 

풀씨를 쪼던 새들이 무리지어 솟구친다

계절 내내 끓어오르던 들판에 김이 오른다

기차가 하얀 창을 빛내며 길계 질러간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몇몇 사람들이 초병처럼 들판에 박혀 있다

가랑잎이 반짝였는가 싶더니

뿌연 안개가 높은 나뭇가지 위로 한 발짝 물러나 앉는다

 

아버지 몸에서 냄새가 나던 날이 있었다

 

낱알을 꿈꾸는 마당에 새떼 다시 날아와 쪼아대다가 처마 밑으로 잦아든다

저린 무릎을 받친 감나무가 서릿발을 견딜 채비한다

신작로 쪽으로 마음을 켜둔 집에서는 인기척을 하얗게 피워댄다

맺히는 것들이 더욱 안으로 문을 닫아걸며 제 살붙이들을 단속한다

 

내 몸에서 처음 냄새가 나는 계절이다

 

 

5월 여자

 

 

나뭇가지들 흠칫흠칫 자란다, 초록말

가슴을 톡, 치면 이슬 구를 듯, 초록말

바야흐로 순결도 푸른빛이다, 초록말

팽팽하다, 초록말

곁눈질로 마음 뻗던 뭇 나무들, 초록말

내뿜는 정전기에 푸르르 놀라, 초록말

한 발짝 물러서는, 초록말

 

심장을 뜨거운 시선으로 부순다, 초록말

직선으로 돌진해 와, 초록말

묵정밭 쟁기질을 해대는, 초록말

푸른 관능이다, 초록말

태양의 유적을 여는 비밀 열쇠를, 초록말

가슴 가득 품고 있는, 초록말

무궁한 창고 같은 그녀, 초록말

도발적 색채로 쏘아대는, 초록말

볼륨이 산 끝까지 튀어 오른다, 초록말

그녀에게 감전되는 계절이다, 초록말

 

 

발파명령, 이후

 

 

자궁을 들어내고 병실로 온 누님은

여러 날째 짐승처럼 울었다

 

단 한 번도 허투루 살지 않은

강변 복사꽃 살구꽃 순하던 몸에

갈퀴를 들이대어 죄다 잘라내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주검처럼 드러누운 누님에게 해준 일이라곤

가랑이 사이로 흘러내리는

진물을 닦아주는 일뿐

 

침묵하고 외면하고

 

더 이상 피가 돌지 않는 아랫도리를

더 이상 물길이 막힌 속살을

네 갈래로 찢으며 무시로 드나들던 중장비들

피 묻은 손을 몰래 씻고 있었다

 

수평을 깎아 수직을 세우는 나라

강가 들풀에게 붕대를 친친 감아 놓은 나라

타고난 토건 유전자로도 모자라

강 따라 물 따라 시멘트를 발라 놓은

 

참담하고 미안하고

 

자궁을 긁어내고 병실로 온 누님은

내내 짐승처럼

울음덩어리를 뱉고 있었다

 

 

주소지

 

 

담장과 담장을 잇는 연대의식

끝 간 데 없이 다리 뻗고

무리들과 어깨 견주며

지적도 위 한 점으로 있습니다

싹을 틔운 점은

줄기 뻗고 날개 펴고 식솔 매달고

발목 붙잡힌 나무 되어 갑니다

낡아가는 집 한 채에도

익숙하게 마음 붙이고 살아가는

생의 좌표

우편물이 오차 없이 배달되고

꽃바람도 이웃인 양 들고 납니다

오랜 외출에서 돌아와도 흔적 쉽게 발견하듯

한곳에 머물수록 깊어지는 나의 뿌리

땅속 물길까지도 환히 가늠하는

관습적인 행보로 서 있습니다

 

 

 

 

 

 

   
 

 장수 출생의 박일만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서정시학·9,900원)’를 펴냈다.

 시인은 생활에 밀착된 언어들을 끄집어내 총 47편을 담아냈다. 그의 시적 테마는 존재론적인 시인 자신의 문제와 아버지, 누님, 장모, 아내, 아이들 등 혈연관계와 연인, 자연, 여행 시 등 다양한 형태를 넘나들며 펼쳐보인다.

 그는 인간의 심성을 섬세하게 살펴보기 위해 세상살이에 미숙했던 청춘, 인생의 외줄타기, 이 시대의 가장이 짊어져야만 하는 뿌리의 무게, 차마고도라는 험준한 여정 등의 소재를 택했다. 물론, 개인적인 감성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인간의 본성과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들을 담아내는 모습이다.

 박미산 시인은 해설을 통해 “박일만의 이번 시집은 생활에 밀착된 언어들을 시인이 끄집어내어 싹을 틔워 마침내 큰 숲을 이루고 있다. 철저한 장인의식으로 일상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삶의 비의를 캐어낸다”면서 “시인은 속세의 삶도 그 너머에 있는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세계의 삶도 시적 형상으로 담아냈다”고 말했다.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정(詩)을 수료하고, 2005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사람의 무늬’가 있으며,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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