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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전용)

☞ 舊. 문학강좌

 
작성일 : 16-01-08 10:47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813  

고정희, 그가 남긴 여백

 

박혜란 (여성학자)

 

해마다 6월 첫 주말을 해남행으로 잡아 놓은 지 벌써 12년째다. <또 하나의 문화>(이하 또문) 동인들은 그렇게 1년에 한 번씩 해남 송정리의 고정희네 집(태어났던 곳과 잠들어 있는 곳)을 찾는다. 한동네에 살아도 친구나 지인의 집을 방문한다는 일이 점점 번거로운 행사가 되어가는 게 요즘의 도시생활이다. 그러나 해마다 고정희네 집을 찾는 일만은 늘 가슴을 설레게 하고 또 아리게 한다.

 

고정희 생가에 들러 아직도 체취가 흠뻑 남아 있는 그의 유품들을 둘러 보고, 청량한 솔바람이 반겨 주는 그 무덤의 푸른 잔디를 쓰다듬고, 나날이 주름이 늘어가는 큰올케가 정성 들여 마련한 돼지고기와 수박을 배불리 먹고, 그리고 저녁 늦게 대흥사를 기웃거리는 일과는 또문 동인들에게 이제 하나의 신성한 의례로 자리잡았다. 분망하다 못해 분열적이기까지 한 일상에서 허우적거리던 동인들은 이렇게 1년에 한 번씩 고정희와의 만남을 통해 다시 한 번 호흡을 가다듬는다.

 

동인들뿐만 아니다. 살아 생전 곳곳에서 고정희와 인연을 맺었던 이들이 불쑥불쑥 나타나 이물없이 동행하기도 하고 생전에 고정희와 아무런 연결이 없었던 해남 지역의 문인들도 절반은 손님처럼 그리고 절반은 주인처럼 부드럽게 어울린다. 10년 되는 해부터는 고정희를 이름으로도 알지 못했던 어린 소녀들이 함께 해남행 버스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고정희의 무덤에 술을 따르고 그의 시를 노래로 만들어 부른다. 나의 친구 고정희는 이렇게 서서히 역사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런데, 나의 친구 고정희―이 말이 맞나? 1991년 6월 7일(?) 필리핀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오랜만에 또문 월례논단에서 ‘여성주의 문체혁명과 리얼리즘’이란 주제로 발표를 마치자마자 그는 지리산으로 떠났다. 가뜩이나 작은 몸피가 오랜 이국생활로 한층 줄어든 몸에 커다란 배낭을 지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이튿날 그는 뱀사골 계곡에서 발을 헛디뎠다. 그의 장례식은 11일날 광주 지역의 문인 친구들이 마련한 민족문학인장으로 치러졌는데 철저하게 남성중심적인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내내 미흡해 했던 또문 친구들은 서울로 돌아온 직후 여성주의적인 의식을 새로 치르기로 이미 뜻을 모으고 있었다.

 

고정희가 죽은 지 한 주일이 지난 6월 15일, 아카데미하우스에서 <고정희를 보내고 부르는 마당>이란 이름으로 치러진 추모제는 전통적인 의례형식을 살리되 자매애를 강조하고, 고정희가 비록 기독교인이었지만 기독교에 제한되지 않고 불교와 무교까지 아우르는 형식을 취한 매우 독특한 의례로서 참석자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각인되었다.

 

또문 동인들은 일생 흘릴 눈물을 그 한 주일 동안 다 흘렸던 것 같다. 나도 정말 끔찍스럽게 울어댔다. 내 몸 어디에 그토록 풍성한 눈물보가 숨어 있었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울음이 그치는 짬이면 궁금증이 솟아올랐다. 아니, 고정희란 사람이 나한테 이토록 가까웠던가, 그는 도대체 나에게 어떤 존재였길래 나를 이렇게 울리는 걸까.

 

솔직히 추모제를 치르는 내내 나를 비롯한 또문 동인들은 고정희에게 친구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을 재삼 확인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성별과 나이와 직업을 초월해서 고정희를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상상 이상으로 광범위했다. 해남을 떠나온 이후 20여 년 간 고정희가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또 고정희의 사람 사귀는 법을 생각해보면 그건 아주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정희와 특별한 인연을 맺은 이들이었으며 하나같이 고정희의 죽음이 던진 충격 속에서 헤매는 중이었고 졸지에 사랑하는 벗, 후배, 선배를 잃은 아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더듬거렸다. 또문 동인들은 이제 비로소 그들이 알았던 고정희가 고정희의 아주 작은 부분이었음을 깨닫고 있었다.

 

추모제에 왔던 고정희의 친구들에 비하면 나와 고정희의 관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물론 또문의 몇몇 동인들과 비교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과 사람이 사귀는데 있어서 시간은 단지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아무리 그렇다 쳐도 내가 고정희와 알고 지낸 기간은 햇수로 쳐서 고작 7년밖에 안 됐을 뿐만 아니라 다정한 전화나 편지 한 장 오고 가지 않은 지극히 덤덤한 사이였다. 그리고 또문 동인지나 여성신문을 만들면서 함께 일했던 그 짧은 기간에도 어쩌면 다정한 말보다 사나운 말로 서로를 긁어대기 바빴었다. 만약 살아 있었으면 지금쯤에야 겨우 친구라고 불러도 괜찮을지 모를 그런 사이였다. 무엇보다 나는 고정희를 친구로 삼기에는 그와 내가 살아온 길이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다. 고정희 역시 같은 생각이리라 짐작했다. 나는 그를 인간미가 증발된 쇠고집퉁이라고 불렀으며 그는 나를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정실부인이라고 불렀었다.

 

그러나 그는 죽음과 동시에 나의 친구가 되었다. 그의 죽음이 그토록 억울하고 안타까웠던 건 단지 우리 시대의 걸출한 시인이자 실팍한 여성운동가를 잃었다는 상실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어느새 그를 내 인생의 중년에 만난 귀한 친구로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그가 죽어서야 나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고정희를 만난 건 1984년 가을 이화여대 여성학과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마련된 과 특강에서였다. 기실 『이 시대의 아벨』 이후 난 그의 열렬한 독자였다. 자칫 중산층 가정주부의 몰사회성에 빠져들려던 내게 그의 시는 일종의 각성제 구실을 단단히 했던 터였다. ‘한국 여성문학의 흐름’이란 주제였지만 강의 말미에 그는 갑자기 ‘광주를 잊으면 안 됩니다.’라는 말로 결론을 맺었다. 아마도 수강생들이 여성문제에만 파묻혀 민족과 민중의 문제를 간과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신촌역 앞의 토속주점에서 뒤풀이가 있었다. 난 선생님의 시를 읽었다면서 약간은 아양을 떨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함박꽃처럼 피어오르던 그의 웃음. 하지만 눈매에 담긴 쓸쓸함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던 그 기묘한 조화.

 

그 이후 7년간 고정희와 나는 자주 만났다. 특히 1988년 여성신문의 창간을 전후한 1년 동안은 편집주간과 편집위원으로 일하면서 거의 매일 만났고 매일 마셨고 매일 싸워댔다. 우리집이 여성신문사와 5분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고정희는 걸핏하면 신문사 일을 끝낸 늦은 밤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붉은 포도주 한 병을 손에 들고.

 

싸움의 주제는 언제나 두 가지였다. ‘민중이냐, 여성이냐’와 ‘개혁이냐, 개량이냐’. 고정희는 중산층 여성들의 온건노선에 넌더리를 냈다. 그러나 여성운동의 대중화를 지향하는 경영진과 편집진들은 고정희의 과격성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념의 충돌과 상관없이 고정희는 여성신문을 한국 최초의 여성정론지로 자리매김하는 데 온힘을 바쳤다. 힘들게 모은 돈으로 안산에 아파트를 마련했던 그는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까지 신문사에 남아 있었다.

한번은 그의 아파트에서 또문 동인지 편집회의를 연 적이 있었다. 동인들은 화장기 없는 얼굴에 항상 수도사처럼 질박한 차림으로 다녔던 고정희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고 놀랐다. 인테리어는 물론이려니와 차주전자 하나에서까지 정성과 안목이 밑받침된 세련된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그는 타고난 살림꾼이었다. 주부경력 20년차였던 나는 주눅이 든 채 공연히 심술이 났었다. 아니 이렇게 깔끔 떨며 사는 여자가 우리 집을 어떻게 참아냈을까 싶었다.

 

그날 밤새도록 동인들은 고정희와 내가 서로 주고받은 욕설 때문에 잠을 설쳤다고 했다. 또문 동인들은 아마 태어나서 쌍시옷 발음 한 번 못해봤기 십상이었기에 우리 둘이 잔뜩 취해서 이 세상의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모아서 쏟아 내는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았었나 보았다. 지금까지 두고두고 그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보면.

어떻게 해서 욕이 시작되었는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짐작컨대 누구의 소설 이야기를 하다 발동이 걸렸던 것 같다. 두어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뱉어낸 욕설들은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읽었던 소설에서 봤던 것들인데 그것들이 뇌 어딘가에 납작 엎드려 있다가 그날 봇물처럼 쏟아져나왔나 보았다. 한 사람이 뱉어내면 둘이 한참을 깔깔거리다가 또 받아내고, 그러면 다시 한번 웃음바다가 됐다가 또 이어지고……. 나중에 우리는 그때 녹음기를 꺼놓은 걸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두어 시간 동안 계속 욕을 주고받았다면 웬만한 욕 사전 한 권쯤은 너끈히 꾸미고도 남았을 것 아닌가. 하지만 그날 아침 우리 둘은 다시 새침 떠는 교양녀로 돌아왔고 질펀하게 쏟아냈던 그 욕들은 어디론가 감쪽같이 숨어 버렸다. 그 욕 사건을 계기로 고정희와 나 사이에 쳐 있던 장막이 걷혔다.

 

창간 이듬해 여성신문을 그만둔 고정희는 그해 가을 『저 무덤에 푸른 잔디』를 들고 나타났다. 일곱 번째 시집이었다. 그토록 빠듯한 일과 속에서도 그는 새벽 다섯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시를 쓰던 노동자였다. 나는 여성신문에 실릴 인터뷰를 하기 위해 그를 만났고 그와 처음으로 싸우지 않고 다섯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는 내가 여전히 존경하는 시인이었고 나는 착실한 독자였다.

 

이젠 생계를 위한 직장생활은 그만두고 시만 쓰고 살겠다던 다짐대로 그는 1990년 하반기에 세 권의 시집을 냈다. 『광주의 눈물비』와 『여성해방출사표』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 하나』. 나중 두 권은 그가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탈식민주의. 시와 음악 워크숍”에 참여하러 한국을 떠난 사이에 나왔다.

여성해방운동이라는 전제하에서 쓴 최초의 시집으로 기록될 『여성해방출사표』에서 고정희는 오랫동안 심각하게 갈등해 온 사회변혁운동과 여성해방운동의 접점을 찾으려는 의지를 뚜렷이 보여 주었다. 특히 이 시집의 3부는 고정희가 여성해방운동의 걸림돌이라고 입버릇처럼 강조해 왔던 여성끼리 갈라서기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비전을 한 편의 연극처럼 풀어내고 있다.

내가 『아름다운 사람 하나』를 읽은 건 고정희가 죽은 이듬해 또문 동인지 9호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에 추모글을 쓰기 위해 그의 모든 시집을 통독했을 때였다. 그의 연시들만 모아서 시집을 낸다고 했을 때 난 도무지 탐탁지 않았다. 안정된 수입이 보장된 중산층 주부의 이기심 탓이었으리라. 내가 존경하는 시인은 이슬만 먹고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심리가 작동했다. 그래서 시집이 나왔을 때 외면했다.

 

뒤늦게 그의 사랑노래를 읽으면서 나는 펑펑 울었다. 그 사랑이, 그 외로움이 너무 깊어서. 생전에 그가 즐겨 부르던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머릿속에서 웅웅거렸다. 사랑하는 이에게 뿌리침 당한 고정희는 가끔 내게 그 상처를 내비쳤지만 나는 속수무책으로 고작 포도주나 권할 뿐이었다. 그런 날 새벽에 고정희는 연시를 썼나 보았다.

 

고정희의 마지막 시들은 그가 죽은 지 꼭 한 해가 지나서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로 묶여 나왔다. 1부 ‘밥과 자본주의’는 마닐라의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새삼 발견했던 자본주의라는 악령에 대한 분노를 거침없는 입담으로 토해내고 있다. 3부는 남남북녀의 혼인잔치라는 형식을 빌려 민족공동체를 넘어서 인류공동체가 평화롭고 평등한 삶을 누리기를 간절히 원하는 통일굿 마당이다.

그리고 이 시집에는 고정희의 죽음이 알려지자마자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껏 호기심을 드러냈던 그의 마지막 시 「독신자」가 들어 있다.

 

환절기의 옷장을 정리하듯

애증의 물꼬를 하나 둘 방류하는 밤이면

이제 내게 남아 있는 길,

내가 가야 할 저만치 길에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크고 넓은 세상에

객사인지 횡사인지 모를 한 독신자의 시신이

기나긴 사연의 흰 시트에 덮이고

내가 잠시도 잊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달려와

지상의 작별을 노래하는 모습 보인다

오 하느님

죽음은 단숨에 맞이해야 하는데

이슬처럼 단숨에 사라져

푸른 강물에 섞였으면 하는데요

 

 

자신의 기도대로 고정희는 뱀사골의 계곡 물에 섞였다. 이슬처럼 단숨에. 시인은 예언자이다. 영정 속의 고정희는 해가 갈수록 젊어가고 그가 남긴 여백은 날이 갈수록 점점 커져만 간다.

 

고정희 (1948~1991) / 전남 해남 출생. 한국신학대학 졸업. 1975년 《현대시학》에 박남수 시인 추천으로 등단.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실락원 기행』『초혼제』『이 시대의 아벨』『눈물꽃』『지리산의 봄』『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광주의 눈물비』『여성해방출사표』『아름다운 사람 하나』, 유고시집『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1979년~1986년 <목요시> 동인으로 활동. 1983년 『초혼제』로 대한민국문학상 수상. 1984년 <또 하나의 문화> 창간 동인. 1988년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 역임. 1990년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아시아 종교음악연구소 초청으로 아시아의 시인 및 작곡가들이 모여 1년간 벌인 ‘탈식민지 시와 음악 워크샵’에 참여함. 1991년 6월 9일 지리산에서 불의의 사고로 타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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