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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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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1-20 09:40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523  

정채원의 시 「공무도하記」읽기 : “그대 나를 건너지 마오”

 

권영숙

 

 

공무도하記 / 정채원

 

가는귀먹은 귀에 검은 이어폰을 꽂고

횡단보도를 건너간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포장마차

오뎅 국물과 소주잔을 건너간다

얼얼한 목구멍으로 언 별을 잔뜩 삼키고

동짓달 그믐밤을 건너간다

은하수를 건너 건너

간신히 다시 밝은 아침

입안에 군별이 가득 들어 있다

밤새 타들어 가던 머리 풀어헤친 여인이

강을 건너간다

주머니에 돌멩이를 가득 채운 채

 

 

그대, 나를 건너지 마오

 

 

—신작시집 『일교차로 만든 집』(2014, 천년의 시작)에서

 

 

「공무도하記」는 시쓰기의 천형을 형상화한 시로, 그 안에는 세 가지 서사가 숨어있다. 아득한 고조선의 가요로 알려진 「공무도하가의 고사와 주머니에 돌멩이를 넣고 강으로 들어가 자살했던 영국의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이야기, 그리고 현재의 "가는귀먹은" 나이든 시인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세 서사는 강을 매개로 전개된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결된다.

 

1. 「공무도하가」의 서사

 

시인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정시로 알려진 고대 가요 「공무도하가」를 시의 모티브로 삼으면서 살짝 변형을 주었다.

 

公無渡河歌

 

公無渡河 임이여, 그 강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 임은 그예 그 강을 건너셨네.

墮河而死 물에 쓸려 돌아가시니,

當奈公何 가신 임을 어이하리.

 

이 시는 머리를 풀어헤친 미친 남편이 술에 취해 강에 빠져죽는 것을 목격한 아내가 부른 애통한 노래라는 드러난 내용을 넘어서서, 고대의 모든 설화가 그렇듯 은유적 알레고리를 담고 있다. "강"은 모든 경계선의 총체를 담고 있는 은유어다. "강"은 삶과 죽음, 차안과 피안, 사랑과 이별, 이상과 현실, 욕망과 체념 등등의 경계선이며, 갈등의 영역이다. 시는 그 경계선에 아주 짧게 드러나는 깊은 갈등의 '표면'을 포착해서 들려주고 있다. 치명적인 경계임을 알면서도 걸어가야만 하는, 그럼에도 다 건너지 못하고 좌절해 가라앉아버리는 이의 깊은 좌절과 속수무책 그를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이의 비통한 마음이 시를 통해 전해진다.

 

이런 「공무도하가」의 서사는 시 「공무도하記」에 바로 그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채원 시인의 시집 『일교차로 만든 집』전체의 시세계와도 교묘하게 만난다. 시집에 수록된 시 곳곳에 시공간의 중첩, 교차가 큰 대립된 세계, 아무리 해도 넘어서지 못하고 미끄러진 실존의 풍경이 그려져 있다.

 

2. 「공무도하記」의 서사

 

가는귀먹은 귀에 검은 이어폰을 꽂고

횡단보도를 건너간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포장마차

오뎅 국물과 소주잔을 건너간다

얼얼한 목구멍으로 언 별을 잔뜩 삼키고

동짓달 그믐밤을 건너간다

은하수를 건너 건너

간신히 다시 밝은 아침

입안에 군별이 가득 들어 있다

 

첫 연의 주체는 정황상 정채원 시인 자신이다. 그녀의 현재가 흐른다. 그녀는 아마 이어폰을 끼고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공무도하가」를 떠올렸을 것이다. "건너"는 행위가 그것을 연상시켰을 수도 있고 듣고 있던 노래가 이상은의 「공무도하가」였을 수도 있다. 문득 그녀는 한 편의 시를 완성하기 위해 고통의 극한까지 다녀오는 일이 바로 「공무도하가」의 강물 건너기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자신의 행위에 "건너간다"는 표현을 쓴다. 백수광부의 하얀 머리는 "모자"로 , 술병은 "소주잔"으로 변용된다. 술에 취한 백수광부가 소주를 마시고 얼큰해져 강을 건너듯 그녀도 그녀의 강을 건넌다. 그녀의 강,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바로 시쓰는 일이다. 그녀는 동짓달 그믐밤을 새면서 "아직 시가 되지 못한 낱말들"을 잔뜩 끌어올리며 시를 쓴다. 밤새도록 애면글면 하는 숙고와 고통에 시달리며, 건너지 못할, 건너서는 안 될 사선의 강을 건넌다. 심지어는 지상의 강을 넘어 하늘의 강인 은하수까지 건널 정도로 극한의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간신히 돌아온 아침에 그녀가 건진 시에는 냄새나는 시어, 즉 상투적인 낱말들만이 가득 찼을 뿐, 결국 시쓰기는 실패하고 만다.

 

밤새 타들어 가던 머리 풀어헤친 여인이

강을 건너간다

주머니에 돌멩이를 가득 채운 채

 

이 부분의 주체는 둘로 볼 수 있다. 주체를 둘로 볼 수 있게 함으로써 겹겹의 은유를 가능케 하고 시간을 확대했다. 먼저 주체를 시인으로 놓자. 이제 주체가 여자임이 명시되어, 모자를 쓴 이가 시인 자신임을 거꾸로 명시한다. 밤새도록 시를 쓰느라 애쓰던 그녀가 이번엔 죽음의 강으로 들어간다. 상투적인 언어의 세계에 머무는 것은 시인에게 '죽음'이다. 그녀는 그녀만의 강, 시의 강을 건너다가 죽고 만다. 이것이 현재의 죽음이다. 다음으로 주체를 버지니아 울프로 볼 수도 있다. 시인은 자신을 마찬가지로 여류 시인이었던 "버지니아 울프"와 동일시한다. 그녀는 주머니에 돌을 가득 넣고 자살한 울프처럼 강으로 들어간다. 백수광부의 '술병'과 울프의 '돌멩이' 역시 죽음으로 가는 매개체이다. 그렇게 고조선과 영국과 한국의 공간과 고대와, 19세기와 현재의 시간은 만난다. 정채원의 시에서 이런 만남은 낯설지 않다. 그녀에겐 인생이 우로보로스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우주적인 환이다. 시집 『일교차로 만든 집』에 수록된 「여우호수」「지난 60년동안」「검은 달」「통과」「우로보로스」「발굴」은 바로 현 존재와 시원적 존재의 맞닿음, 즉, 한 존재 안에 구현되는 시간의 중첩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의 나는 저 먼 시원의 우주와 앞으로의 미래의 우주와 맞닿아 있는 순환 고리 중 한 점이다.

 

3. "그대, 나를 건너지 마오."의 해석

 

그대, 나를 건너지 마오.

 

이 단 한 줄이 있음으로써 「공무도하記」는 엄밀한 의미에서 시가 된다. 단순한 시에서 몇 겹의 해석이 가능한 공간이 넓은 시로 변모한다. 이 구절은 시의 주체, 발화자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읽힌다. "그대"와 "강"은 몇 겹의 은유로 읽힐 수 있다.

첫째, 그대를 '시인'으로 강을 "시" 혹은 "시인의 길"로 볼 수 있다. 여기선 시의 주체가 바뀐다. 전복의 구절이다. 「공무도하가」의 "公無渡河 임이여,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삼인칭의 대상이었던 "강"이 이제 명령어의 주체로 바뀌었다. 기존의 서정시를 하나의 주체가( 혹은 화자가) 일관성 있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본다면, 이 시는 일군의 젊은 시인들 사이에 유행했던 '탈서정적" 서정시에 가깝다. 바뀐 주체인 "강"은 앞 연의 주체인 시인에게 말한다. "시인이여, 이 길을 걷지 말라". 그것은 시인 자신의 내부에 있는 또 하나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시인은 강을 넘지 말라는 경고를 내부로부터 듣고 갈등한다. 시를 쓰려는 의지와 그 험한 길을 가지 않으려는 의지, 두 상반된 의지가 내부에서 갈등하고, 그것을 통합하고 넘어서려 시인은 끊임없이 노력한다. 정채원 시인은 인간의 내부에 있는 서로 다른 격차가 큰 자아의 분열과 갈등, 그것을 넘어선 합일의 가능성을 찾는 일을 이번 시집 『일교차로 만든 집』에서 추구해왔는데, 이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일교차란 것이 무엇인가? 하루에 교차가 큰 두 날씨를 말하는 것이고, 시인은 자기 내부의 일교차를 조화시키려 하나 끝내 좌절하고 미끄러지는 이야길 그녀의 시 「분열의 역사」, 「조각그림 맞추기」「짝눈」「에임즈 룸」「일교차로 만든 집」등등의 여러 편에 담고 있다. 이 모두가 어쩌면 「공무도하가 의 변주들일 수 있다.

 

그런데 "그대, 나를 건너지 마오"의 "나"를 시인 자신으로도 읽을 수도 있다. 두 번째 관점이다. 삼인칭 "그녀"를 1인칭 "나"로 시점을 바꾸었을 뿐 발화자는 동일한 시인이다. 그러면 "그대여" 라고 불리워지는 호명의 대상은 누굴까? 시인이 "그대"라고 부르는 은밀한 연인, 바로 시인이 사랑하는 "시" 자체이다. "쓰지 않을 수 없는, 하지만 늘 고통을 주는 나의 시여, 제발 나를 이젠 그만 건너다오." 라고 시인은 시에 호소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전복이 일어난다. 강을 건너려는 사람인 시인이 이제 건넘의 대상인 '강'으로 바뀌어, 강의 이미지로 투영된다. 내 속의 어두운 물결, 혼돈, 들어오는 모든 것을 삼킬 수밖에 없는 그런 나의 어둠 속으로, 시를 쓰고 싶어하는 나의 욕망의 물결 속으로, 그대, 나의 시는 들어오지 말라고 시인은 읍소한다. 이 역시 내부에서 들려오는 갈등의 목소리다. 그래서 이 구절은 강렬한 역설로 들린다. 백수광부가 아내의 말리는 소리를 듣지 않고 강에 들어갔듯, 그녀는 그 말리는 내부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귀 막고 "검은 이어폰"을 낀다. 결국 시 쓰기는 정채원 시인에게는 「공무도하記」이다.

 

이런 다층적인 전복과 역설의 기교가 주는 호소력이 이 짧은 시를 좋은 시로 만들었다. (*)

—————————

권영숙 / 1963년 경북 안동 출생. 서강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서양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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