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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전용)

☞ 舊. 문학강좌

 
작성일 : 16-02-25 08:57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329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 마종기

 

삶·죽음의비탈에 서서 생명의 詩를 쓰고파


난 열병을 앓았다
내가 문학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작문이나 동시 쓰기를 즐기고 공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였다. 그것은 아마도 아버님 덕택에 우리집에 책이 많았고 그런 책 읽기를 어릴 때부터 즐겨온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은 피난 생활의 와중에서도, 또 학교 공부 쫓아가기 바쁘던 중ㆍ고등학교 시절에도, 학교 공부만큼 중요한 것이 예술 전반에 걸친 교양과 예술을 바르게 감상할 줄 아는 눈과 귀와 머리를 가지는 것이라며 그런 것에 관심 을 갖기를 바라셨다. 그 가난하던 시절에 두 분은 빚을 내어 내게 중고품 악기를 사주셨고, 좋은 음악을 듣게 해 주셨고, 이름 있는 화가의 전시회나 기획전의 날짜와 장소를 알려주시며 관람하기를 권하셨다.
 
그 시절에 그러나 내가 주위 친구보다 더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겨우 글쓰기 정도여서 여기저기 학생 잡지에 얄팍한 감상문을 써서 발표했고 대학 초년병 때까지 화집을 통해 겉핥기로 좋아했던 마티스나 세잔에 대한 인상, 판으로만 듣고 좋아했던 드뷔시나 라벨 등의 모습을 시로 써 보며 멋을 부리는 정도였다. 그러면서 그나마도 따라오지 못하던 주위 친구 앞에서 목에 힘을 주던 지지리도 부끄러운 문학 청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좋은 시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으로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한 것은 엉뚱하게도 내가 몹시도 망설이며 즐겨하지 않았던 의과대학 본과 학생이 되면서, 특히 해부학 공부에 주눅들기 시작하면서였다.
 
내 앞에 통째로 누워 있는 시체를 찢고 자르고 만지면서 인체의 세부를 눈과 손과 가슴으로 느껴야 했던 그 새로운 경험은 삶과 죽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해주었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고 어디에 내 문학의 목표를 두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 시가 천천히 방향 전환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이런 변화는 그러나 시작에 불과했다. 좋은 시인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열망에서 시 쓰기나 시 읽기가 내 실생활에 거의 유일한 위로가 돼 필요 불가결한 조건이 되고, 시를 쓴다는 것이 내 허영의 소산이 아니고 나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임을 알게 된 것은 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 생활을 마치고 낯설고 물설은 외국 땅에 와서 엄청난 고생의 인턴 생활에 들어가면서였다.
 
땡전도 없이 미국의 병원에서 보내준 비행기표로 태평양을 건너 미국 중서부의 한 한적한 중소도시에 도착한 나는 바로 그날부터 1주일 130여 시간의 고된 말단 의사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영어도 서툴고 의술도 형편없고 사회 풍습도 낯선 인턴 의사 생활 1년은 내게는 아직까지 살아온 60몇 년 중 제일 긴 한 해였고 제일 고통스러운 한 해였고, 그래서인지 내 문학의 새로운 시작에도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 한 해 동안의 의사 생활 중에 많은 의술을 배우기도 하였지만 너무나 일이 바빠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코 앞의 내 아파트에도 한 달씩이나 들어가 보지 못하기도 했다. 그 한 해 동안 나는 또 150여 명의 내 환자가 눈 앞에서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아야 했고, 삶과 죽음의 난간에 서서 고통의 마지막 신음과 삶에 대한 절절한 열망, 숨을 거두면서 어김없이 얼굴을 적시며 흐르던 환자의 눈물을 보아야 했다.
 
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인종이 다르기는 했지만 인간의 원초적 조건은 다 같은 것이어서 병자들과 자주 이야기도 나누면서 위로해주다 보면 서로 속사정도 털어놓게 되었고 가끔은 마음 통하는 환자들과 친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친구가 된 환자가 죽으면 하루 이틀 안에 부검을 하게 된다. 그 당시 죽은 환자의 부검율은 8할 정도로 고국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높았는데 이 부검이란 것도 내게는 커다란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담당 인턴은 자기 환자의 부검 과정을 모두 지켜보아야 하고 부검을 돕기도 해야 하기 때문에 며칠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정치나 자기 애인에 대해 이야기하던 죽은 환자 친구의 머리뼈를 전기톱으로 자르고 뇌를 끄집어내 검사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철판 부검대 위에 묵묵히 누운 그 환자 친구의 몸을 열고 심장을, 폐를, 간을, 신장을 잘라내고, 사인을 본다고 다시 세밀하게 자르고 한없이 몸 위로 쏟아져 나오는 피를 물로 씻어내면서, 피도 눈물도 없는 대담한 의사가 되려고 태연을 가장해야 했던 그 긴 시간들. 그 아픔과 슬픔과 허망함을 다스리기 위해 나는 시간만 있으면 내 마음의 진정제 역할을 해주던 시를 찾아서 그리운 모국어의 단어 속으로 깊이 뛰어들곤 했다.
 
이 부검이라는 것과 나는 무슨 큰 인연이 있었던 것인지 내가 힘든 인턴 과정을 마치고 대학병원의 진단방사선과 레지던트가 되어서도 처음 2년 동안은 부검실에서 시체 부검 결과와 방사선 진단 결과를 대조하는 일로 죽은 이들의 내장을 보고 피비린내를 맡으며 살아야 했다.
 
물론 이와 반대로 사경을 헤매던 어린이를 정성껏 돌보아준 끝에 내 힘으로 건강을 되찾게 해주고 그 어린이가 고맙다며 내게 안길 때, 또 석 달 반 동안 280여 명의 아기들의 출산을 도와 탯줄을 끊어주고 새 생명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 나는 문학의 밤잠을 이내 깨곤 했다. 신비한 생명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소름끼치게 느끼면서 이런 신선한 흥분을 날 것 그대로 시로 쓰고 싶어서 안달을 한 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랬다. 모국어도 없고 가까운 친구 하나도 없는 외국에서 일상의 외로움에 오금을 펴지 못하고 공포와 절망과 환희의 절정을 매일 오가면서 살았던 몇 해 동안의 의사 수련은 엉뚱하게도 내 문학의 샘물이었고 본향이었다.
 
그래서 내가 만일 외국에 오래 나가 사는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고국의 알량한 시인 노릇도 오래 끌어가지는 못했을 것임을 안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문학은 내가 외국에 나가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깊은 어둠 속을 헤맬 때, 내가 불안과 당황과 절망의 늪에서도 크게 낯설어 하지 않고 찾아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내 위로였기 때문에 계속해 왔다.
 
물찬 제비같이 날렵하지는 못해도 사람답게 생각하고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내가 매달린 신명나는 놀이였고, 황홀이었고, 진심이었다. 나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도구로서 내 시가 존재하기 때문에 내 시는 거의 언제나 내 진심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진심이 아닌 것이 어떻게 인간을 위로할 수 있으랴. 그래서 나는 시 앞에서는 정직하려 했고 성실하려고 했다.
 
누가 있어 내 진심의 노래에 동의하고 귀 기울여 주고 같이 노래해 준다면 그것은 시 쓰는 사람에게는 큰 행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시를 쓰지는 못한다. 시는 개인적인 경험이고 중얼거림이라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누가 내가 쓴 시를 받아 읽고 좋다느니 나쁘다느니 고쳤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지적을 해줄 친구를 주위에 두지 못하고 오랫동안 혼자서만 시를 써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가 고급스런 게임이고 장난이고 놀이이기만 하다면 그것이 아무리 값비싼 향수로 치장된다고 해도 이제는 전자게임이나 컴퓨터 놀이의 흥미를 따라갈 수 없게 되었고 결국에는 천천히 외면 받아 소멸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시가 정치적 선전도구나 사회 정의의 호소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획일적 템포의 구호나 현란한 표어나 뜨거운 격문의 힘과 열기에 비교가 될 것인가. 내가 피 냄새를 많이 맡아오며 살아온 때문인지 나는 그런 시에서 나는 땀 냄새와 피 냄새에서 수상한 자극제의 기미를 많이 느끼고 진정한 껴안음의 힘을 보기 어렵다. 사후에 발견된 카뮈의 글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고 한다. ‘정의는 소중하다. 그러나 내 아버지는 더 소중하다.’
 
문학은 어차피 서로간의 껴안음이고 나눔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에 전쟁과 살육이 그치지 않는 이 세상에서, 또 어느 한쪽에 편들어서 정의와 평화를 부르짖는 무리의 함성 속에서, 아직까지도 의연하게 인간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어쩌다 나는 의사로 평생을 지내오면서 인간의 육체적 조건과 항상 가깝게 함께 어울려 살아왔다. 그래서 내 문학의 화두는 자연히 생명이었다. 인간의 생명은 언제나 희망과 사랑을 지향하기 때문에 그 따뜻함이 그리워 나는 시를 써왔고 시를 쓰는 동안의 어줍지 않은 고통까지도 껴안으려고 했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모든 인생은 비슷하게 힘겨운 짐을 지고 있다는 말에 나는 동감한다. 그러나 그런 힘든 짐을 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굽은 허리의 겸손과 그 고통이 사실은 사랑의 속성이라는 것에도 동감한다. 그 사랑의 속성을 찾아서 나는 오늘도 행복하게 세상을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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