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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14 11:58
 글쓴이 : 아무르박
조회 : 280  



꼰대들의 변명


아무르박


아내와 나는 날마다 충돌한다

나물을 무칠 때면
일회용 장갑을 낀 바른 한 손의 짝을 위하여
아들을 불러 양념을 보조한다
참기름 깨소금 맛소금 매실엑기스 조선간장
이런 된장

무 오이 당근을 채 썰면
뒷정리를 부탁하고
보쌈 고기가 익었나 젓가락으로 찔러보면
도마 위에 덤벙덤벙 썰어
소금에 쿡 찍어 입에 넣어 주고
맛을 보였다

매운탕 맛은 비리지 않아
된장찌개는 짜지 않아
소고기뭇국은 시원하지
곱창전골은 소주와 생강이 꼭 들어가야 해
붕어찜은 콩가루가 들어가야 뼈가 푹 삭아

자 밥상을 차리자
앞 접시와 수저를 챙겨
국그릇 좀 받아 식탁 위에 놓아 주련
뜨겁다 조심조심

공부하기도 힘든 아이들에게
물심부름은 제발 그만 시켜요

반주로 술을 마실 때면
술을 따르는 아들이 얼마나 든든한 것인지
식사 후에
커피 한 잔 드릴까요
그 말에 눈 녹듯이 녹아 버리는 향기

나는 한 번도 아들들의 기분 따위는
묻지도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이 집안의 독재자
노는 꼴은 두고 못 보는 놀부
궁색한 변명이 필요하다면
멘 날 너희들은 공부만 하는 건 아니지
식사 준비는 다 같이 하는 거야

아무래도 나는 손가락 열 개
배가 불러 애를 낳아보지 않은 까닭이다
여자의 마음은 모른다

하지만 나는 행복하다
아니 행복하다고 믿고 싶다
어쩌면 강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따르는
아들들을 세뇌하고 있다

사이비 교주라도 좋다
내가 믿는 신은 가족이었다
내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나도 대물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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