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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舊. 우수창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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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창작시에 옮겨진 작품도 퇴고 및 수정이 가능합니다)

 
작성일 : 17-04-07 20:15
 글쓴이 : 활연
조회 : 1085  

각인 刻人




옹진군 덕적면 서포리에 가면
파도가 사막을 슬어놓았는데요

모래를 가다듬고 쓰레질하고
밭은기침 찰랑찰랑 적셔놓았는데요

먼 이랑 잦은 고랑 소라게 무덤이 파였고요
모래톱엔 갯그령 흐느적거리고요

바다는 유랑을 모래에 새기고
다시 오마, 수평선을 멀리 밀어놓았는데요

마음 가닿는 간단없는 사이라도 있다는 듯이
발자국들 겹치고 흩어지고 했는데요

그러거나 말거나 달빛 받은 윤슬이
반짝거렸는데요

잔파도는 어르고 비비고
젖은 사막을 밤새도록 토닥거렸는데요

파랑은 견딜 만큼 낭떠러지와 가풀막을
파도 소리와 물그림자를 바짝 끌어오는데요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17-04-17 11:07:03 창작시에서 복사 됨]

활연 17-04-07 21:11
 
어느 방에 관한 기억

  문성해



가령, 출출한 소읍의 어느 식당
때마침 넘쳐난 손님에
주인장이 궁색하게 내준 하꼬방에
일행과 함께 든 적 있으신지
개어놓은 지 오래인 이불과
얌전한 철제 책상이 하나 앉아 있는
문 닫으면 오롯이 섬이 되는 그 방에서
주인장이 내온 뜨뜻한 칼국수를 받아본 적 있으신지
못에 걸린 낡은 청바지와
철 지난 핸드백의 주인이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이
칼국수에 고명으로 얹히는 그 방에서
우리는 이제 보통의 손님은 아니게 되고
찬찬히 우리의 가르마를 들여다보는 목단꽃 무늬 천장 아래
시답잖은 농을 버리고 앉음새가 조신해지는 것을 경험해보셨는지
달그락거리는 젓가락 소리로 그 방을 깨워보셨는지
언젠가 찬 골목에서
어깨 조붓한 그 방의 주인과 스친 적 있다는 생각도 해보셨는지
또 어느 날 우리처럼 그 방에 들어서
그 방의 역사를 대대로 이어갈
숟가락 소리들을 떠올려보셨는지
누대로 그 방을 먹여 살리는



`
이면수화 17-04-07 21:26
 
아, 네! 아, 네. 하는 추임새가 절로 나오게 하네요.
조일 때나 풀어줄 때나 팽팽한 언어의 힘을 느낍니다.
사람을 새긴다는 말... 저릿저릿하네요.
무의(無疑) 17-04-08 06:34
 
고랑 촘촘한 저 밭을
경영하는 이 따로 있으니
무슨 낙서를 뿌릴까 궁리할 까닭 없겠습니다
그저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만 봐도
저절로 다음 페이지에 닿을 것 같습니다.
안희선 17-04-08 13:43
 
옹진군 덕적면 서포리..

시를 읽으니,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꼭 한 번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듭니다

- 왜?

요즘 보행은 거의 못하는 처지라서요 (웃음)

오늘 올려주신 시는
상황을 수용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그러나 그 경우의 수용이란 말은 단순한 묘사라기보다
대상을 對象(소포리 해안) 그대로 사랑하는
시인의 합일된 의식이
일체의 가식없이 잘 표현되어 있네요...

소포리의 그윽한 정경이 詩香에 실려,
잔잔한 물결처럼 가슴에 젖어옵니다

잘 감상하고 갑니다
활연 시인님,
동피랑 17-04-08 21:12
 
저 무늬들이 다 사람을 새긴 흔적인 줄 미처 몰랐네요.
늘 보는 파랑을 어떻게 누벼야 하는지 길을 여셨네요.
어깨 힘 완죤히 빼고 물감도 붓도 필요 없이 가만히 걷기만 하라.
덕적 서포리 낭만적 풍경 짭조름하네요.
활연님, 꽃향기 은은하게 스미는 봄밤 보내세요.
활연 17-04-09 12:53
 
서효인의 시집 【여수】를 열어보니까,
제목이 된통 지명이더군요. 여수, 불광동, 곡성, 이태원, 강릉, 부평,
남해, 양화진, 강화, 자유로, 목포, 인천, 진도, 평택, 송정리역, 서울,
구로, 북항, 나주, 안양, 신촌, 대전, 서귀포, 구미, 분당, 파주, 익산,
마포, 마산, 장충체육관, 효창공원, 영광, 연희동, 압해도, 철원, 개성,
송정리, 지축역, 진주, 압구정, 금남로, 진해, 무안,....
돌아다녀서 한 권을 묶는 시인도 있는데 나는 싸돌아다녀도 한 편을
만나지 못하니까, 기행도 여행도 나에겐 시가 못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면수화님
무의님
안희선님
동피랑님
고맙습니다. 봄날 꽃길에서 화사한 여인에게 감싸이는 날 되십시오.



여수

  서효인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도시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다시는 못 올 것이라 생각하니
비가 오기 시작했고, 비를 머금은 공장에서
푸른 연기가 쉬지 않고
공중으로 흩어졌다
흰 빨래는 내어놓지 못했다
너의 얼굴을 생각 바깥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그것은
나로 인해서 더러워지고 있었다

이 도시를 둘러싼 바다와 바다가 풍기는 살냄새
무서웠다 버스가 축축한 아스팔트를 감고 돌았다
버스의 진동에 따라 눈을 감고
거의 다 깨버린 잠을 붙잡았다
도착 이후에 끝을 말할 것이다
도시의 복판에 이르러 바다가 내보내는 냄새에
눈을 떴다 멀리 공장이 보이고
그 아래에 시커먼 빨래가 있고
끝이라 생각한 곳에서 다시 바다가 나타나고
길이 나타나고 여수였다

너의 얼굴이 완성되고 있었다
이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네 얼굴을 닮아버린 해안은
세계를 통틀어 여기뿐이므로

표정이 울상인 너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무서운 사랑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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