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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9-25 00:04
 글쓴이 : 아무르박
조회 : 540  





등기부 등본


아무르박


저 고추밭보다 작은 집에 살았다
저 호박밭보다 작은 결실에 위안을 얻었다
박꽃같이 웃는 초라한 지붕
등기부 등본이 없으면 이름 석 자 알아주는 이 없는

고추밭에 주인은 고추여야 했다
호박밭에 주인공은 꽃이 든 자리
흔들리지 않는 지조의 결실이다
이 세상
세 들어 살지 않는 이 누가 있으랴

수국이 핀 자리에 꽃이 지고
초라하지 않게
남겨진 자는 슬프지 않다
등기부 등본에 없는 이름 석 자
이 세상에 무엇으로 나를 증명할까

100킬로미터로 달렸던 시야의 골목길에서
이제는 걸어본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사람들 속으로
이제는 걸어 들어간다
막걸리 석 잔에 건아 하게
고추 튀김을 가위로 잘라주던 아낙의 무용담을
들어 주어야 한다

비로소 강줄기를 등진 사내가
자전거의 페달을 밟지 않는다고
하여
시간은 강자의 편이라 말하지 않으리

한 시절
오롯이 살았다
집으로 가는 길에 허밍이면 이름값은 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내 돌아갈 길을 잊은 적 없었으리
[이 게시물은 시세상운영자님에 의해 2017-09-28 20:11:50 시로 여는 세상에서 복사 됨]

아무르박 17-09-25 00:10
 
의미를 잃어버린 물


아무르박


물이 길을 찾아간다는 말은 믿지 않기로 했다

그릇의 모양을 닮아버린 순응이 싫어서
바람이 어질러 놓은 호수에 일렁임이 싫어서
거저 밀려갔다가는 떠밀려오는
지조 잃은 바닷물이 싫어서

사선에 빗발치는
빗소리에 벤 상처는 사랑의 상흔이다

유리창을 흔들고 간 눈물 자국은
아침이면 씻어놓은 햇살에 묻혔다
과거는 현재 진행형이다
한번 들여놓은 발자국은 무시로 짓밟고 간다
가장 눈부신 날에 죽음을 생각했던
청춘의 마름 자리처럼

눈물은 흐르는 게 아니라 떨구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 흐린 초점은
안개가 낀 날에 나무 가시처럼 빗금에 돋아난
달빛처럼 울어도 대답 없는 풀벌레처럼
가슴에 알알이 떨어지는 이슬이다
물이 길을 찾아가는 것은 아니다

등산로에 말라죽은 나무를 오른다
칡덩굴
비비 꼬인 창자에 물길을 냈을 것인데
무엇을 담아낼 수 없을 거라 믿고 있을 때
나무는 마르고
물은 구속하지 않았다

숲은 소실점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불변의 질량
물의 우주를 담아낸 물그릇이다
그녀는 물 같은 존재
나는 어쩔 수 없어 말라버린 그릇이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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