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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05 13:21
 글쓴이 : 공덕수
조회 : 508  
나무는 웃긴다
평생 바람을 떠돌다
신발은 땅바닥에 버리는 것이다.
평생 하늘에 바쳤던 몸을
땅에 묻는 새처럼 웃긴 것이다.
평생 시앗을 보고 다니던 아버지가
늙고 병들어 집에 돌아 온 것처럼
나무는 웃긴 것이다.
신발을 벗고도 바람을 딪던
두서 없는 걸음이 귀신처럼 남아
쇠쇠 슬리퍼만 끌고 무작정 나서는 소리,
달빛을 발라서 반질반질 광내고
담배 꽁초처럼 떨어진 유성을 비벼꺼는 소리,
별을 밟은 맨발을 쑤셔 넣고 피를 절벅이며
붉게 도망치는 소리,
나무가 평생 가만히 서 있었다는 소리는
정말 웃긴 소리다.
천동설처럼 웃기고,
그래도 돌아버렸다던 지구처럼 웃기고,
그래서 마침내 웃겨서 떼굴떼굴 구르는
신발들이 웃기는 나무를 에워싸고,

이 겨울 나무는 맨발이다
다 닳아서 구멍이 숭숭 뚫린 신발들을 일제히 벗고
자갈처럼 눈송이 구르는 바람길을 맨발로 다져서
겨우내 구깃구깃 일당을 모아 새 신발을 장만하는
겨울 나무들이 웃긴다

바람이 달리고 나무가 가만히 있는 것 같은,
나무들의 웃기는 상대성 이론으로
계절은 나무들의 등에 업혀 봄으로 돌아가는데
도무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웃긴 것이다.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18-01-10 14:58:59 창작의 향기에서 복사 됨]

이명윤 18-01-05 18:01
 
웃프다는 이럴때 쓰는 말이던가요,
시원한 서술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맨발의 나무들이 걸어가는 겨울...
얼마전 버린 신발들을 한데모아 태웠는데
문득 그 눈빛이 생각납니다.
공덕수 18-01-05 18:24
 
으앗! 이 명윤 시인님의 댓글이다...

천개의 뚝배기를 씻다보면 저의 손이 오로지 뚝배기를 닦기위해 태어난 것 같아지는데
시인님들의 댓글이 달린 것을 보면 시를 쓰기 위해 천개의 뚝배기를
닦은 것 같아집니다.

무슨 우수작 같은 것이 되거나, 재수 좋아 상품권 같은 것을 받던 봄 날도 있었지만
지금은 제가 시를 계속 쓰고 산다는 사실과 가끔 시인님들이 제 시를 읽어주셨다는
흔적으로 놓고가는 꽃 한 송이 같은 댓글만으로도 제 생은 봄날 입니다.

시는 뚝배기에게 팔아버린 제 손을 용서하게 합니다.
감사 합니다.
공잘 18-01-05 22:24
 
혼자 술을 좀 했어요.
댓글에
'시는 뚝배기에게 팔아버린 제 손을 용서하게 합니다'
라고 쓰셨네요.
공덕수는
진짜 시인이다.
라는 말을 꼭 쓰고 싶어서 로그인했어요.
공덕수 18-01-06 01:37
 
답글 늦어 죄송합니다.
나는 시인이다 하는 문장 하나로 시궁창과 구정물통을 버텼는데
무슨 근거로? 하고 묻게 되면서부터 아예 저 자신이 누구인지도 햇갈리게 되더군요.
자신에 대한 신앙을 잃어버리는 일은 참으로 무서운 일인 것 같습니다.

시인이 별건가? 시를 쓰면 시인이지, 라고 시인을 정의하던 젊은 패기가 그립습니다.
감사 합니다. 자칭 시인으로, 시인이라는 말이 조갯살 속에 박아 놓은 바늘 같은 말이였지만
다른 분에게서 시인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좋네요. 행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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